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대학의 사회적 책임 한도 내에서 자율 바람직

학령인구감소대비 외국인 유학생 유치시스템 갖춰야

정갑영 연세대 신임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제3창학’을 선포했다.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이 창립된 제1창학, 이들이 연세대로 통합된 제2창학을 거쳐 세계적 명문으로 도약하는 제3창학을 이끌겠다는 다짐이다. 정 총장은 2월 취임 후 밑그림을 착실히 그렸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시행 중인 레지덴셜 칼리지(이하 RC: Residential College)를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 도입키로 하고, 이달 초 인천시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협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2013학년도부터 신입생 전원이 국제캠퍼스에 입학토록 해 선진명문형 전인교육의 새 모델을 선도하겠다는 정 총장을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만났다.

- 총장 취임 축하드린다. 연세대 총장이라면 다른 대학 총장들은 다들 부러워하는데.
“우선 감사하다. 연세대 총장이라고 왜 걱정이 없겠나. 학생 충원, 수준 이런 부분이 아니라 연세대는 경쟁의 대상이 해외 대학들이다. 세계적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취임하며 ‘제3창학’을 얘기했다.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설립됐고, 이들이 통합된 역사를 각각 제1창학과 제2창학으로 본다면 대학교육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와 학문의 융·복합화를 달성하는 게 제3창학의 중대 과제다. 신임 총장으로 연세대를 진정한 아시아의 최고 대학, 세계적 대학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

- 특히 송도 국제캠퍼스 활성화 계획이 눈에 띈다.
“내년부터 신입생들은 전원 송도캠퍼스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아예 입시 공고할 때 이 내용을 명시해 신입생은 필수적으로 RC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할 방침이다. RC는 기숙사를 활용해 학부교육 모델을 선진 아이비리그 형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 등이 모두 RC를 시행하고 있다. 핵심은 교수와 학생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24시간 전인교육을 체험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국내 대학교육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므로 시스템 자체를 바꿔보려 한다. 마침 송도캠퍼스에는 2000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 기숙시설이 마련돼 있다. 1학년들을 절반으로 나눠 한 학기씩 번갈아 RC를 시행하겠다.”

- RC에 대한 기대가 상당한데 어떤 효과가 있나.
“한국 대학교육은 학생들이 18학점 정도 강의 들으면 하루에도 1~2시간씩 차에서 보내야 하고 시간 자체도 붕 뜬다. RC를 시행하면 학생들은 낮에는 수업 등 학업에 열중하고, 가외시간에는 사회봉사·문화체험·소그룹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다양한 배경과 환경의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회성도 익히게 될 것이다. 인성교육과 지식 함양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 제3창학을 ‘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진정한 아시아의 최고대학, 세계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국내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인바운드(inbound) 국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임기 중에 완전히 실현할 수는 없겠지만 2020년에는 최소한 재학생의 1/4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울 계획이다. 우수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해 아시아와 미국에 하나씩 해외사무소를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다.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학령인구가 30~40% 줄어들지 않나.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명문이 되려면 엘리트 교육 프로그램과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유학 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 세계적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한 조건을 꼽는다면.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최소한 3가지가 필요하다. 우수한 교수와 학생을 확보하고, 재정적 뒷받침이 돼야 하며, 학교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와 세 번째 요소는 해외 대학들과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가장 큰 걸림돌이 부족한 재정 기반이다. 사립대가 재정을 확보하는 방법은 정부 지원, 동문과 사회의 기부, 등록금 수입 3가지로 요약된다. 이 3가지가 모두 선진국에 비하면 열악하다. 국내 대학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지만 선진국 명문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며 크게 올리기도 힘든 분위기다. OECD 국가의 대학들과 비교하는데, 그 대학들은 정부 지원이 많아 등록금이 낮은 것이다. 결국 대학이 발전하려면 투자가 필요한데 이 부분이 문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값 등록금 여론에 따라 등록금을 인하했는데.
“교육의 질적 수준은 투자와 비례한다. 전체적으로 등록금 인하가 계속되면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없어 우수 자원이 외국 대학으로 빠져나간다. 인적 자원의 손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을 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등록금 수준은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자율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등록금이 아무리 비싸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많이 준다. 연세대도 올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에 속하는 재학생에게는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생활비까지 지급한다. 당장 국내에서도 자율형사립고의 경우 등록금을 공립의 3배 정도까지 받고 있다. 대학 등록금에도 이런 모델을 허용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많이 주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

- 고등교육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로 들린다.
“대학마다 특성과 배경이 다르고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정부가 이런 대학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정책을 펴야 대학이 발전할 수 있다. 정부의 대학 정책이 규제 위주고, 규제의 내용도 획일화돼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잣대에 맞춘 획일적 교육밖에 못한다. 정부가 대학에 훨씬 많은 자율성을 주고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입시만 해도 수시모집 기간을 따로 정해놓지 않으면 대학이 더 다양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 연세대는 무시험전형인 ‘창의인재전형’으로 지난해 30명을 선발했는데 무려 1600여명이 지원했다. 지원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해야 하는데 정해진 수시 기간 안에 일정을 마치기 버겁다. 이런 부분을 풀어주면 각 대학이 능동적으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나.”

- 학생들에 대한 ‘트랙형 교육’ 실시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트랙형 교육은 학생들을 구별해 맞춤형으로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할지, 취업할지, 정부 공무원이 될지에 따라 듣는 수업이 달라져야 한다. 대학원에 진학할 학생은 수학 관련 과목을 많이 들어야 하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은 관련 고시 준비를 도와줘야 한다. 졸업 후 진로까지 감안해 필요한 교육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런 트랙형 교육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RC다. 지금까지는 학생들이 대학에서까지 강의만 듣고 헤어지는 ‘학원형 교육’만 받았다. RC를 시행하면 기숙사 전담교수를 배치해 학생들의 평소 고민을 들어주고, 학생 개개인에 따른 맞춤형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할 생각이다.”

- 서울 유명대학들의 지방캠퍼스 설립이 모순적이라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
“원주캠퍼스의 경우 원주에 병원을 설립해 지역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다 대학이 있으면 지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원주부총장을 역임하며 지켜봤는데 원주캠퍼스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다. 신촌캠퍼스와 수준차가 있지만 원주캠퍼스 학생들도 우수하다. 캠퍼스별로는 특성화에 주력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융합에 힘쓰겠다. 약학대학을 유치한 것도 기존 의과대학·치의과대학·생명시스템대학 등과의 융합연구를 위해서는 약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총장으로서 어느 한 분야나 캠퍼스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연세는 하나’라는 기조 아래 여러 분야를 모아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가겠다.”

- 기독교 교단의 파송이사 추천권을 제한하는 정관 개정이 논란이 됐는데 입장은.
“정관 개정으로 기존의 교단 파송이사 추천권이 다소 줄어든 것으로 안다. 이사회는 사립학교법상 개방이사 선임이 필요해 정관을 개정했다는 입장이다. 엄격히 얘기하면 이 문제는 이사회의 결정 사항으로 이사진의 일원에 불과한 총장이 확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학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지혜를 모아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앞서 얘기했듯 RC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연세대가 설립 이후 국내 근대교육의 선도모델을 만들었듯 RC를 새로운 대학교육 모델로 만들어나가고 싶다.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10년, 20년 뒤에는 대학교육이 RC 모델로 갈 것으로 본다. 연세대가 선도적으로 롤모델을 정립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

■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정갑영 총장은 1951년생,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주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원주부총장·교무처장·정보대학원장의 학내 보직과 삼성경제연구소 석좌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연세대가 23년만에 직선제 형식을 폐지하고 처음 시행한 이번 총장 선출절차에서 구성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아 지난달 1일 연세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대담 = 이인원 회장, 사진 = 한명섭 기자, 정리 = 김봉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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