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회의 화두는 이미 몇해 전부터 계속 ‘구조개혁’이다. 정부의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대학 수의 급격한 증가와 양적 팽창을 방관했고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던 대학들은 학생정원 부족현상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난관에 부딪혀있다. 급기야 정부가 칼을 들이댔다. 사학들은 이같은 정부 주도의 가지치기식 구조조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학의 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창간 23주년을 기념해 본지는 10일 사학법인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법인협의회 이대순 회장을 만나 대학 구조개혁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 사립대학의 경쟁력 확보와 사학의 발전을 위해 한국대학법인협의회는 현재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나

“한국대학법인협의회는 학교법인 이사장들이 자율적으로 상호정보를 교환하고 주요 관심사를 협의 연구하는 사단법인체다. 사립대학의 자주적 발전과 공공성 강화라는 설립목적에 맞춰 현재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사학제도와 운영에 관한 정책개발연구를 비롯 △사학 현안 세미나 △정부에 대한 정책 건의 △행정책임자 연찬 사업 △사립대 경영정보 자료 발간과 배포 사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달 28일 ‘일본 사립대학의 거버넌스와 재정제도’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일본 사립대학제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우리 사학들이 지향해야할 방향을 살펴보았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는 제주도에서 대학법인 사무국장, 사무처장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책임자 연찬회를 가졌다. 이 연찬회에는 △대학선진화 정책 방향 △사립대학 재정현황과 정책 방향 △대학구조조정·반값등록금 관련 감사원 감사 △대학구조개혁 추진 경과와 사후 계획 △사립대 감사방향과 실례 등을 다뤘다. 이 모든 사업은 사립대학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사학제도 개선, 사립대학이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대학재정 확충 이 두 가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

- 최근 화두는 대학 구조개혁이다. 자발적인 구조개혁이 정부 주도가 아니면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개혁에 대한 입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은 정원감축, 학과조정 등 대학 생존을 보전하기 위한 통상적인 구조개혁이 아니라 출생률 감소로 이어진 학령인구 급감현상을 고려한 사립대 강제퇴출 사업이다. 대학구조개혁과 관련 정부의 역할은 사립대학들의 퇴출경로를 마련하는 데 그쳐야 하고 퇴출은 사립대학이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그간 부단히 정부에 건의해왔다.

사실 사립대학 퇴출의 가장 큰 난점은 대학해산이나 폐쇄에 따른 교직원 처리 문제다. 학교가 폐쇄되면 대학당 최소 100명 이상이 곧바로 실업자로 전락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러한 사업을 시행하면 구조개혁이 빨라지긴 하겠지만 폐쇄되는 대학의 구성원과 지역 사회 반발, 법적분쟁이라는 후유증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반값 등록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반값등록금은 교육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정책이다. 대학교육의 질적 개선을 통해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태생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대학교육의 발전은 외면한 채 실현가능성도 없는 포퓰리즘적 발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부터 그렇다. 대다수 건전한 사립대학들까지 도덕성을 의심받게 되고 학생들은 완전한 반값등록금을 보장하라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OECD 국가들 중 미국 다음으로 우리 대학 등록금이 높다고 강조하는데 사실 OECD 국가 상당 수인 유럽에서 대학교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는 공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학에 대한 고등교육의 의존도가 높은 우리와 그들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결국 우리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수준이 높은 이유는 정부와 사회의 교육비 부담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정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인가

“대학교육을 받은 수혜자는 학생 개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회 즉 기업과 국가 역시 수혜자다. 국가 경제를 견인할 산업체는 대학 졸업자들을 고용하고 이들을 통해 수익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수혜자 부담을 원칙으로 보면 누가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나. 기업과 국가다.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은 이 원칙에 따라 국가가 상당비율의 경상비 보조를 하고 있고 기업과 개인들의 기부제도도 활성화돼 있어 상대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우리처럼 크지 않다.

실제로 OECD 2010년 통계자료를 보면 고등교육단계에서 정부가 부담하는 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이 우리나라는 0.6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이 1.0인 점을 감안하면 최하위수준이다. 그렇다보니 고등교육단계에서 등록금을 포함한 GDP 대비 민감부담율은 OECD 평균 0.5의 5배에 이르는 1.9에 달한다.”

- 반값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적립금, 법정전입금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적립금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금의 성격을 띄고 있다. 149개 4년제 사립대학의 적립금 총액은 2009년 결산기준으로 6조9493억원이다. 용도별로 건축적립금이 3조2000억원으로 46%를 차지해 가장 많고, 35% 가량을 차지하는 기타 적립금이 2조 4155억원, 연구적립금 6381억원과 장학적립금 5954억원이 각각 8~9%의 수준이다. 적립금 중 가장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축적립금은 건물노후에 대한 감가상각충당금이다.

우리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사립대학은 미래의 건축수요에 대비해 건축적립금을 적립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9년 536개 대학법인의 기본금(일본의 적립금 통칭)이 23조5849엔으로 이중 1호기본금 즉 건축적립금이 21조1998엔 규모다. 미국 하버드대 적립금은 292억달러, 우리 돈으로 31조원으로 전체 우리 사립대학 적립금 총액의 4.4배다. 사립대의 적립금 재원은 세계잉여금 뿐만 아니라 동창이나 교직원의 기부금, 외부 후원금 등이 포함된다.

반값등록금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등록금 상한제와 법정전입금 법인 부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이다.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과 사학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등록금 문제는 정치권에서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당국과 대교협 등 대학총장대표가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할 사항이다. 입법화할 사항은 등록금이 아니라 사립대 발전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이다. 사립대학 경상비 보조, 세재개선, 기부금 확대, 대학설비 기준 현실화 등이 그것이다.”

- 대학구조개혁위원회는 최근 하위 15% 대학을 선정하고 정부 재정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기준과 방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43개 대학이 정부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총장이 사퇴하고 보직교수들이 자리를 내놓고 하면서 해당 대학 구성원 반발이 상당하다. 지역사회 반발이 역시 만만치 않다. 지방대학은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대학을 강제로 퇴출대상에 올려놓았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워 한다. 평가기준도 졸업생 취업률이 20%나 반영돼 특히 인문계열, 예체능계열 등 취업이 상대적으로 잘 안되는 학과의 학생 정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학이 피해를 당했다. 대학 해산을 전제로 한 구조개혁은 정부가 주도해 강제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부는 속도를 다소 늦추더라도 자율적으로 퇴출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데서 그 역할을 끝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창간 23주년 특별대담을 갖고 있는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과과 본지 이인원 회장(왼쪽) 

- 정부에서는 이른바 부실사립대의 퇴출 방안과 관련 입법안을 내놨고 국회에서도 김선동 의원이나 조전혁 의원이 입법안을 이미 상정해 놓고 있는데

“정부안은 대학법인의 경우 재산출연자에게 잔여재산의 일부도 환원할 수가 없어 인센티브가 취약하다. 인센티브가 약하면 법률의 실효성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선동 의원의 구조개선촉진지원법률안은 행정조치로서 강제퇴출 근거를 정하는 것, 자율구조개선으로 해산하는 경우에만 잔여재산귀속특례를 인정하는 것인데 문제가 있다. 조전혁 의원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중 학교법인 해산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초중등학교 법인에 적용했던 기존의 인센티브를 대학법인에게도 부여하고 있는 안이다. 법률의 실효성 측면에서도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대학 감사가 시행되고 부실대학 퇴출 논란이 일면서 사립대 법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은 가지고 있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연이어 겪으면서 국가재정이 빈약하다보니 정부는 국민의 교육열을 수용할 학교 설립 여력이 없었다. 그 당시 독지가들이 사재를 털어 사립학교를 세웠다. 우리나라 사학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산업화시기에는 산업인력양성 산실로서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일부 문제사학의 비리나 문제를 마치 전체 사학의 비리나 문제처럼 확대 해석되면서 사학전체가 비리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는데다 지난 5월 제기된 반값등록금 문제로 또다시 사학전체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사학관련 단체들과 연대해 사학들이 사학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자정활동사업을 강도높게 벌이고 역량강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생각이다. 정부나 언론의 이해와 격려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 마지막으로 사립대법인들을 대표해 건의하거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교육의 국제경쟁력 확보는 우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받는 첩경이다. 이를 위해 교육투자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 대학교육비의 합리적 분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국회와 정부에 대해 반값등록금 문제와 관련한 입법과 정책 추진에 있어 사립대학의 생명인 자율과 자치의 근간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은.
1933년 전남 고흥 출생. 서울대 법대를 나와 동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요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라도 교육감, 11·12대 국회의원, 체신부 장관, KT이사장, 호남대 총장, 경원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대학총장협회 회장과 서울대 법대 동창회장을 맡은 바 있다. 현재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 경남대 학교법인 한마학원 이사장,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 대담 = 이인원 본지 회장  /  정리 = 윤지은 기자  / 사진 = 조용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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