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전국대학신문주간교수협의회 회장/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송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텔레비전 방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지난 2011년 11월 28일과 2012년 1월 16일에 케이블 TV업계(주로 MSO)가 KBS2, MBC. SBS 등의 디지털 지상파방송 재전송을 중지한 사건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이 사태로 1500만에 이르는 케이블 TV 유료수신 가구들 중 다수가 이들 지상파 방송 채널을 수십 시간 동안 디지털(HD)로 시청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 사태는 단순한 방송사업자들 간 알력에 의한 해프닝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실상은 이 사태가 내재적으로 가지는 문제가 매우 크다는 점을 누구나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로 간략하나마 압축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지상파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가 원칙이며 케이블이나 위성, 인터넷 등을 경유하지 않고 무료로 시청자들이 별다른 큰 설치비용 없이 시청이 가능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이를 위해 시청자들이 전기사용료 고지서에 강제로 부과된 2500원씩을 매달 납부하는 것이고, 미디어랩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들 방송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지상파방송은 안테나를 달아도 웬만한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워 할 수 없이 유료방송을 수신하게 되어 가계 부담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와 같이 유료로 방송을 시청하는데도 지상파 방송을 디지털 신호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 중단된 시간만큼의 유료 수신료를 되돌려 받고 보편적 시청권의 침해 대가를 배상받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일어난 직접적 발단은 케이블의 의무 재송신 대상이 되는 지상파방송 채널들의 내용물에 대한 저작권료 결정과정에서 지상파와 케이블 간 합의가 되지 못한 점에 기인한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은 난시청으로 보기 힘든 자신들의 보편적 무료 서비스 내용을 전국에 깨끗하게 중계해주는 케이블TV에 오랫동안 의지해온 까닭에 자신들의 의무인 난시청지역 해소에 매우 소홀해왔다.

반면 케이블TV는 난시청 덕분에 유료방송 가입자 및 홈쇼핑사업자, 광고주 등으로부터 큰 혜택을 누려오고 있다. 이런 공생관계라면 서로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인데, 현실적으로 ‘남의 떡’(지상파방송의 콘텐츠와 케이블TV의 가입자 수)이 너무나 커기 때문에 이를 아전이수 격으로 해석하여 금전적 이익으로 연결하려는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의의 일반 시청자들은 무료로 정의된 TV 내용물을 보기 위해 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자신들의 권리는 여지없이 박탈당하는 이중적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 이래 가장 큰 국책사업 중의 하나인 디지털 지상파 방송의 전면적 실시가 1년도 남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의를 유료 상업방송으로 바꾸어 수신료를 인상하고 각종 수익사업을 자유롭게 하게 한다든지, 지상파 방송에 유리하게 혜택을 주던 미디어랩 제도를 폐지하든지 하는 등의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지상파방송과 케이블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난맥상은 누군가에 의해서 반드시 바로 잡아져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과 활약이 종편채널 도입 때만큼의 절반 정도만 발휘되기를 희망한다. 

현재 한국의 방송 시스템과 콘텐츠는 국외적으로는 한류 바람을 타고 긍정적으로 부각되어 있지만 다수 국내 시청자들, 특히 경제적 소외계층과 난시청 지역 거주민들, 지방 거주자들, 그리고 유료방송 시청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디지털 방송을 부담없이 향유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양대 디지털 TV 생산, 판매자인 삼성과 LG가 매우 비싼 판매가격으로 담합하는 횡포까지 부려오고 있다.

따라서 양대 방송 콘텐츠 및 전송 독과점업자들인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업계,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들만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말고 국민들의 디지털 방송에 대한 기본적 시청권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해법을 찾되 이 원칙에 어긋나는 방송관련 주체들에 대한 철저한 규제와 처벌도 따라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