0세기를 미국의 시대로 만들었던 미국 시스템-혁신과 금융 시스템 등-이 고장났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음에도 미국경제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현상적인 측면에서 금융위기는 가계와 금융회사 등 민간부문의 과도한 레버리지의 결과였기에 위기 해소를 위해 디레버리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디레버리지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의 디레버리지가 많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분치 않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순자산의 비중은 2010년 말 496%로 위기의 절정 때 수준인 440%보다 50% 가량 증가했으나 위기 이전의 장기 평균선이 540~5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갈 길의 중간 정도에 도달한 것이다.

아직도 150~350만 채의 주택이 초과공급으로 추산되는 주택시장의 침체, 1천4백만에 달하는 실업자와 그중 약 45%는 일자리 복귀가능성이 낮은 장기실업자 그리고 실질입금의 감소가 2009년 6월 이후 회복의 실체다.

그런데 가계를 지원해준 정부의 에너지가 고갈됐다. 아니 정부 자신이 골병이 들었다. 향후 75년간 매년 GDP의 8.3%에 달하는 재정지출 감축이나 그만큼의 세금 인상, 혹은 둘의 조합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재정위기 해결은 ‘미션 임파서블’ 같다.

이 상황에서 미국 정치권은 ‘증세 없는 정부지출 삭감’을 선택하였다. 경기 후퇴의 상황에서 정치권의 무능력은 시장의 더블딥 우려(불확실성)를 만들어냈고, 미국에 대한 S&P의 신용등급 강등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신용등급 강등이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자 무능한 정치인들은 S&P를 비난할 뿐이다.

그런데 <비즈니스위크>는 미국의 부채 심각성을 이해하면 AA+ 등급도 과분하다고 조롱한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세계경제를 미국 중심으로 운영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40년 전 고정환율제를 붕괴시킨 ‘금태환 정지’ 선언이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이 다극체제 전개의 출발점이었다면, 세계경제라는 주식회사의 대주주에서 ‘최대 소주주’로 전락했음을 의미하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다극체제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사실상 달러는 더 이상 기축통화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의 ‘안전자산’이 사라지자 ‘불확실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덮은 이유다.

유로존의 재정위기 역시 불확실성에서 비롯한다. 단일통화 도입에 의한 환율리스크 제거로 은행을 매개로 한 초국가 대출이 급증하였고 유로존은 한 몸이 되었다. 이른바 PIIGs의 전체 대외채무 중 60% 이상을 독일과 프랑스와 영국의 은행들이 투자한 것이고, 이들 은행들은 월가를 비롯해 전 세계의 은행들과 투자를 주고받고 있다. 한국 전체 외채의 49%도 유럽에서 차입한 것이다. 경제규모가 EU 전체의 3%에 불과한 그리스가 글로벌 경제를 흔드는 이유다.

유로존의 재정위기에 대해 시장이 요구하는 것도 자체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리스 국가부채 문제, 스페인과 이태리 등으로의 위기 확산 및 국가부채 위기의 은행위기로의 전이 가능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의사결정에서 리스크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의 회피를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세계경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글로벌 협력이 불가피한 반면, 다극체제에 필요한 새로운 차원의 협력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다. ‘정치가 문제’라는 지적이 빈번한 이유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키워드로 등장한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 속에 우리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의 자본시장은 해외자본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했다.

개방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물망 구조의 전염효과가 ‘상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염효과를 최소화시키려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해외변수에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체질을 강화하든지 아니면 해외자본의 유출입에 대한 브레이크 장치를 설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체질은 약한 반면 개방의 수준은 선진국과 차이가 없다.

주가나 환율 변동성 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된 이유이다. 무엇보다 증폭되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우리의 가계부채 및 무능한 정치리더십과 결합될 경우 쓰나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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