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체계적 절차 구축 … 英 등은 ‘특성화’ 역점

“우리나라도 대학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에 맞춘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대학의 진입·경쟁에 따라 퇴출경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오대영 가천대 교수는 지난달 15일 개최된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오픈 포럼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일본 대학의 구조조정 실태’를 주제로 발표한 오 교수는 “대학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선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역발상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부실 대학의 자발적 퇴출을 유도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의 부실대학 퇴출 작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우리나라의 발전적인 대학 구조조정을 위해선 해외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학령인구 감소, 정원미달 사립대 증가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으면서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꾸준히 대학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해 오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일본, 체계적 퇴출경로 마련 =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2009년 발표한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구조조정 방안 연구’(책임연구자 유현숙), ‘일본의 사립대학 재생을 위한 구조개혁’(연구자 김미란) 등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대학의 운영·유지가 어려운 사립대들을 위한 체계적인 퇴출 경로를 구축했다. 또 자발적 퇴출을 장려할 뿐 아니라 파산방지를 위한 행·재정 지원, 경영상담 등도 실질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일본 사립대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우리나라와 상당히 비슷하다. 특히 일본도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어려움이 큰데 사립대의 경우 입학 정원을 충원하지 못한 대학·전문대학이 1995년 4.4%·11.8%에서 2002년 28.3%·48%, 2008년 47.1%·67.5%로 급증했다. 또 각 대학법인의 투명성·공정성에 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사립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사립학교법 개정 △재정 지원 △경영개선 지원 등을 벌이고 있다. 특히 경영 개선을 위해선 각 사립대의 운영 상황을 정상, 경영곤란, 자력재생곤란, 파탄상태 등 4단계로 분류해 맞춤형 지원을 벌이고 있다. 또 정부 차원에서 각 학교법인의 관리·운영·재무 상황 등을 실사하는 ‘학교운영조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법인 경영지도실’을 설치해 경영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에도 경영 개선이 불가해 퇴출 대학으로 판단될 경우 △파산수속 △사적정리(정산형) △사적정리(재생형) △민사재생수속 등 4개 유형 중 적합한 한 개를 찾아 자율적으로 문을 닫을 수 있게 유도한다. 김미란 KEDI 대입제도연구실 연구위원은 “일본은 대학이 퇴출 과정을 밟을 때 금융, 법률, 개인 재산 보호 등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대학이 자율적으로 없어질 수 있을 때까지 수차례의 지원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퇴출 대학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한 대학이 퇴출 과정을 밟게 되면 해당 학교 학생들의 전학을 장려하고, 근린교의 지원을 받아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철저히 개입·관리한다. 대학이 저지른 부실 경영의 책임이 학생들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한 사립대 교수는 “일본은 대학 구조조정 시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도 그런 지는 의문스럽다”며 “정부는 부실대학 퇴출에 앞서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영국·호주 등 ‘질적 구조조정’에 역점 = 영국·호주 등은 질적인 구조조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퇴출을 통해 대학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는 교육 프로그램 재조정, 특성화 등을 통한 질 강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같은 점에 비춰 봤을 때 영국·호주 등의 대학 구조조정은 우리나라의 대학 특성화 정책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호주 정부의 경우 대학이 강점을 지닌 영역으로 전문화하거나 지역의 수요에 맞춘 교육 과정을 운영토록 장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호주 정부는 매년 1회씩 경쟁을 통해 선정된 대학에게 ‘다양성 및 구조조정 기금’이라는 명칭의 지원을 벌이고 있다. 다양성 기금으로 지원되는 돈은 연 4999만 달러(한화 약 54억원) 정도다.

유현숙 KEDI 고등교육연구본부장은 논문을 통해 “호주의 대학 구조조정은 주로 교육과정 개선, 형평성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학의 몸집 줄이기에 무게가 있는 우리나라와 다소 차이가 있다”며 “다만 재정 투자의 효율성, 노동시장의 요구에 관한 대응성 강화, 대학 특성화 추구는 우리나라와 호주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영국 역시 대학의 질적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영국 정부는 세계적인 대학 교육·연구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엘리트 위주의 고등교육 체제 하에서 소외돼 왔던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국이 각 대학들의 연구·교육을 위해 지난 2009~2010년 지원한 재정은 총 79억 9400만 파운드(한화 약 13조 9800억원)다.

유 본부장은 “영국 정부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대학 졸업자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의 지식·기술 수준을 높이고, 경제·문화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어느 나라건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등교육의 책무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퍼져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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