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화·통폐합 유도방침 등 앞선 개혁책 무색

행·재정적 제재 연계해 압박 … 교수들 반발 거세
국립대발전위 대화창구 마련, 의견 합일은 미지수

▲ 국공립대 총장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의 구조개혁 관련 발언을 듣고 있다. 한명섭 기자

교육과학기술부의 국립대 구조조정 방안이 갈림길에 섰다. 그간 교과부는 국립대간 또는 교대-일반대 통폐합 추진을 비롯해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제시하며 구조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선진화 방안에는 국립대 법인화, 성과급적 연봉제 적용, 대학운영 성과목표제 도입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됐지만 최근 논의는 직선제 폐지로 수렴되는 모양새다. 교과부와 국립대들이 총장·학장직선제 폐지를 비롯한 학장·학과장 공모제 도입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국면으로 전환됐다.

■ 교수들 반발 여전… 중간에 낀 대학본부 고심중 = 최대 걸림돌은 대학 일선의 반응이다. 직선제 폐지에 대한 교수사회의 반대 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교육역량강화사업 선정을 비롯한 국립대 평가에 연동시킬 것을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쉽사리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 초 시행령이 확정된 상태로, 총장직선제 폐지의 ‘전초전’이라 여겨지는 학장직선제 폐지 및 학장임명제 시행마저도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학장임명제를 걸어놓고 물밑으로는 단과대학 교수들이 학장 후보에 대한 의견을 모아 본부에 제출하는 ‘사실상의 선거’가 이뤄지고 있는 국립대가 많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는 각 대학의 단과대 교수회에 지침을 전달해 입후보, 후보자 추천 등 공식 선거 절차는 생략하되 학장 후보에 대한 교수들 의견을 수렴해 본부에 올리도록 했다. 총장이 학장을 임명할 경우 지명자에 대해 단과대 교수회가 임명동의 절차를 진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중간에 낀 대학본부는 난처하다. 교과부의 압박과 교수사회 반대 여론 사이에서 중재에 힘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현직 총장들이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데다 대학본부 처장단 역시 교수들이라 교수사회 여론을 외면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한 지역거점국립대 보직교수는 “교과부의 행·재정 불이익 방침이 있어 직선제 폐지로 방침을 정했지만, 교수회가 비공식적으로 후보나 선출 방식에 대한 의견을 내고 본부가 수용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어 고민스럽다”고 토로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하위 15% 대학이라고 해도 입장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구조개혁 중점추진대학에 지정된 군산대 김형주 기획처장은 “교수들이 자구책 마련에는 동의하면서도 총장직선제 폐지와 학장·학과장 공모제 도입은 반대하고 있다”며 “학교 입장에서는 교과부가 제시한 선진화 지표 점수를 끌어올려 하위 15%에서 탈출하는 게 우선인데 학내에서 각 항목에 대한 반대가 심해 대학본부로서는 딜레마가 크다”고 말했다.

■ 논의 테이블 차렸지만… ‘선진화 방안’ 법정다툼 = 교육 당국과 국립대 교수들은 이미 한 차례 해프닝을 치렀다. 지난 6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면담한 국교련 측이 ‘국립대학발전추진위원회’(이하 국립대발전위)를 만들어 국립대 구조조정 관련 사안을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이관해 이곳에서 논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교과부는 즉시 해명 자료를 내고 “선진화 방안 중단에 합의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엇박자는 국립대발전위 설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됐다. 자칫 국립대 구조조정을 중단한다는 뉘앙스로 비춰질 것을 의식한 교과부가 해명에 나선 것이다. 이런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국립대발전위는 꾸려졌다. 국교련 측이 국립대발전위를 통해 선진화 방안 논의에 임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국립대발전위에는 교과부와 국교련을 포함해 국립대 총장협의체 등이 참석하게 된다.

논의 테이블은 차렸지만 잘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교과부가 선진화 방안 추진을 고수하는 반면 국교련의 목표는 선진화 방안 철회이기 때문이다. 국교련 관계자는 “국립대발전위 설치는 테이블을 꾸려 정부와 논의를 하자는 것일 뿐, 국교련 기존 방침을 철회한 게 아니다”라며 “결국 목표는 선진화 방안 철회다. 투쟁 일변도로 가기보다 대화 채널을 열어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교련은 국립대발전위와는 별개로 장외투쟁을 병행할 방침이다. 국교련은 앞서 고등교육법 개정 입법 청원을 비롯한 선진화 방안 각 조항에 대해 교과부와 법정다툼에 들어갔다. 학장직선제 폐지와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각각 ‘교육공무원임용령’과 ‘공무원 보수규정’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교과부의 국립대 정책에 제동을 건 것으로,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 교과부가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국교련은 헌법재판소에 직접변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 통폐합 유도 갈아엎고 총장직선제 폐지로 선회? = 선진화 방안 중에서도 핵심 쟁점은 직선제 폐지로 모아졌다. 올해 들어 국립대들이 직선제로 선출, 교과부에 추천한 총장 후보들이 잇따라 임용제청을 거부당한 게 교육 당국의 심중을 반영한다. 최근 교과부와 교대들의 합의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교대가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는 대신 일반대와의 통합을 강제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높다. 교과부가 국립대 통제·관리를 위해 통폐합 철회나 행·재정 제재를 연계해 직선제 폐지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간 통폐합 등 기존에 제시한 구조조정 정책을 제쳐두고 직선제 폐지를 우선순위로 삼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구조개혁 중점추진대학에 선정된 강원대 측은 “교과부 방침에 따라 삼척캠퍼스와 통합했지만 이로 인해 재학생 충원율 등 지표가 오히려 나쁜 평가를 받았다”며 “통폐합보다 총장직선제 폐지가 더 큰 비중으로 반영된다면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교과부 입장은 선진화 방안의 흔들림 없는 추진이다. 교과부는 그간 시차를 두고 국립대 법인화와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 등을 핵심 이슈로 밀었다. 하지만 국립대들의 반발에 부딪혀 제 속도를 내지 못한 탓에 국립대를 직접 쥐고 흔들 수 있는 총장직선제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과부 정책이 국립대 현장에서 막힘없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대학 행정을 장악해야 한다는 게 솔직한 속내다. 대학간 통폐합 유도 등 기존 정책을 넘어 직선제 폐지가 최우선 과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교련은 성명을 내고 “총장직선제 폐지와 국립대 선진화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교과부가 국립대에 대한 관치(官治)를 강화한다는 의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막대한 국가 재정을 투입한 대학간 통폐합 등보다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를 중시하는 것은 자충수라는 얘기다. 국립대 교수들은 “교과부는 직선제 폐지를 행·재정적 제재와 연계시키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또 대학간 통폐합을 강제하지 않는 등의 조건을 걸고 대신 직선제 폐지를 강요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김봉구 기자


교대는 국립대 구조조정 시험모델
직선제 폐지 담보로 통폐합 막은 셈

정부가 2009년부터 추진해온 ‘교대-국립대 통합’ 구조조정 방향을 선회했다. 교대의 거센 반발에 따라 통폐합 대신 교원양성기관으로서 특수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구조개혁을 한다는 것이다. 단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는 교대에만 이 조건이 적용된다.

8개 교대는 여기에 합의해 지난 4일 교과부와 MOU를 체결했다. 직선제 방침을 고수하던 부산교대와 광주교대도 12일과 13일 직선제 폐지를 확정지었다. 이로써 모든 교대가 내년부터 총장직선제를 폐지한다. 정부는 이들 대학에 교원수급 감소에 따른 교대 정원감축은 그대로 진행하면서도 독자생존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해줄 방침이다. 총장직선제를 두고 교대들과 교과부가 ‘딜’을 한 셈이다.

직선제를 폐지한 대학들은 안도 분위기 가운데서도 “안타깝다”는 말이 나온다. 직선제 폐지보다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올 통폐합은 막아냈지만, 결국 대학 의지와 상관없이 직선제를 폐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김길수 부산교대 기획처장은 “결국 정부의 뜻은 일반대와의 통폐합과 총장직선제 폐지를 두고 양자택일 하라는 것이었다”며 “대학에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통폐합을 막기 위해 직선제 폐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범웅 공주교대 기획처장은 “교대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는 통폐합안을 막아낸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그간 교대에서 큰 잡음 없이 실시돼 왔던 총장직선제를 반강제로 폐지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총장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이는 교과부와 위기를 느낀 교대가 ‘빅딜’을 한 셈”이라며 “직선제를 폐지하는 대신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을 더욱 이끌어내 교대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교대들이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것은 전체 국립대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교과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 구조개혁도 결국 교대의 수순을 따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총장직선제를 고수하는 국립대가 통폐합 1순위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역의 한 교대 기획처장은 “교대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공립대 구조조정의 첫 번째 타깃이 된 것 같다”며 “다음 순서는 소규모 국립대가 될 것이다. 교과부가 1만명 이하의 소규모 국립대부터 직선제와 통폐합을 놓고 또 다시 빅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홍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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