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하영 기자
서남표 총장의 처지가 풍전등화다. KAIST 교수협의회가 교수투표를 통해 해임촉구 결의문을 채택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이사장이 총장의 사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 총장이 임기를 다 채우기가 쉽지 않다. KAIST의 경우 전임 러플린 총장이 교수들의 반발을 사 중도 하차한 바 있다. 때문에 서 총장도 “내가 자진사퇴할 경우 교수들이 총장을 흔들어 쫓아내는 두 번째 사례가 된다”며 ‘사퇴 불가’를 선언했다.

얼마 전 조선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4대 총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전호종 총장이 교수들의 압박에 못 이겨 사퇴한 것이다. 전 총장은 학내 직선 투표에서 2순위 후보자로 이사회에 추천돼 14대 총장으로 낙점된 인물이다. 하지만 1순위 후보자와 그를 지지하는 교수·직원들의 반발에 결국 사의를 표했다.

조선대의 총장선출은 ‘직간접 혼합형 선출규정’에 따라 이뤄진다. 이는 교수평의회·직원노조·총학생회·총동창회가 합의해 마련한 방식이다. 후보자 2명까지만 구성원 합의로 선출하고, 이 중 한명을 총장으로 선임하는 일은 이사회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때문에 전호종 총장을 흔들어 물러나게 한 일은 학내 구성원이 동의해 마련한 절차를 스스로 부정한 꼴이 된다.

비슷한 일이 KAIST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서 총장 스스로가 사퇴 불가를 선언했지만, 그의 자진사퇴를 종용하는 움직임이 전 방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오명 이사장은 작년 11월 서 총장에게 퇴진을 요청했고, 같은 해 12월 20일 열린 이사회 직전 서 총장을 따로 만나 “사임 의사를 밝혀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총장의 거취는 다음달 7일과 3월에 열리는 이사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2월 7일 열리는 이사회에선 4명의 새로운 이사가 선임된다. 만약 이들이 ‘반 서남표’ 성향 인사로 채워질 경우 해임 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현재 이사 선임권을 놓고 KAIST에서는 총장과 이사장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학 총장이 기대 이하이거나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을 경우 구성원들은 사퇴를 요구할 수 있다. 구성원 뜻에 역행하는 총장의 해임까지 가능해야 학내 민주화의 가치는 구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과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총장 선임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구성원들이 동의한 원칙까지 뒤집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행태는 근절돼야 한다.

서 총장의 퇴진도 법과 규정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정식으로 이사회에 그의 해임 안이 상정되고, 이사 다수의 동의를 얻어 가결시키는 절차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교수협의회와 이사장이 나서 사퇴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총장 흔들기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난 2010년 서 총장 연임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교과부도 어느 한 쪽을 편들기보다는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입장에서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수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총장들이 대학에서 존립하기 어려워진다. 대학 총장은 때로는 교수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과 혁신을 주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총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사퇴나 해임에도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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