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진 본지 논설위원·전북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의 대학은 오랫동안 대학의 서열구조, 학력·학벌 사회구조, 수도권과 지방 소재 대학의 질적 수준에 대한 사회적 편견 심화, 학문간 계층화, 교육양극화, 교육의 시장화 등과 같이 많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 대학의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현재 정부는 대학개혁정책을 통해 문제 해결보다는 대학가에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현 정부에서 추진해 오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 반값등록금 문제, 부실대학 발표 등이 그 예이다. 국가의 경제 규모에 크게 밑도는 고등교육투자 규모로 인해 발생된 반값등록금 문제를 재원 확보 노력보다는 대학구조개혁을 통해 예산 절감을 모색하였고, 이를 위해 교과부가 취했던 대학구조개혁 조치는 현재 크나큰 사회적 파장을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1일에 교과부에 설치된 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법적 근거도 없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9월 5일에 정부재정지원 제한 사립대학 43개교와 학자금 대출제한 사립대학 17개교의 명단을 발표하였고, 그리고 9월 23일에는 5개 국립대학을 부실대학으로 선정하여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일종에 해당 대학에게는 사회적으로 사망선고를 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부실대학의 선별 취지와 목적, 평가 지표 및 절차의 타당성과 정당성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 특히 부실대학 선정 평가지표가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국제화,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운영, 장학금 지급률, 학생 1인당 교육비, 등록금 인상수준, 대학전형 등 모두 8개의 성과·여건 지표를 사용하였는데, 과연 이러한 지표가 부실대학으로 판정할 수 있는 타당한 지표인지 의문이다.

이를테면, 대학교육 요인이 아닌 노동시장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취업률 그리고 국제화 수준이 기대수준에 못 미친다고 부실대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부패사학 문제는 외면하였다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특히 국립대인 경우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가 부실대학 판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이번 조치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아울러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실대학 명단 공개가 가져다 준 사회적 파급 효과이다. 유감스럽게도 부실대학이 대부분 지역에 소재한 대학이라는 점은 정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번 정부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고등교육 격차 문제, 즉 지역간 대학 수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정부의 단순한 평가에 의한 대학구조조정은 지방대의 몰락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부실대학 퇴출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추구하는 개혁가치가 자율과 경쟁인데, 부실대학 퇴출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나서는 모습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교육정책의 특성상 정부는 일관성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생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교과부가 추진한 부실대학 퇴출 조치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패사학을 방치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교과부는 국립대 법인화 정책이 대다수 국립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자 총장 직선제 폐지, 대학운영 성과목표제, 학장 및 학과장 공모제 등 실질적으로 법인화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들을 '선진화' 방안이란 이름으로 들고 나왔다. 마치 국립대학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면 국립대학이 선진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발상이다.

부실대학을 선별하는 과정에서도 국립대학인 경우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가 관건이었다고 한다. 교과부가 국립대학의 지배구조 개편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미국의 대학처럼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려면 지배구조 개편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교육투자의 노력이다.

하버드 대,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은 물론 주립대학들의 1년 예산이 4조원 이상인 반면에, 우리나라 주요 사립대 1년 예산은 6천억원 정도, 주요 거점 국립대학은 3천 500억원 정도이다. 정부가 우리나라 대학을 선진화시키고자 한다면 최우선순위의 정책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대학들은 정부로부터 선진국 수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후진국 수준의 직접적인 통제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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