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는 ‘철밥통’ 대학 교수

대학 “교수들 기득권유지 집착”, 교수들 “일방통행 구조조정엔 반대”
전공 재배치 교수
ㆍ학생 모두 피해... 기득권 내려놓고 귀 열어야 

학령인구감소에 따라 대학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대학들도 구조개혁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이 가운데 대학들이 구조조정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교수들의 반발을 꼽았다. 대학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데 교수들은 전공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학교당국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구성원과의 논의도 없이 통보 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측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학교 측은 구성원과의 ‘소통과 합의’, 교수들은 학교 측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최종 목적은 학생을 위한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대학 구조조정, 교수들이 애먹여 = 최근 정부의 강력한 대학 구조조정 드라이브와 함께 전국 대학들도 학과 통폐합 등 학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생, 교수 등 구성원 간 마찰도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특히 학과 통폐합은 교수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면서 교수들의 강력한 저항이 따르기 때문에 대학 구조조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으로 꼽힌다.

대학들의 구조조정은 2010년 중앙대, 숙명여대의 학제개편을 시작으로 본격화됐고, 건국대, 동국대, 성균관대도 잇따라 개편을 추진했다. 또 배재대를 비롯한 동아대, 계명대, 청주대 등도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특히 대학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선정, 발표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부실대학에 선정된 대학들이 하루라도 빨리 부실대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이 과정에서 취업률, 학생충원률 등이 낮은 학과, 즉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되는 학과를 중심으로 줄줄이 폐과하거나 통합했다.

그런 가운데 통폐합된 학과 교수들은 학교의 일방적인 통보와 원하지 않는 전공으로의 재배치에 대해 반발, 학교 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학교 발전을 위해 교수들도 학교 측 입장을 일정부분 따라줄 필요도 있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된 A대학 관계자는 “부실대학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경쟁력이 낮은 학과부터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며 “그럼에도 교수사회의 경직성이나 기득권 유지 등 이기적 측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까지 동원해 학교 측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교수들도 있다”고 말했다.

강원지역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도 “학령인구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는 2018년 이후 대학들은 규모를 줄이고 경쟁력이 없는 학과들을 폐지하는 쪽으로 가야되는 입장”이라며 “구조적으로 학생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교수들도 자체 학과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학교 발전을 위해 과거보다는 압박감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동아대 무용학과 폐과통보에 반발하는 구성원

■ 교수들 “무조건 반대 아니다, 일방적 통보가 문제” = 대학들은 구조조정 시 교수들이 학교 발전 보다 자기 전공에 대한 기득권 유지에 더 집착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교수들이 자기 전공과 관련된 학과와 과목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와해시키려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학이 독단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구성원들에게는 결과만 통보하는 식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주경복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대학이 학사운영을 할 때는 당연히 관계되는 주체들과 충분히 협의를 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며 “그러나 대학들은 보통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이는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학교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교수들은 또 대학들이 실용성을 중시한 유망학과만 남기고, 취업률이 낮거나 성과가 없는 학과는 폐지하는 점도 현 구조조정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근 대학들의 구조조정 행태는 기업 구조조정과 닮아 있다. 경쟁력을 내세우며 취업률이 높고 학생 충원이 잘 되는 소위 ‘인기학과’는 유지 또는 신설하고, 사회적 수요가 적은 인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을 중심으로 폐과를 진행하고 있다.

중앙대가 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도입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대학은 2008년 두산그룹이 인수한 이래 강도 높은 학과 통폐합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0년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7개로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다루는 학과는 아시아문화학부로, 독일·프랑스·러시아 언어와 문화를 다루는 학과들은 유럽어문학부로 통폐합됐으며, 가정교육과는 폐과됐다. 언어와 문화를 다루는 기초학문은 모두 구조조정을 통해 통폐합한 것이다.

동국대도 2013학년도부터 5개 단과대 11개 학과를 통폐합하는 학문구조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문예창작학과는 국어국문학과와 통폐합되고 물리학과도 반도체학과와 통폐합된다. 윤리문화학과는 폐과가 결정돼 올해부터 신입생을 뽑을 수 없게 됐다.

중앙대나 동국대 외에도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다른 대학들 사정도 비슷하다. 경쟁력에서 밀린 일명 ‘돈 안 되는 학과’들은 잇따라 폐과되고 있다. 배재대는 칠예과를, 동아대는 지난해 무용과를 폐과한데 이어 최근 철학과마저 폐과한다고 밝혀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청주대도 인문대학 어문학부에 속한 독어독문학, 불어불문학, 러시아어문학 등 3개 학과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폐과된 학과의 교수들은 지금까지 연구했던 학문과는 거리가 먼 전공이나 교양강좌를 담당하는 교수로 재배치된다.

학과 구조조정으로 해당 학과가 폐과되면서 거취가 불투명해진 B대 인문계열 교수는 “우리 과를 폐과한다고 해 학과 교수들은 현재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막연한 상황이다. 학교 측은 쉽게 교양교육원으로 가면 된다고 말하지만, 수강생이 없고 학생이 없으면 해고조치나 다름없다”며 “대학교수가 고용 불안을 느껴야 한다는 게 비참하고, 학교당국에 항의를 하고 싶어도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돼 교수들이 집단으로 항의하지도 못하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이 교수는 이어 “대학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따오는 학과는 살리고 인문학처럼 사회적 수요가 없는 학과에 대해선 배려가 없다”며 “대학이란 원래 생산보다는 그 안에서 연구하고 논쟁하는 그런 과정들을 통해 나중에 국가의 문화 양식이 되는 지식을 함양하는 곳이다. 학과를 줄 세우기하거나 사회적 수요가 없는 학과는 폐지해야 한다는 철학은 지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학을 기업처럼 경쟁 체제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교수 전공 재배치 “학생들 학습권은?” = 학과 구조조정에 따라 교수들의 전공을 재배치하는 것은 비단 교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받을 수 있다.

정경훈 아주대 영문과 교수는 “교수들의 전공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일단 교육상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역사를 가르치던 교수가 콘텐츠를 가르치기 위해선 준비 기간이 필요한데 학교에선 그 기간도 주지 않는다”며 “이는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전공 선택 기회를 박탈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경복 교수는 “대학은 모든 학문들이 골고루 편제돼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시장화 기준에 맞춰 강제로 통합하고, 교수들을 타전공으로 배치하는 것은 학생들의 선택권도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도 대학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여 대학과 대립각을 세우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동국대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학과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 이 학생들은 “모든 학과를 취업률이라는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대학본부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생각하기보다 경제논리만으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국대 외에도 중앙대, 동아대 등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진행한 대학에선 학생들의 일방적 학과 통폐합 반대, 학습권 수호를 위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 <표>2011년 전임교원 확보율 및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출처 대학알리미)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여건이나 학습 환경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교육여건을 나타내는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도 못 미친다. 2010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6.2명이다. 지난해 대학알리미를 통해 발표한 ‘2011년도 정보공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재학생 기준 28.7명(수도권 대학 28.8명, 비수도권 대학 28.6명)으로 OECD 회원국과의 격차가 크다. 전임교원 확보율도 지난해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평균 약 77%였다(수도권 대학 81.6%, 지방대가 73.3%).

이와 관련해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여건이 부실하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학생들을 위한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해선 장기적으로 교원을 더 확보하고 시간강사도 교원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소재 C대학의 한 교수는 “교수들의 전공을 재배치할 때 강사가 하던 일을 전임교원이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강사 수도 줄어든다”며 “기존의 교수들을 강사화해서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대학의 퀼리티는 떨어지고 교육의 질은 보장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 대학과 교수사회, 온도차 줄이고 “통해야 산다” = 학령인구감소에 따라 대학들이 몸집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대학들을 보면 구성원들 간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학과 구조조정 시 교수들과의 의견조율은 가장 큰 숙제라고 학교 측은 말한다.

이에 대해 대학의 전문가들은 학과 통폐합은 학령인구감소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보다 발전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선 “대학과 교수 간 ‘소통과 조율’이 필요하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학과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는 지방의 한 국립대 기획처장은 “구조조정에 해당하는 학과의 경우 일부 교수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여러 번 설명회를 열고 충분한 설득과정을 거쳐 교수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며 “교수들에게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최용훈 관동대 기획처장은 “대학에서는 학과를 폐지하고 타전공으로 교수를 재배치할 때 유사 전공으로 배치를 한다거나, 새로운 전공일 경우엔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과 통폐합 시 전공이 재배치되는 교수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경훈 교수도 이어 “교수들의 학과를 재배치할 때 자발적으로 나서는 교수도 있을 수 있다”며 “자원하는 교수에겐 인센티브를 주고 준비기간도 주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면 구조조정이 더 부드러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학교 측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은희 연구원은 “교수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은 대학 구성원이 학생, 교수, 직원임에도 대학평의원회, 총장 선거 등에서 교수의 영역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교수들이 보다 소통을 통해 구성원들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 연구원은 이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대학본부와 정부도 문제지만 대학이 안정적으로 개혁되기 위해선 교수들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구성원들과 논의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결국은 대학과 교수가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경훈 교수는 “구조조정의 올바른 길은 각 대학별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나 방향성을 정할 때부터 교수, 학생, 직원 간 토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교수들이 무조건 반대하진 않는다. 대학이 구조조정을 졸속 과정으로 진행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기 때문에 그것을 용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