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4월이면 경희대 캠퍼스는 꽃으로 피어난다. 이미 아름답기로 소문난 캠퍼스지만, 1년 중에서 이때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철도 없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앞다투어 피고, 화사한 벚꽃이 그 자태를 뽐낼 즈음, 교화이기도 한 목련이 탐스런 꽃봉오리를 터뜨리면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대개 온갖 꽃들이 만발하면 어김없이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터라, 시험 공부에 바쁜 마음을 더없이 싱숭생숭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학생들은 없다. 시험이 아니라 시험 할아버지가 온다 하여도 꽃향기에 취하는 그 아름다운 한때를 포기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하여, 봄날의 교정에는 여기저기서 눌러 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봄날의 정취에 흠뻑 빠져드는 사람들은 비단 학생들만이 아니다. 꽃 그늘 아래서 뛰어 노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삽화를 보는 듯하고, 도시락을 싸 들고 꽃구경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도 즐겁기는 매 한가지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봄날, 경희대 캠퍼스는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흥겨운 잔치판인 것이다.

연분홍 치마에 흩날리는 봄바람 속에 봄날이 가면, 캠퍼스는 다시 녹음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꽃무리에서 녹음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는 낙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비처럼 흩날리는 벚꽃들의 분분한 낙화, 힘겨운 듯 후두둑 지고 마는 목련의 처절함이 어우러지면서 봄의 종말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때, 학생들은 잔디밭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이른바 낙화주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하며 마시던 낙화주는 봄밤의 정취가 더해 갈수록 취기를 더해 주었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내달리던 캠퍼스는 가을이 오면 다시금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다가 단풍마저 곤한 몸을 땅에 누이고 나면 겨울의 서정을 물씬 안겨 주는 설경으로 이어진다. 그리곤 다시 봄. 겨우내 나무 속에 움츠렸던 생명의 수액이 다시금 꽃으로 피어난다.

봄에서 여름으로,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은 사실 경희대 캠퍼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희대 캠퍼스에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함과 화려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노력과 정성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다. 그 단적인 예를 우리는 캠퍼스 곳곳에 심어진 나무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캠퍼스의 공원화를 기치로 내걸고 조성된 교정이지만, 각각의 나무와 꽃, 분수와 호수, 그리고 바위가 빚어내는 조화는 자연의 것이라기엔 일면 너무 인위적이고, 단순히 인위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의 모습을 닮아 있다. 서울캠퍼스의 교시탑에서 본관 앞 분수대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만 해도 그렇다.

길가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이 서로 마주보며 팔을 뻗어 나무터널을 만들고 있는데,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을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사실, 경희대 캠퍼스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무작정 심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어느 곳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 심을 때 나뭇가지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지를 철저하게 계획하여 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관된 조감도는 설립자인 조영식 학원장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설립자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캠퍼스 조경만을 놓고 본다면 그는 현재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만든 산 증인이자 일등공신이다.

서울캠퍼스에 처음 터전을 잡을 무렵, 고황산은 숱한 벌목으로 황폐화된 민둥산이었다. 그곳을 지금의 푸르름으로 가꾸기 위해 조영식 학원장은 수많은 나무를 사들여 지형과 어울리게 심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나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했던 것이다.

조영식 학원장이 전체적인 조경의 밑그림을 제공했다면, 그 밑그림을 완성시킨 사람들은 학교의 조경 담당 직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팽정식 조경반장이다. 1973년부터 경희대에서 조경사로 일해 온 그는, 서울캠퍼스 내 2백50여 종, 18만 여 그루의 나무를 관리하고 있으며, 자신이 직접 심은 나무만도 5만여 그루에 달한다.

나무와 아픔을 같이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은 28년 동안 나무의 상태를 매일 기록한 1백여 권의 '나무 일지'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유난히 폭설이 많았던 지난 겨울, 1백50년생 소나무를 지켜내지 못한 회한에 아직도 가슴아파 하는 그런 사람이다. 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나무가 그만 뚝 부러지고 만 것이다. 밤새도록 눈을 털어내며 지켰는데도….

이러한 노력과 정성에 더하여 오늘날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만든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자연친화적인 개발에 있다. 서울캠퍼스나 수원캠퍼스 할 것 없이 모두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모두들 산의 지형을 절묘하게 살리면서 교정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서울캠퍼스의 노천극장과 대운동장은 산자락의 구릉지대에 스탠드를 만들어 산허리가 잘려 나가는 흉물스런 모습을 피했고, 수원캠퍼스의 사색의 광장은 본래 산의 골짜기에 펼쳐져 있던 논이었는데, 그 지반의 돋우어 산으로 둘러싸인 넓고 호쾌한 광장을 만들었다.

어쩔 수없이 산자락을 파헤칠 경우에도 바위와 나무들로 마무리 조경공사를 하여 붉은 속살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이처럼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리다 보니 양 캠퍼스에는 학생들의 숨을 가쁘게 만드는 고개 아닌 고개가 자리잡고 있는데, 학생들은 그 둘은 모두 '헐떡고개'라 부른다. 서울캠퍼스의 교시탑에서 노천극장으로 올라는 길, 수원캠퍼스의 체대에서 산업대와 사회대로 넘어가는 길이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서울캠퍼스와 수원캠퍼스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서울캠퍼스의 경우 수목이 우거지고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반면, 수원캠퍼스는 건물 하나만 보더라도 호쾌하고 호방한 맛이 있다. 서울캠퍼스가 여성적이라면 수원캠퍼스는 남성적인 멋이 강하다고 할까?

특히, 좌우 길이가 1백미터에 달하는 우람한 도서관과 그 앞에 드넓게 조성된 사색의 광장은 남성적인 멋을 뽐내는 지역의 명소이다. 학생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사색의 광장은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거나 산책을 하는 지역 주민들로 가득 찬다. 등나무 그늘 밑에서는 가족간의 훈훈한 정이 피어나기도 한다.

어린이날과 같은 때는 사색의 광장에서 수거되는 쓰레기만도 트럭 8대 분에 해당된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여기에 수원캠퍼스를 사방에서 안고 있는 산에는 등산로가 즐비하여 이 역시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언제든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경희대의 캠퍼스는 굳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 명성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돈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드는 아름다운 캠퍼스를 만든 이유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만큼 훌륭한 스승도 없거니와, 아름다운 자연만큼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는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나무의 미학은 그늘에 있다. 나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볼거리이지만, 나무가 제공하는 그늘이야말로 정신적 문화 유산의 터전이다. 등짝을 후려치는 땡볕에 노출된 곳이 노동의 공간이라면, 노동에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나무 그늘은 휴식과 재충전, 그리고 정신문화를 가꿀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경희대 캠퍼스는 그늘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늘의 미학이 충만한 곳이기에 진정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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