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충원의 공정한 룰을 만들자

입학자원 감소 … 지방대 학생유치 사활걸어

대학과 고교의 갑(甲)·을(乙) 관계가 바뀌었다. 수요·공급 구조가 역전되고 있어서다. 치열한 대입경쟁을 치러야 했던 그동안은 대학이 강자였다. 서울대에 몇 명 진학시키느냐로 교사의 실적을 평가하던 고교는 약자의 위치에 서있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몇몇 유명 대학을 제외하면 학생 충원에 애타는 대학들이 고교를 직접 찾아다니는 시대가 됐다.

■ 여행·숙식제공·대학평가까지 “진학교사를 잡아라” = 경기 지역 A대는 최근까지 교비를 들여 인근 고교 교사들을 방학마다 중국으로 여행을 보내줬다. 중국에 소재한 이 대학의 해외캠퍼스를 탐방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은 일종의 접대였다. 인근의 한 대학 관계자는 “캠퍼스 해외탐방이라지만 정작 교사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이 탐방 프로그램은 감사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 지금은 중단됐다.

영남 지역 B대는 방학 중에도 최신 인프라를 갖춘 생활관이 꽉꽉 들어찬다. 방학을 맞아 타 지역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대신해 고교 교사들이 주로 생활관을 찾는다. 입시 관련 홍보차 교사들을 초청해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입시 홍보와 함께 교사들 접대에 신경 쓰다 보니 방학 때가 더 바쁜 것 같다. 교사 초청·체험행사로 스케줄이 빠듯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대학들이 고교에 대한 대학 홍보와 교사들 접대에 신경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학생 정원 채우기가 급해서다. 학생들을 직접 보내주는 고교들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대학 교수들이 고교를 직접 방문해 신입생 유치에 열 올리는 것은 예삿일이 돼버렸다.

대학들의 이러한 변화가 부정적 의미의 접대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학과 고교 사이의 전반적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대학에 학생들을 공급하는 ‘팜(farm)’ 역할을 하던 고교가 수요자 입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장 80%를 웃돌던 대학 진학률이 70%대로 낮아졌고, 고교 졸업자가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어지는 역전현상이 가시화되며 일어난 변화다.

일례로 일찌감치 대학 운영에 ‘고객만족(CS) 경영’을 도입한 동국대의 경우 정기적으로 고교 교사들을 상대로 만족도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 결과는 학교의 브랜드 파워나 대외이미지 제고를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입학자원을 유치해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 고교를 ‘고객’으로 상정하고 수요자 만족도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사례로 꼽힌다.

■ 서울·경인·춘천·천안까지 마지노선 ‘위기의 지방대’ = 오는 2018년을 기점으로 고교 졸업자 수는 대학 입학정원(2010년 기준)보다 적어지게 된다. 교육 당국이 지난해부터 하위 15%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선정하고 부정·비리 대학을 퇴출시키는 등 대학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다.

고교 졸업자 수와 대학 입학정원 간의 역전현상은 몇 년 남았지만 지방대는 이미 위기가 찾아왔다. 대학이 소재한 지역이나 규모, 재단 상황 등에 따라 세부 상황은 다르더라도 대부분 지방대들은 학생 충원에 필사적이다. 지방 학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데다 편입학·정원외모집 등의 우회로를 통해 입학자원이 유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충원 문제는 대학교육의 질과는 거리가 있다. 수험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 탓에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의 대학부터 학생이 충원된다는 것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 숫자가 늘어나며 수도권 쏠림현상이 더 심해졌다. 대학의 질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체로 수험생들의 선호도를 살펴보면 우선 서울, 경기도 대학에 진학하려고 한다. 다음이 충북·충남, 그 다음은 강원도 춘천 소재 대학 순”이라고 덧붙였다.

▲ <표1>2011년 편제정원 대비 재학생 충원율(출처 대학알리미)
대학 입시 관계자들은 학생 충원이 비교적 손쉬운 ‘마지노선’으로 춘천·천안 소재 대학까지를 꼽는다.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나 교통편을 고려하면 여타 지역의 지방대들은 이미 어려운 형편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표1 참조>

호남 지역 대학의 한 입학 관계자는 “교육의 질이나 학생 지원보다 서울과 가까운 대학이냐, 아니냐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서 대학 서열이 갈리니 힘 빠지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지방대들이 경험하는 위기는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몇몇 서울 명문대를 제외하면 전체 국내 대학들이 겪게 될 ‘대학의 미래’다. 시간이 지나면 학생 충원의 마지노선도 서울 근교로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교수 충분하고 열정도 넘치는데… ‘지방대’라 억울 = 이에 따라 교육 당국이 대학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지만, 지방대들은 ‘공생(共生)’과 ‘지역균형’을 강조한다. 학생 충원이 어려워지는 만큼 편입학·정원외모집 같은 수도권 대학의 학생 모집에 적정 수준의 제한을 두자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이 지난달 19일 개최한 ‘이주호 장관 초청 대학총장 신년 간담회’에 참석한 지방대 총장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라면 지방대부터 모조리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수도권 대학과의 입장차는 크다. 오차환 한양대 입학처장은 “대학의 숫자가 너무 많아 질적 개선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대로 대학 구조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위적으로 수도권 대학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경인 지역 대학은 현재 정원의 80%만 뽑으라고 강제할 수 없는 노릇 아니냐”며 “자연스러운 경쟁체제에 맡겨 도태되는 대학은 정리하는 게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표2>2011년 전임교원 확보율 및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출처 대학알리미)
그러나 퇴출·정리 대상을 선별하는 구조조정 작업의 잣대가 모호한 점은 문제가 된다.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콩나물 교실’ 문제는 오히려 학생들이 몰리는 수도권 대학이 더 심하다. 지난해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전임교원 확보율은 수도권이 81.6%, 지방대가 73.3%였지만 재학생 기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수도권이 28.8명, 지방대가 28.6명으로 역전되는 현상을 보였다.<표2 참조>

교수 숫자가 많을수록 1인당 학생 숫자는 적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수를 많이 확보한 수도권 대학들이 지방대보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더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도권 대학들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어서다. 정원 100% 충원이 어려운 지방대들에 비해 일부 수도권 대학은 충원율이 120~130%대를 웃돌고 있다.

지방대에 비해 수도권 대학들의 교육 여건과 인프라가 낫다는 통념이 깨지는 대목. 교육의 질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활용된 교수 1인당 학생 수에서는 지방대가 더 나은 것이다. 수도권 대학들의 입학 자원 싹쓸이가 불러온 결과물인 셈이다.

지수욱 동양대 입학처장은 “지방대 학생 충원이 어려워 교수 1인당 학생 숫자가 줄어든 측면도 있겠지만 교육의 질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며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을 제한해 수도권·지방대가 함께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 지역 한 대학 관계자도 “지방대는 교수가 학생 하나하나를 붙들고 가르치고 있어 서울 대학들보다 더 열심히 교육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 대학-고교연계, 특성화·산학협력·평생교육 병행필요 = 교육 당국의 정책 방침인 ‘대학 수 줄이기’에 앞서 공생과 지역균형을 위한 공정한 학생 충원의 룰(rule)은 없을까. 수도권·지방대 간의 인식 변화와 대학·고교간 연계 강화가 우선으로 꼽힌다. 수도권과 지방대와의 공생을 통해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갑·을 관계가 뒤바뀐 대학과 고교의 관계 역시 ‘접대’가 아닌 ‘연계’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규홍 전국입학관련처장협의회장은 “역차별 논란이 있겠지만 서울과 지방의 역할을 고려해 수도권 대학의 정원외모집이나 편입학을 제한하는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전체 대학들이 입학정원을 줄여나가며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대학 숫자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시장 자체의 파이가 줄어드는 것을 피하자는 의미다.

반대급부로는 특성화와 산학협력·평생교육 강화를 통한 자구책 마련을 들었다. 황 회장은 “특성화는 최신 트렌드를 좇는 게 아니라 예컨대 부산 지역은 조선공학·해양·수산 등 대학이 소재한 지역 산업이나 인프라에 걸맞은 방향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계약학과 개설을 통한 산학협력교육이나 특성화고에 대한 ‘선(先)취업-(後)진학’ 정책에 발맞춰 야간 과정을 부활시켜 평생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에 일정 정도의 시장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남 지역의 한 대학 입학처장은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 구조조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장개입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거나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규제하는 것처럼 서울·지방과 대형·중소규모 대학의 정원을 조절하는 시도는 의미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과 고교 역시 동반자 입장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지난해 대입 실무 차원에서 ‘중등대입연계특별위원회’를 꾸렸다. 진로진학 상담교사 대표들이 위원회에 참여해 대학과 고교간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간 대학과 고교가 각자의 입장만 강변했던 데 비해 연계활동이 늘어날 여지가 생겼다. 자문을 맡고 있는 부산 대동고 김재원 교사는 “대학과 고교가 소통을 통해 눈높이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대입에서 현실적 문제를 함께 개선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제도 관련 연구에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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