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본지 논설위원·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본지 논설위원
말이 되지 못한 말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는 소설적 표현은 이시영의 ‘말이 되지 못한 말’이라는 시에서 적나라하다. 임종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허공처럼 입술을 열었으나 그 소리가 아들에게 건너오지 못했다. 말이 되지 못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을 들으려고 아들은 달싹거리며 마음의 귀를 연다.

<남한산성>의 김훈은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이 기름진 뱀과 같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다고 했다.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든 뱀의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히고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며 떼 뱀으로 뒤엉킨 묘당의 말들은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임금은 말의 산맥 너머 겨울 들판을 보지 못했다고 썼다.

투표를 사흘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장은 네 번 울고 세 번 돌아섰다. 무릎도 한 번 꿇었다. 그러나 시장이 흘린 눈물은 시민들에게 말이 되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손수건을 꺼내 스스로 세 차례 돌아섰으나 싸늘하게 돌아선 민심을 돌려세우진 못했다. 시민들의 발길이 투표장으로 향하도록 무릎을 꿇고 읍소했으나 오히려 시장이 역점을 둔 한강의 새빛둥둥섬 앞에서 투표를 거부하자는 시위가 열렸다.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던 시장이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되지 않겠다는 ‘엄청난 말’을 했을 때 시민들의 일군은 ‘나도 대통령 후보가 되기를 포기한다’며 그 말을 희롱했다. ‘선거’로 뽑힌 시장이 마침내 그 시장직을 시민들의 ‘투표’ 참여율이나 선택의 결과에 따라 내놓겠다는 말을 했을 때조차 유권자 넷의 셋은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시장의 말은 말로 전달되지 못했다. 무릎 꿇은 시장의 흘러내리는 눈물도 시민들에게 말이 되지 못했다.

시장은 26일 서울시장직을 사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직선거법 절차에 따라 선출된 서울 시장이 주민투표법상의 투표율에 시장직을 걸고 물러난 처사를 두고 세간의 말들이 엉켰다. 선거와 투표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를 힐난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주민투표에 참여해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언론과 투표를 거부하는 것도 민주적 의사표현의 하나라는 언론으로 나뉘어 설법을 전했다.

‘나쁜 투표’라며 ‘착한 거부’ 운동을 벌이는 진영이나 같은 관점의 언론사들은 이번 투표를 시장의 “꼼수” 혹은 “정치놀음”이라고 폄하했다. 반면 주류 언론은 서울시의 주민투표 참여가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고 치켜세웠다. 투표율을 두고 여당 대표가 “사실상”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하자 여기저기서 “사실상” 패러디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반값이 아니라 전체 등록금의 25.7%만 납부해도 ‘사실상’ 납부로 간주하고 한 학기 학사일정의 4분의 1만 이수하더라도 ‘사실상’으로 인정하자는 패러디도 나옴직하다.

투표와 관련한 말들의 성찬 속에서 그 말들의 일부는 투표 결과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투표참여나 투표거부를 독려하는 거침없는 메시지들이 자유롭게 유통된 것도 눈여겨봐야 할 선거문화다. 돈을 묶고 입은 푼다는 공직선거법의 취지는 그동안 선거운동 현장에서 제대로 착근되지 못하고 현실과 괴리를 보여왔다. 웬만한 인터넷상의 선거 관련 표현은 규제 대상이 되었다.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투표운동 양상은 향후 공직선거법의 개정 방향을 밝혀주었다.

말이 되지 못한 범부의 말이더라도 자식의 가슴에 비문처럼 새겨진다. 미래의 대통령 후보나 현역의 시장직을 걸겠다는 비장한 공인의 말은 잠긴 투표함을 여는 열쇠가 되지 못했다. 시민들의 눈은 이미 눈물 저편의 말의 진정을 꿰뚫어볼 정도로 밝아졌다. 입의 혀로 쏟아낸다고 해서 모두가 말이 되진 않고 말이 되지 못한 눈물도 흔하나 보다. 언론과 공인은 스스로의 설법과 말의 무게를 헤아려 봐야 할 때다. 시민의 밝은 눈을 추수할 정도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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