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압박·후속 감사·학생 반발 ‘삼중고’

▲ 대교협이 7일 등록금 감사 결과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임시총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영길 대교협 회장, 김윤수 국공립대총장협의회장, 박철 사립대총장협의회장. 사진 한명섭 기자

대학들이 내년 등록금 인하 수준과 방식을 두고 고심에 쌓였다. 이미 등록금 인하 자체는 기정사실이 된 모양새다. 때문에 대학들은 등록금을 얼마나, 어떻게 내리느냐와 운영에 타격을 덜 받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달 들어 등록금 인하 압박은 강해지고 빨라졌다.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 시행 발표로 분위기가 형성되자 감사원이 등록금 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며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대학의 등록금 거품을 빼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이어 학생들은 등록금이 엉뚱한 데 쓰였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여기에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명목 등록금 5% 인하를 곧 발표하겠다고 밝혀 쐐기를 박았다.

대학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밖에서는 압박해 들어오고 안에서도 반발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등록금과 교직원 임금을 동결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헛수고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 등록금을 안 내리고 배길 수 있는 대학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 7일 임시총회를 열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으나 결론은 정부안인 등록금 5% 인하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정부 방침과 사회적 여론의 전방위 압박에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대학들이 불만을 갖는 지점은 등록금 감사에 대한 해석차다. 이월 예산을 최소화하는 게 목적인 공공예산 감사가 원래 업무인 감사원이 칼자루를 쥔 게 문제가 됐다. 성격이 다른 대학 재정 운용을 동일 잣대로 감사해 부정·비리집단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감사원과 해당 대학 사이의 견해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연세대는 법인이 부담해야 할 건축비를 연 수백억원씩 등록금으로 충당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 측은 법인회계가 아닌 교비회계에서 사용한 것은 맞지만, 등록금회계가 아닌 기금회계에서 이를 사용한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대학별로 평균 187억원의 차액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학생들의 반발도 거세다. 당장 등록금 책정 과정에서 이 금액에 해당하는 평균 등록금 12.7% 인하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정준영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은 학교의 ‘뻥튀기 예산’ 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이번 감사 결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감사 결과를 자료로 활용해 등록금 책정 과정에 학생들이 적극 개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학내외 갈등은 다른 대학들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견해가 엇갈리는 점에 대해 대학의 소명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학들의 입장을 반영해 부구욱 대교협 대학윤리위원장(영산대 총장)은 7일 임시총회에서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감사 결과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고, 발표 내용 중 감사원과 대학간 견해차가 있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등록금 인하를 정해야 할 시점은 눈앞에 닥쳤다. 감사원은 대학들에 대한 후속 감사에 들어가며 등록금 감사의 결과도 올해 안으로 최종 발표한다. 대학들은 국가장학금 지원을 골자로 한 정부의 등록금 부담 완화방안을 수용하면 이 방안이 전제한 등록금 5% 인하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이주호 장관이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에서 “대교협과 협의 중으로 명목 등록금 5% 인하를 곧 발표하겠다”고 말한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대학들은 등록금을 얼마나 내려야 할지, 어느 방식을 택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다. 정부의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으려면 등록금 인하와 장학금 확충 가운데 선택해 등록금 5% 인하 효과를 내야 한다.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면 각 예산 배정 규모에 따라 대학별로 등록금 고지서에 명시될 금액은 정확히 5% 인하된 금액이 아니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등록금 인하 쪽이 장학금 확충보다 부담해야 할 금액이 적어 대부분 대학들은 직접적인 등록금 인하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규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중앙대 기획처장)은 “포뮬러 지표가 등록금 인하 유도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등록금을 내리는 쪽을 택하게 될 것”이라며 “대학들이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손익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학이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운영된다는 인식이 정립되도록 스스로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감사를 계기로 관례가 되다시피 한 연구비 비리 예방을 비롯해 대학의 회계 투명성 확보와 같은 자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오수근 이화여대 기획처장은 “감사로 드러난 개인 비리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고윤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도 “불법투자나 분식회계를 방지하는 사립대 회계 투명성 보장이 선결 과제다. 내부적으로 불법이나 부실을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정립하고, 임용·건설 비리 등도 엄중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