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 개선 없이는 부실 꼬리표 악순환” 성토

5일 발표된 17개 학자금대출제한대학(이하 대출제한대학)은 부실대학의 꼬리표를 뗄 수 없게 됐다. 이들 대학은 “평가지표의 맹점을 보완하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실대학이란 낙인 탓에 앞으로 지표 개선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올 것이라는 우려 섞인 불만도 흘러나왔다.

■ “이럴 수가…” 악재에 머리 감싸쥔 대학들 = 올해 대출제한대학의 면면을 살펴보면 의외의 대학들이 눈에 띈다. 예상치 못한 ‘부실대학’ 성적표를 받아든 해당 대학 구성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원광대가 대표적 사례다. 지역 명문사학으로 손꼽히는 대학이지만 올해 취업률 지표가 크게 떨어지며 대출제한대학에 포함됐다. 취업률 하락 비율이 여타 지방대가 1%p 내외 정도였던 데 비해 원광대는 3.4%p나 떨어지며 취업률이 최하 수준을 보인 게 치명적이었다는 자체 분석 결과다.

김진병 원광대 기획조정처장은 “우리 대학이 지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내부적으로 우리가 이 정도로 추락했나, 그동안 너무 안주한 것 아니냐는 반성이 지배적”이라며 침통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학사 구조조정과 정원 감축을 위한 비상TFT를 꾸려 내년 4월에는 대출제한대학이라는 치욕을 벗어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목원대도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부채가 없는 건실한 재정을 갖춘 데다 대전 신도시 중심으로 이전해 성장해 나가던 차에 부실대학의 오명을 얻어 당혹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현 목원대 기획처장은 “우리 대학은 음악·미술대학의 규모가 크다. 예술 특성화 대학은 취업률이 낮게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취업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처장은 “이번 명단 발표는 지표에 따라 재단한 결과”라며 “대학의 특성화 분야나 구조적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지표만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대학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당장 올해 수시모집부터 직격탄을 맞을 게 뻔해 충격이 더하다. 지난해 명단에 포함됐던 대학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지표 개선’ 권고에 적극적으로 응해 대출제한대학에서 벗어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마음을 놓고 있던 이들 대학이 올해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 지표 개선 수차례 건의, 메아리 없는 당국 = 대학들의 볼멘소리에는 이유가 있다. 불합리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평가지표의 개선을 교과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혀 퇴출·정리대상의 기로에 선 대학들은 ‘피드백’ 없는 교육 당국을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특히 재학생 충원율이 평가에 크게 반영된 만큼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들의 목소리가 절절했다. 정원외모집, 편입 등으로 수도권에 학생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지방대를 동일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출제한대학이 된 건동대 권태수 기획과장은 “재학생 충원율 비중이 너무 높다. 건동대는 4년제대로 전환한 지 5년도 채 안 돼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표”라며 “작년부터 지표의 부당함에 대해 문제 제기했는데 제대로 된 답변이 없다”고 호소했다.

더구나 재학생 충원율은 편제정원 기준으로 교원 확보 수준을 따지는 전임교원 확보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의 ‘이중적용’ 또는 ‘중복산입’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재학생 충원율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더해 전임교원 확보율에서마저 점수가 낮아지는 문제점이 있다.

김기선 대불대 교무처장은 “재학생 충원율의 경우 지방대는 어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전임교원 확보율이라도 편제정원이 아닌 재학생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게 대학의 현실에 맞는 것”이라며 “대불대는 재학생 기준으로 전임교원 확보율 기준을 충족시킨다. 사실상 학생 충원이라는 하나의 지표로 왜 이중의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적용 지표의 ‘시간차’도 불만이다. 10월 1일 기준 지표를 적용키로 했는데 4월 1일 지표를 활용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다. 이미 이의 신청기간이 끝났지만 다시 한 번 이의 제기를 준비하는 대학도 있다. 최준식 명신대 기획실장은 “자체 구조조정 계획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자구 노력으로 단기간에 쉽게 좋아질 수 없는 지표들이 반영됐다”고 꼬집었다.

■ 부실대학 탈피 다짐해도 발목잡는 ‘악순환’ = 해당 대학들은 다음 평가에서 부실대학 탈출을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번 부실대학 꼬리표가 따라붙으면 대외 이미지가 나빠지고 학생 모집도 어려워지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얘기다.

절치부심하는 대학들은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김진병 원광대 기획조정처장은 “정원을 약 10% 줄이고 11개 학과를 통폐합할 계획이다. 또 뉴스레터 등을 통해 학생·학부모에게 대학의 대처를 자세히 설명하고 철저히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대들도 자체 변화 노력에 나섰다. 송주승 김포대학 기획처장은 “임시이사체제를 정리하고 학교 정상화를 이루면 각종 지표가 충분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놨다. 김상범 영남외국어대 행정처장도 “충원율 지표 향상을 위해 2012학년도부터 신입생 정원을 1100명에서 700명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권태수 건동대 기획과장은 “현재 지표를 계속 활용하는 한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일단 대출제한대학으로 발표되면 엄청난 타격이 있다. 수시모집 입시철인 8~9월에 명단을 공개해 더 피해가 심하다”며 “부실대학 낙인을 찍어버리면 학생 모집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한 지방대 기획처장은 “학사 구조조정을 할 경우 지표가 불리해질 수 밖에 없는 폐과된 학과는 계산에서 제외시켜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현재 교과부의 산입방식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부실대학에서 벗어나려고 애쓸수록 지표가 더 불리해지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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