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표 인하대 교수(정치학)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화두가 소통이 아닌가 싶다. 소통이란 사람이나 조직 간에 사실, 생각, 의견, 감정 등을 기호, 상징, 언어 등을 통하여 교환함으로써 공동의 이해를 형성하고 상대방의 의식이나 태도의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소통의 핵심은 공감에 있다. 공감이란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동조하며 교감을 이루어 반응하는 심리적인 유동성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회관계가 소통을 통하여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원만하게 유지될 수 없다. 소통 없는 사회는 신경이 마비된 사람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불통(不通)이 너무 심각하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노와 사, 노인과 젊은이, 가난한 자와 부자, 보수와 진보, 여와 야, 국민과 정부, 내 지역과 타 지역 간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사용하는 2040세대와 5060세대 간 정치의식 면에서 소통이 어렵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극단적으로 소통부재로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소통부재는 오해와 불신, 반목과 대립관계를 촉진시키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국민과 정치지도자 간 불통이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한다. 소통이 안 되니 정부가 불신 당하고 민심이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국민이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소릴 듣지 못한다. 2011년 사자성어로 교수신문이 오죽하면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엄이도종(掩耳盜鍾)을 선택했겠는가? 12월 대선에서 소통을 대통령 후보의 선택기준으로 꼽는 국민이 많은 것은 불통리더십에 대한 반작용이 아닌가 한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과 소통 없이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국민 삶이 팍팍할수록 국민과 지도자 간 소통과 공감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 혼자서 초능력을 발휘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남북문제 등 복잡하게 얽힌 국정현안을 단 번에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면한 수많은 국정과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현대 국가에서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다. 

하지만 국민과 정부 간에 소통과 공감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국가 지도자의 고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될 것이다. 미국 조지 워싱톤이 ‘대통령을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고 한 말이나, 토마스 제퍼슨이 ‘화려한 불행’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낮추고 국정운영에 대한 불평·불만도 덜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는 원인은 국정수행 실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국민과 소통을 외면하고 지시형의 일방적 리더십 행태를 보이는 데도 원인이 있다. 

국민과 지도자 간에는 무엇보다 쌍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요구된다. 국가 지도자는 항상 열린 마음, 진솔한 태도,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서 국민의 소리를 귀 담아 듣고 또한 자신의 정책의지를 잘 전달하는 쌍방향 소통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다음은 말보다 실천이다. 국민과 업적과 정책으로 소통해야 한다. 국민의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민의 피부에 와 닿은 사소한 해결책이라도 묵묵히 실행에 옮긴다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 감동만큼 효과적인 소통은 없다. 말이 앞서고 성과가 없으면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된다. 신뢰성이 결여된 상황에서 소통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시대·감성의 시대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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