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포뮬러지표 위주 정책변화 영향

▲ 지표 체크부터 수험생 입시까지 직접 챙기는 실무형 총장들이 뜨고 있다. 왼쪽부터 소병욱(대구가톨릭대)·강태범(상명대)·김영래(동덕여대)·김용민(포스텍)·손풍삼(순천향대) 총장. 한국대학신문 자료사진

“대학 총장이 학생 취업률 현황표 갖고 다니며 준비한 적 있습니까? 총장들 반성해야 합니다. 이제 바뀌어야 해요.”

지난해 12월 열린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에서 홍승용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이 던진 말이다.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만큼 총장들이 직접 대학의 현안과 지표 실적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20일 대학들에 따르면 최근 이 같은 실무형 총장들이 학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의 대학 총장이 학자풍·명예직 이미지였던 데 비해 이제는 발로 뛰며 대학의 각종 지표를 끌어올리는 총장들이 환영받는 것이다. 교육 당국의 대학 정책이 포뮬러 지표 위주로 바뀌며 생긴 대학가의 변화다.

소병욱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지난해 말 한 달여간 전체 학과를 돌며 교수 연구실적과 학생 취업률 등 지표를 점검했다. 총장이 학과 전체 교수를 만나 지표 현황을 보고받고 독려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 대학 박승길 홍보실장은 “총장이 직접 지표를 체크하니 교수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지표 점검이라기보다 총장이 학과를 돌며 애로사항을 경청하는 자리”라며 “총장님이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기도 하며 딱딱하지 않게 현장의 고충을 듣는 계기가 됐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대구가톨릭대는 2009년 소 총장 취임 후 교육역량강화사업·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ACE) 지원사업 등 굵직굵직한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잇따라 선정됐다. 내부 독려를 통해 평가지표 개선에 힘쓴 덕분이다. 취업률이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된 재학생 1만명 이상 대학 29개 대학 중 최하위권에서 2년여만에 최상위권으로 상승한 게 대표적이다.

강태범 상명대 총장은 아예 총장실에 취업률 현황표를 갖다놓고 매일 체크하고 있다. 총장실 한켠에는 단과대학별 취업률 현황이 적힌 화이트보드가, 책상 위에는 개인별 취업률 현황표가 놓였다.

지난해 하위 15%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된 주된 이유가 낮은 취업률 때문이라는 자체분석이 나와서다. 재정지원 제한대학 발표 직후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강 총장은 지표 제고를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영남 지역 한 사립대 관계자는 “상명대는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에 속하는데 하위 15%에 포함돼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상명대 뿐 아니라 재정지원 제한대학들은 총장들이 지표 끌어올리기에 혈안이 됐다”고 전했다. “정책 자체가 포뮬러 지표 위주로 바뀐 데다 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부실대학으로 몰려 퇴출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도 했다.

총장이 수험생들의 면접관을 자처하며 입시부터 챙기는 이례적 모습도 발견된다. 김영래 동덕여대 총장, 김용민 포스텍 총장, 손풍삼 순천향대 총장이 그 주인공. 총장의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직접 수험생들을 만나고 평가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포스텍 관계자는 “오랫동안 미국 생활을 한 총장님이 직접 수험생들의 수준이나 열성을 확인하고 싶다며 입학사정관전형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일일이 수험생들을 체크하며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 성과 위주 대학 운영을 주도했던 CEO형 총장들. 왼쪽부터 어윤대(고려대)·손병두(서강대)·오영교(동국대) 전 총장.

사실 학자풍·명예직 이미지의 전통적 총장상이 바뀐 것은 CEO형 총장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현 KB금융지주 회장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을 필두로 전경련 부회장 출신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던 오영교 전 동국대 총장 등이 성과 위주 대학 운영으로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변화를 이끈 이들 총장은 성과 위주 대학 운영에 반발하는 교수들과 갈등을 빚다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어 정부 정책이 지표 위주로 변화하는 데 발맞춰 대학들도 지표 개선에 초점을 맞추면서 CEO형 총장이 지고 실무형 총장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주요 대학 한 관계자는 “총장은 교수들의 동의와 지지가 따라야 하는 자리다. CEO형 총장의 퇴진은 성과 위주 운영이 대학사회와 학문적 특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반면 실무형 총장은 실적을 따지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정부의 지표 위주 정책이나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해 ‘불가피하다’는 구성원 공감대가 형성된 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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