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부모처럼 학생과 얼굴 맞대야
지방대는 사회를 지지하는 허리 역할

경주대가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빠르게 거듭나고 있다. 수년 전 학내 구성원들의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금세 털어내고 학교 발전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신입생 충원율 100% 달성을 비롯해 전 재학생을 대상으로 7+1 해외학기제를 실시하고 외국인 교수를 대거 충원하는 등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지난 2009년 경주대 첫 여성 총장으로 취임한 이순자 총장이 주도하고 있다. 설립자인 김일윤 전 의원의 부인이면서도 구설수를 경계해 다른 대학 강단에 섰던 이 총장은 학교가 위기를 맞자 수장을 맡았다. 대학 교수이자 정치인의 부인, 6남매의 어머니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던 경험을 살려 총장이 돼서도 쉬지 않고 학교를 새로운 변화로 이끌었다. “학생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꿨다”고 되풀이 강조하는 이 총장을 지난 16일 만났다.

- 임기 3년째다. 처음 총장을 맡으며 생각한 목표가 얼마나 구현됐나.
“다른 대학들은 이제 구조조정을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 학교는 이미 개혁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취임 후 3년간 계속 학과 구조개혁에 임해 대학 슬림화에 성공했고, 행정부처를 기존 과 체제에서 팀 체제로 개편해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교수 강의평가 공개, 실적에 바탕한 교직원 연봉제 시행도 성과다. 지방의 조그만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60여년 삶의 총체적 경험을 지난 3년간 학교에 쏟아부어 바꿔낸 것이다. 학교 안팎의 소요를 겪으면서도 구성원들과 힘을 합쳐 개혁한 성과라 자부심을 느낀다.”

- ‘학생 중심 대학’으로 변화하는 데 앞장선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학교를 이끌며 가장 무게중심을 둔 게 학생이다. 학교에 들어올 때부터 패배감에 젖어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교육해 자긍심을 갖는 인재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반값 등록금’ 논란에서 시작된 대학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지방대가 거론되는 점은 안타깝다. 지방대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를 피라미드 구조라고 봤을 때 중간층이 탄탄해야 꼭대기도 있는 것이다. 지방대가 사회의 허리를 탄탄히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고,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데 왜 지방대를 안 키우나. 반값 등록금 같은 정책도 모든 대학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게 아니다. 수도권 대규모 대학은 지금의 등록금 수준을 유지하고, 지방 소규모 대학은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형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학생 중심 교육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교수의 몫이 크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의 방황을 막고 세심하게 보살펴주는 부모가 돼줘야 한다. 교수가 책을 읽고 강의를 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또 교수가 의무 수업시수 채우고 수도권 집으로 가버리면 그 공백 기간에 학생들은 누가 책임지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 1주 내내 학생들과 상담하며 갈 길을 의논하고, 부모처럼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 그게 교수다. 그래서 교수들에게도 연구만 할 생각이면 수도권 대학으로 옮기라고 말했다. 교수가 학생 상담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학생과의 시간에 얼마나 많이 할애하는지에 따라 연봉도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 학생에 포커스를 맞춰 ‘사회의 허리’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면 된다. 방학 같은 때 조리과 교수들을 한 달씩 외국에 보내 우리 학생들 밥 해주고 오라고 주문했다. 그래야 학생들이 교수들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지 않겠는가. 교수 시절 외국 대학의 교수실을 방문하면 국내 대학들과 달리 소파가 없었다. 그만큼 연구·교육에 힘쓰느라 소파에 앉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지적하고 바꿔나가는 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다. 물론 관행을 바꾸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몸에 익은 관행을 깨뜨리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려면 ‘고통을 전제한 소통’이 필요하다. 학생 위주의 구조개혁은 그렇게 해서 가능했다.”

-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설득 과정에서 많은 구성원이 믿어주고 지지해줬다. 소통의 리더십이 중요한데 그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총장 취임하자마자 학내 수위 아저씨,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에게 해외 체험을 하게 해줬다. 판공비로 아주머니들이 예쁘다고 한 내 옷과 똑같은 옷을 사 선물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심으로 대하면 학교가 깨끗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사회에 허리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이런 ‘밑받침’ 되는 분들이 없으면 안 된다. 항상 학생들을 응원하고 구성원들을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이 교수들에게도 전해져 학생들을 그렇게 대해줬으면 한다.”

▲ 박성태 본지 발행인(사진 왼쪽)과 대담 중인 이순자 총장.

- 주제를 바꿔보자. 문화·관광 특성화가 눈에 띈다.
“경주대는 관광·문화재 분야에서만큼은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1988년 당시 아시아 최초로 ‘한국관광대학’으로 설립한 역사가 뒷받침됐다. 지금은 종합대학으로 성장했지만 관광·문화재 분야 특화는 계속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필리핀 세부 같은 유명 휴양지 특급호텔에 경주대 출신이 많다. 올해는 스위스호텔교육재단과 학사 교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산하에 세계 정상급 호텔학교가 여럿 있고 최고 수준의 서비스 교육이 가능해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이 이들 최정상급 호텔학교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데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 이례적으로 해외학기제를 대규모로 시행하는데 효과는 어떤가.
“국내 대학 최초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7+1 해외학기제를 시행에 나섰다. 경주대 재학생이면 누구나 한 학기를 해외에서 이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공교과 커리큘럼 자체가 해외 대학에 개설된다. 전공 교수가 따라가는 ‘맞춤형 교육’으로 일반적인 국내 대학들의 교환학생 프로그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참가학생 전원에게 해외 대학 수업료와 왕복 항공료를 지원하는 등 학교에서 40억원이 넘는 금액을 들여 야심차게 투자하고 있다. 영어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현지에서 취업에도 성공하는 실질적 국제화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학생들이 해외 체험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도 있어 합숙 집중교육을 마다 않는다. 외국인 교수 대거 채용이 이런 교육을 가능케 했다.”

- 지자체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지방대는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가 돼야 하는가.
“지역 대학은 교육 뿐 아니라 지방 발전의 견인차이자 활력소가 돼야 한다. 인재와 인프라를 보유한 대학이 지역사회의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게 맞다. 때문에 지방대를 고사시키면 지역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 지자체와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캐나다 등 외국 사례를 보면 지자체가 스포츠센터를 짓고 지역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대학에서 운영하라고 한다. 그런 모습이 진정한 지역과 대학의 ‘상생 발전’이라 생각한다. 오픈 마인드를 갖춘 관료도 필요하고, 대학 역시 단순히 평생교육 프로그램 개설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방의 문화센터이자 동력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애정과 관심이 없는 지역 대학은 발전이 없다.”

- 남은 임기 동안 경주대를 어떤 대학으로 성장시키고 싶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만들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재임 기간 중 관광·문화재 분야 ‘글로벌 강소학과’ 5개를 만드는 게 목표다. 관광 분야 학과들은 이미 취업률이나 인지도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다. 앞으로 이를 더 발전시켜 5개 ‘엣지(Edge)’ 학과를 만드는 게 경주대의 생존전략이다. 구성원들도 여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대학의 역량을 집중해 반드시 목표를 이뤄낼 것이다.”

■ 이순자 총장은…
이순자 총장은 경북여고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이화여대에서 교육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국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주대 설립자 김일윤 전 의원의 배우자인 이 총장은 동덕여대·숙명여대·이화여대 외래교수, 서경대 디자인학부 교수와 학교법인 경흥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2009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경력도 있는 그는 같은 해 총장 직무대행을 거쳐 경주대 총장에 취임했다.

<대담 = 박성태 발행인, 사진 = 한명섭 기자, 정리 = 김봉구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