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본지 논설위원·아주대 영문학/문화콘텐츠학 교수

학교가 폭력으로 신음하고 있다. 학생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급우를 왕따시키고, ‘일진’이 어느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면 피해 학생은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폭력의 연쇄’가 일어난다. 한 학생을 여러 명이 집단으로 구타하고, 여학생을 남학생들이 성폭행하고, 폭력의 희생자는 때로 자살까지 이르게 되는 끔찍한 일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경찰청은 사이버 폭력 수사대로 엄정 대처하겠다 선포하고, 교과부장관은 학교폭력을 은폐하는 교장을 엄단하겠다고 윽박지르고, 대통령은 학교폭력을 밝히는 교장을 칭찬해야 한다고 달랬다.

이러는 동안 여러 학생이 같은 동네에 사는 한 학생을 감금 구타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자랑스럽게 찍은 사건이 보도됐다. 청소년의 48%가 학교폭력을 경험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한 요즘, 경찰청의 선포, 교과부장관의 윽박지름, 대통령의 지시로 학교폭력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짝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참된 대책은 학생, 교사, 학부모, 사회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인권감성을 키우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이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학생들은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하며 즐거워하는 미군병사를 연상시킨다.

잔인한 인권유린을 저지른 이 학생들은 가학증자인가. 아닐 것이다. 단지 타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 억압되었기 때문인데, 어린 그들을 불감증자로 만든 것은 학교, 가정, 사회, 정부이다.

성적제일주의 교육이 타자의 인권을 공감하는 인권감성으로 거듭나야한다. 우리나라는 젠더(gender), 재산, 가문, 사회적 출신 등과 상관없이 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는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규약,’ ‘유엔어린이·청소년권리조약’을 비준한 나라다.

우리 교육의 기본도 성적 경쟁과 서열화가 아니라 성적, 외모, 재산, 젠더, 피부색이 다른 타자를 존중하는 인권교육이 돼야 한다.

그런데 헌법 6조에 의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국제인권규약을 비준한 한국 정부의 기관인 교과부가 국제 상식으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다. 서울교육청이 발표한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무효소송을 낸 것이다. 체벌 금지,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반대하는 일부 여론 때문인데,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의 금지나 신체의 자유의 보장은 인권보장의 기본이다.

인권을 모르는 인권불감증은 대학에서도 후배에 대한 선배의 폭력, 여학생에 대한 남학생의 성추행, 제자에 대한 교수의 성추행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고대 의대생들이 몇 년간 같이 공부한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사진 촬영해 사회를 경악케 한 사건은 인권감성교육 하나 제대로 없는 초중고, 그리고 대학 현실을 볼 때 전혀 경악할 일이 아니다.

인권감성은 교수에게도 필요하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성대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학생에 대한 교수·연구 및 생활 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육관계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 품위 유지'부분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연구업적이 좋고, 학생들과 축구하기를 좋아했지만, 학점주기에 엄격하고 동료교수와 잘 어울리지 못해 불편함을 일으키는 타자, 즉 ‘왕따’인 그를 대학은 배척했다.

지금 초중고뿐 아니라 대학 모두가 인권불감증에 걸려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수도 인권불감증에 걸려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업적경쟁에 앞서 인권감성 재활치료를 받아야 할 시점이다. 인권감성 없는 곳엔 참된 교육도 행복한 사회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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