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1년’ 30대 젊은 발상…학생들 '형·오빠'로 불러

75년생, 30대의 대학 총장은 등장부터 신선했다. 얼핏 젊은 팀장급으로 보이는 최재혁 경북전문대학 총장은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원 이름표를 목에 걸고 나타났다. 권위를 세우기보다 간편한 차림으로 일에 몰두하는 ‘실용’이 그가 추구하는 바인 듯 했다. 그러나 외견과 달리 대학 운영에 대해서는 교육철학과 청사진이 뚜렷했다. 그동안 총장으로 대학의 장기비전을 실현가능하게 다듬었고, 4년제 대학 위주의 교육 당국 정책에 대한 아쉬움과 대안도 조리 있게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형, 오빠로 불리는 30대 총장답게 학생들과의 스킨십도 강했다. 총장이 되며 학생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줄어 아쉽다는 그는 한 달에 한 번 학생들과의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해외 파견 학생들과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며 “사진을 보니 얼굴이 밝아져 좋다”며 웃음 짓는 그에게서 학생들과의 거리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 설립자의 막내아들로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됐지만, 배경보다 그만한 그릇이 됐기 때문이란 믿음을 주는 최 총장을 취임 1주년인 19일에 앞서 만났다.

- 취임 1년을 맞았다. 젊은 나이에 학교 총책임자를 맡았는데 소감은.
“짧은 기간이라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총장이 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게 아니라 나쁘다. 강의에 대한 부담감은 없지만 학생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니까, 학생들의 요구를 간과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그런 기회를 만들었다. 학생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얘기를 나누며 수요자인 학생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고 있다. 야간 수업을 듣는 성인 학생들 대상으로는 일과를 마친 후 직접 특강하며 얘기도 드리고, 학교 전반에 걸쳐 요구하는 내용이 있으면 수용해 바꾸기도 한다. 무엇보다 언제나 수요자의 니즈(needs)에 바탕한 운영을 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 연륜으로 학교를 이끄는 것도 방법이지만, 젊은 총장의 장점 또한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형, 오빠라고 부른다. 학생들과의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전문대 학제 자체가 기간이 짧은 데다 주로 졸업 후 곧바로 산업 현장에 투입된다. 시간도 타이트하고 취업 등 현실도 만만찮다. 이성 문제부터 시작해 자기 얘기를 가장 하고 싶은 시기 아닌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조금이라도 하려한다. 학생들과의 만남을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문대 학생들의 공통점이 발표력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같이 얘기하며 이런 약점도 조금씩 해결해간다. 물론 스스로도 여러 가지 배운다. 학생들의 관심사나 불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대학 운영에 도움이 된다.”

- 지난 5월 ‘KBC VISION 2020’이라는 미래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어떤 내용인가.
“2008년부터 준비해오던 중장기 발전계획이다. 체계적으로 비전을 세워 운영하는 게 필요해 준비해오던 것이지만, 특히 올해 리뉴얼 과정을 거쳐 많이 보완했다. 학교가 내년 개교 40주년을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의 나이 아닌가. 이상적인 미사여구보다는 학교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현실성 있는 계획으로 바꿨다. 직업역량 톱 10이 핵심이고, 설립자의 창학이념 4가지를 기관평가 인증과 연계한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지난달 말까지 끝마쳤다. 공급자 위주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가는 게 골자다.”

-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됐지만 철학과 원칙이 뚜렷하다. 비결이 있나.
“혼자 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많이 부족하지만 구성원들이 잘 따라준다. 예컨대 교육역량강화사업 연속선정 같은 객관적 성과를 거두니 목표에 대한 공유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 하는 공감대 형성이 최우선이다. 총장 취임할 때 설립자가 말씀한 게 두 가지다. 지휘자나 감독이 직접 연주하거나 경기하지는 않으니 걱정 말고 구성원과 함께 하라는 것, 그리고 직접 연주나 경기에 뛰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총장을 맡게 됐지만 이런 원칙을 새기고 대학 구성원과 같이 힘을 모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 교육역량강화사업 연속선정 등 성과가 눈에 띈다.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
“사업 선정으로 재원 부족 탓에 하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을 할 수 있게 됐다. 대표적인 게 해외 체험이다. 지난해 신입생 예비대학을 하는데 해외 체험 해본 사람 손 들어보라 했더니 거의 없었다. 그때 프로그램을 추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학교에서 전액 비용을 부담해 방학 6주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했다. 학생들에게 진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영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수업충실도와 함께 자신이 왜 어학연수를 가야 하는지, 갔다오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발표하게 했는데 깜짝 놀랐다. 동기 부여가 되니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으로 바뀌더라. 학생들과 카카오톡으로 얘기를 나눴는데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밝아지고 만족하고 있어 기쁘다.”

 

▲ 박성태 본지 발행인(사진 오른쪽)과 환담 중인 최재혁 총장.

 

- 교육 당국의 전문대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문대의 어려움이 많다. 전문대끼리만 경쟁하는 게 아니라 4년제 대학과 경쟁해야 한다. 사실 학력 자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4년제 대학 합격했는데 우리 대학에 온 학생도 있고, 1지망에 우리 대학 떨어지고 4년제 대학 간 경우도 있다. 경쟁체제라 할 수 있는데 전문대 학제를 활용하는 고민이 없고 이슈화도 되지 않는다. 간판을 위해 목적의식도 없이 4년제 대학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최근 ‘반값 등록금’이 이슈가 됐는데 차라리 등록금이 저렴한 전문대에 와서 공부한 후 취직해 편입하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책 입안하는 책임자가 전문대 출신이 아무도 없으니 자꾸 4년제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머리’에만 집중하려 해 문제가 된다. 전문대 졸업인력을 활용해 안정된 ‘허리’를 만들어주는 방안이 있는데 사회적 인식이 너무 부족해 아쉽다.”

- 맞는 말이다. 지방 전문대라 어려움이 더 클 텐데 학생 충원은 잘 되고있나.
“힘든 것은 사실이다. 경북전문대학은 약 5년에 걸쳐 정원을 500명 가량 줄였다. 각종 평가지표 자체가 몇 명 입학보다 몇% 충원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있는 현실 아닌가. 국내 최고 오지가 바로 이곳 경북 북부지역이다. 40여년의 학교 역사 중 설립 당시부터 학생 모집 자체가 최대 고민이었다. 이 지역 출신 학생들은 20~25%에 불과한 수준이다. 하지만 학생 모집을 위해 늘 고민하고 많이 움직여온 전통이 지금에 와서는 되레 강점이 됐다. 교수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을 만나고 응대하는 게 몸에 익었다. 입학자원이 급감하는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하는 시기 아닌가.”

- 앞으로 임기가 더 많이 남았다. 어떤 학교로 만들어가고 싶은지.
“구성원들의 의지와 단결이 중요하다. 우리처럼 작은 전문대학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으면 고사된다. 비슷한 학제끼리 통합하는 등 자체 조정을 통해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재편할 생각이다. 직업 고등교육에 대한 롤모델도 만들 계획이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2학기에 걸쳐 CS교육을 하고 있다. 인성과 직업기초능력 교육을 책임진다는 의지다. 교수들에게는 커리큘럼에 전공을 7과목 이상 넣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공급자적 시각에서 이것저것 가르친다 해도 소화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얕게 여러 가지를 배우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배우는 게 낫다. 기업들이 경북전문대학 출신을 써보니 안심이다, 졸업생이 진국이다,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학생들의 기본기를 다지는 데 역점을 두겠다.”

■ 최재혁 총장은…
경북전문대학이 위치한 경북 영주 출신의 최재혁 총장은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재혁 총장은 2004년 경북전문대학 교수로 부임해 기획조정실장과 사무처장, 부총장 등의 학내 보직을 거쳐 2009년 총장으로 취임했다. 저서로 <고객만족 워크북-CS1·CS2>와 통합본 <고객만족/CS 워크북>이 있다.

<대담 = 박성태 발행인, 사진 = 한명섭 기자, 정리 = 김봉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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