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감소, 대학위기 불러오다

구조조정 출발점이 문제 ··· "상생 원칙 마련해야”
“이대로 가면 지방대만 고사, 정원조정 병행하자
“대학 우후죽순 세워놓고 학교 수만 줄이나” 불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학 구조조정이 지속될 전망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향후 입학자원 급감으로 인한 대학위기의 해법을 ‘대학 구조조정’에서 찾고 있다. 줄어드는 학령인구만큼 대학 수를 줄여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먹을 쌀이 줄어드니 식구 수를 줄일 수 밖에 없다'는 단순한 논리다. 이같은 교과부의 해법은 자칫 탁상행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 물론 부실한 학사관리나 학위장사로 연명하는 대학은 정리해야 하겠지만, 나름 존립가치가 있는 대학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무턱대고 대학 수를 줄여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지기 전에 정부는 대학들의 생존을 위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지,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어떤 생존전략은 짜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이에 본지는 향후 11회에 걸쳐 이 같은 문제와 대안 등에 대해 심층 진단, 보도할 계획이다. <편집자 주>

호남지역 대학 입학처 직원 A씨는 지난 해 여름 수시모집을 앞두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쪽은 제주지역 고교 진학담당 교사였다. 전화를 끝낸 A씨는 곧바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A씨는 “퇴근 시간을 1~2시간 앞두고 고교 진학교사가 전화를 걸어와 저녁을 함께 먹고 싶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곧바로 달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그날 밤 늦게까지 이 교사를 접대했다. 고교와 대학 간 갑·을 관계가 역전된 단적인 사례다. 그는 “밤새 접대를 하고 돌아오면서 ‘대학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 학령인구 감소·유출 갑을관계 변화= 학령인구의 수도권 유출로 지방대는 학생 모집부터 애를 먹는다. 학령인구 자체가 줄어든 데다 날로 더해가는 수도권 집중현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대학 구조조정도, 재정지원도 수도권 대학 위주다.

한 지방대 교직원은 “이사장·총장보다 더 깍듯이 모셔야 하는 분이 고교 진학담당 교사”라며 “보직 교수부터 직원들까지 매일 전국을 돌며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신입생을 채우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방대 관계자들의 얘길 들어보면, 지역학생 유출은 심각할 정도다. 그것도 성적이 상위권인 우수학생 유출이 많다. 일례로 지난 2010년 전남도교육청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목포·여수·순천 등 고교평준화지역 상위 10% 학생 1294명 중 다른 지역으로 진학한 학생은 340명으로 26.3%에 달했다. 지방의 학령인구 감소·유출 문제가 우수학생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대학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대입정원(58만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2018년에는 고교 졸업자 수가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 12년 후에는 41만 명으로 급격히 감소해 지방대가 줄줄히 문 닫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보다 입학자원이 무려 40%나 감소하기 때문이다.

한 교과부 관계자는 “입학자원 감소로 수도권과 지방이 겪는 피해는 천차만별이 될 것”이라며 “배에 물이 차오르듯 밑에서부터 서서히 위기가 차오는 게 아니라 지방은 쓰나미처럼 일순간에 파고가 덮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졸업자 수에 비해 대입정원이 많아지는 2018년 이후엔 지방대의 ‘충원대란’이 한꺼번에 올 수 있다는 예측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미국에서 주택 버블이 꺼지면서 엄청난 위기가 왔듯이 우리나라 대학은 진학 인구가 40% 이상 꺼지면서 앞으로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 살 길은 특성화? 그게 말처럼 쉽나= 지방대가 살 길은 특성화다. 타 대학보다 비교우위를 점한 분야를 선택해 집중 육성해야 대학 위기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지역의 특화된 산업과 연계가 가능한 분야를 특성화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산학협력 활성화는 대학의 재정 확충과 졸업생 취업률을 제고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교육·연구 성과 지표가 ‘선순환’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지방대 특성화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선 유사·중복학과를 통폐합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학과는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당 학과 교수를 구조조정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성수 고신대 총장은 지난달 19일 본지가 마련한 ‘이주호 장관 초청 대학총장 신년 간담회’에서 “학생 수가 급감하는 현 상황에서는 정년 보장 교수들도 과감히 정리할 수 있어야 구조조정이 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총장이 발전계획을 갖고 특성화 역량을 키우려 해도 학과개편에 반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를 과감히 통폐합하려 해도 학과별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는 반대에 부딪힌다”며 “대학평가가 학과별·계열별 평가가 돼야 경쟁력이 부족한 학과를 구조조정 할 명분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도권과 지방을 일괄 평가해 하위권 대학을 가려내는 현재의 구조조정 방식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학생 충원율 등 출발선 자체가 다른 지표로 구조조정 대상을 정하면, 결국 고사되는 대학은 지방대란 이유에서다.

임동오 중부대 총장은 “재원을 투입해 교수확보율을 끌어올려도 재학생충원율 때문에 재정지원 제한대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이 정원 외 선발로 출발부터 신입생을 100% 초과해 채우고, 이후에도 편입학으로 지역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구조에선 발버둥을 쳐도 하위권 대학을 면키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 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어려워= 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다. 지방에서 그나마 국내 학생의 빈자리를 채웠던 게 외국인 유학생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교과부가 ‘유학생 유치·관리 인증제’를 도입하면서 이 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앞으로는 유학생 유치로 재정을 충당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하고, 관련 지표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2010년 8만3842명으로 집계된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지난해 9만 명을 넘어 올해 1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유학생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학업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온 유학생이 무단이탈 한 뒤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또 유학생 유치에 급급한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학능력도 검증하지 않은 채 이들을 선발하고 있다. 그것도 국내 학생에 비해 절반 이하의 학비만 받고 있어 역차별 문제도 제기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우리 고등교육 시장의 국제적 신뢰도는 하락하게 된다. 유학생에 대한 학사관리가 철저히 이뤄져야 국내 대학교육을 이수한 뒤 받는 학위도 공신력을 가질 수 있다.

유학생 관리에서 부실을 드러낸 대학들은 ‘유학생 브로커’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하소연한다. 중국 현지 학생과 국내 대학을 연결하는 브로커들이 학업보다는 돈이 목적인 ‘위장 유학생’들을 무분별하게 소개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학생으로 채우지 못한 대학 정원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충원하기 위해선 정부가 대학을 평가만 하기보다 컨설팅을 해줘야 한다. 믿을 만한 유학업체를 지정하고, 대학들이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질 좋은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은 사실상 국내 대학교육을 수출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공부한 국내 유학파가 미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듯이 우리나라에 오는 해외 유학생들도 대학 졸업 후 ‘친한파’로 성장할 수 있다. 잘만 활용하면 유학생 증가와 ‘한류’ 열풍은 국내 대학교육을 수출하고, 해외에 ‘친한파’를 양성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유학생 질 관리를 위한 규제와 함께 국내 대학들이 질 좋은 유학생을 유치할 수 있도록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대학들도 교육의 질을 높여,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의 학생들까지 끌어올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 대학 수 줄이는 것만 능사인가= 문제는 고민의 출발점이다. 교과부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수를 줄여야 한다면 향후에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지역에서 나름 인지도를 갖췄던 대학들도 정부의 대학 설립준칙주의 때문에, 대학 수가 우후죽순 늘면서 경쟁체제에 놓이게 됐다. 대학 수를 줄이는 것보다는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줄어드는 학령인구만큼 대학 수를 줄여나간다면 결국 지방대 100개가 문 닫을 판”이라며 “지방대도 해당지역에서는 존립가치가 있기 때문에 고통분담 차원에서라도 수도권을 포함해 정원조정을 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수도권과 지방의 대학을 분리해 평가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수도권에서도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정원감축이 이뤄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대학 위기시대에 지역과 수도권이 고통을 분담하고 상생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대학 입학자원 얼마나 줄어드나
6년 후부터는 대입정원-고교졸업자 ‘역전’
2030년 4년제 대학 충원율 72% 그칠 것

생존을 향한 대학들의 치열한 몸부림에도 불과 6년 후엔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대학들의 폐쇄도 잇따를 전망이다.

2010년 현재 대학 입학정원은 58만 명. 그러나 고교 졸업자 수는 2012년 67만 명에서 2018년엔 58만 명으로 감소한다. 이 때부터 대입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 고교 졸업자 수 감소 추이(자료: 교육과학기술부)
고교 졸업자 수가 대학 입학정원보다 많았던 2010년에도 전국 295개 사립대·전문대학 가운데 45곳의 신입생 충원율이 80%에 미치지 못했다. 대학 진학률도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진행된다는 얘기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2018년부턴 정원을 채우지 못해 위기를 맞는 대학들이 속출할 전망이다.

대학 재학생도 감소한다. 한국장학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미래 고등교육 수요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49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은 유학생을 포함, 총 203만1290명이지만 오는 2020년엔 175만4917명으로 무려 28만 명 가까이 줄어든다.<표 참조>

■[표]대학 재학생 수 전망

 

 

 

 

 

연도

2011년

2012년

2016년

2020년

2028년

2030년

재학생 수(명)

204만1593

203만1290

193만2345

175만 4917

132만 3655

131만 7250

4년제 충원율(%)

109.1

130.1

116.7

94.7

73.4

72

전문대학 충원율(%)

102.7

111.1

106.5

93.9

65.6

61.3

 

 

 

(2011년 11월 발표, 자료: 교육과학기술부·한국장학재단)

이 보고서는 △현재 대학 편제정원·대학진학률·중도탈락률 △학령인구 감소 추이 △외국인 유학생 증가 추이 등을 고려해 미래 대학생 수를 추산한 결과다. 보고서에 의하면 오는 2016년까진 전국 대학의 재학생충원율이 100%를 넘지만 2020년엔 4년제 대학은 94.7%, 전문대학은 93.9%로 감소한다.

이 같은 감소 추세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대학 재학생 수가 2028년엔 132만3655명, 2030년엔 131만7250명으로 준다. 재학생충원율도 2030년엔 4년제 대학 72%, 전문대학 61.3%로 감소한다.
특히 학령인구 급감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지역 대학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30년 재학생 충원율이 호남·강원지역 대학들은 40%대, 영남지역 대학들은 60%대 초반까지 하락해 전국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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