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명 본지 논설위원/숭실대 철학과 교수

사람이 제도를 만들지만, 만들어진 제도 안에서 사람은 살 수 밖에 없다. ‘제도(制度)’란 관습이나 도덕, 법률 따위의 규범이나 사회 구조의 체계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법칙, 법제, 법도, 법규, 조직이 있다.

사람과 제도의 관계는 이중적이며, 늘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어떤 제도인가는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이는 서구 시민사회를 들여다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시민의식이 시민 사회제도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식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의 욕망, 감정, 의지 등 주관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나 규범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제도, 체계, 법, 규범은 공동선을 위한 이념,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요즈음 시중에서 많이 듣는 제도 개혁 혹은 제도 개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궁극적으로 제도는 사람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그 존재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도가 오히려 기득권에 근거하여 폐쇄적인 이익에 눈을 돌린다면 이는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하고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꼴이 되고 만다.

선거철을 앞두고 시민후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거니와 최근의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정당으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와 요청의 반영이다. 그야말로 정당제도의 한계를 잘 드러내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대학가에선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일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살아남는 일이 공정성과 정당성을 합리화할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공정성과 정당성을 따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정성(公正性)은 ‘공평하고 올바른 성질’이며, 정당성(正當性)은 ‘사리에 맞아 옳고 정의로운 성질’이다. 공평하고 올바르며 사리에 맞는 정의로운 일은 생활 속에서 사람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이다.

사람의 태도와 자세 및 의식이 이를 결정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의 품성과 인성교육이 절실하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는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아니며, 삶의 만족도와 질이 매우 낮다. 그런 사회는 구성원 간에 혼란과 갈등이 상존한다.

따라서 인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선진화된 서구사회의 시민교육은 시민들로 하여금 사회적 환경을 바르게 인식하게 하며, 개인의 삶이 사회구조 및 사회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음을 인지시킨다. 그리하여 시민참여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현실의 분석능력과 아울러 비판적 이성에 의해 불합리한 구조를 개혁할 능력을 키운다.

시민들은 시민교육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제도가 바람직하게 운용되고 있는가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 대립과 갈등은 물론 문제의 소재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만약 시민들의 사회의식이 미숙하다면, 지배체제의 은폐와 조작에 의해 현실인식을 올바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교육은 사회구조 및 제도와 관련된 것 중에서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을 밝혀내고 참여와 결단으로 개혁과 계몽의 방법을 제시한다. 시민교육은 사회참여의 실천교육으로서 사람들이 사회적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사회 참여를 하도록 한다.이는 단지 인지적인 차원에서의 지식전달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당한 행위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제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근거를 규정하는 데 있다. 제도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여 우리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소통이 막히거나 단절된 제도는 더 이상 제도가 아니기에 ‘새로운’ 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새로운’이란 말은 합리적 의사소통의 질을 나타낸다. 우리시대의 모든 제도가 제대로 된 소통의 바탕에서 만들어졌는지 열린 마음으로 되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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