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본지 논설위원/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

▲ 김상배 아주대 교수
전자산업계가 세계적인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가뜩이나 세계경기가 위기상황인 터에 우리나라의 주축산업인 전자산업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어 위기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가장 최근의 소식은 인터넷 검색 업체의 수장이자 스마트 폰 운영 소프트웨어 안드로이드의 제작자인 구글이 휴대전화기술의 원조격인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인수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 여파가 어떻게 나타날지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삼성, 엘지 등의 이동통신 단말기 업체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요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애플에 놀란 가슴, 구글에 다시 놀라야 하는 형국이다. 정보기술 업계의 3대 거인인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패권 경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애플이 주도하고 있는 하드웨어 가격 경쟁과 소프트웨어와 컨텐트 중심의 비즈니스 환경변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단말기와 함께 전자산업 핵심기둥의 하나인 반도체산업도 격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위기와 기술변화에 따른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위축으로 디램 가격이 급속도로 낮아지면서 세계 1, 2위의 디램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마저도 적자생산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다 한때 세계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대만 업체들과 손잡고 삼성과 하이닉스를 위협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또 다른 축인 디스플레이 업계도 비상이다. 텔레비전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액정 표시기 패널의 가격이 바닥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가격 경쟁에서 뒤쳐졌던 일본 업체들이 연합하여 규모를 키우면서 기술적 우위와 가격 경쟁력 회복을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신수종 사업으로 불리는 발광 다이오드 사업과 태양광 사업 부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발광다이오드의 최대 수요처인 텔레비전은 수요가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술개발에 따라 텔레비전 한 대에 들어가는 발광다이오드의 수가 줄고 단가도 내려가면서 발광다이오드 업계가 비상 국면에 들어 있다. 기술적으로도 종주국인 일본에는 물론 대만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태양광 부문도 기술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 와중에서도 세계 제일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무척 여유로운 행보를 보여 흥미롭다. 공상과학 작가 4명을 채용했다는 소식이 그 것이다.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지속시키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라 굳게 믿고, 그를 위한 기술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집적회로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대략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경험 법칙으로, 인텔의 사장이었던 무어가 1965년에 예견한 것이다. 그렇게 트랜지스터의 수가 2배로 늘리면 가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집적회로의 성능만 대략 두 배로 향상시킬 수 있다. 지난 50여 년간 반도체 업계를 지배해 온 이 무어의 법칙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엔지니어들은 더 작은 형상을 반도체 칩 안에 새겨 넣어야 했다.

그 인텔에 공상과학 작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앞서가는 자의 여유로움보다는 1등의 어려움과 고뇌가 녹아있다. 앞으로도 1등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꿈을 꾸는 사람이 필요한 때문인 것이다. 꿈은 곧 현실이 된다. 그러므로 꿈꾸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기술 평준화가 상당히 진행된 현재와 같은 know-how의 시대가 아닌 know-what의 시대에서는 꿈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 제대로 꿈꾸는 사람이 보물인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격랑을 헤치고 꿋꿋하게 나아갈 비책은 있는가? 있다면, 그 비책은 무엇인가? 당연히 우리도 미래를 지배할 기술이 무엇이고 왜 그럴 것인지를 꿈꾸는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그렇지만 그 길은 멀고 험난하며, 더구나 긴 시간을 요구한다. 그렇다 해도 가야할 길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당장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꿈만 꾸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격랑의 파도를 넘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부지런함이다. 2등으로 뒤쫓아 가더라도 부지런히 더 빨리 가서 1등을 추월하는 길이다. 그렇게 패러다임은 아니더라도 기술발전의 템포를 주도하면 결국 1등이 될 수 있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성공방정식 아닌가. 미래는 꿈꾸는 이들의 것이고 현실은 부지런한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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