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본지 논설위원·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일본의 전자산업이 침몰하고 있다. 기술·혁신 대명사이자 전자 왕국 일본의 상징이었던 소니는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제품 혁신으로 두터운 마니아 층을 보유했던 소니는 이제 더 이상 소니가 아니다. ‘Sony’는 유망한 젊은이를 뜻하는 ‘sonny’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인데, 이제 더 이상 유망한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소니와 함께 ‘경영의 마쓰시다’로 이름을 드높이던 마쓰시다(현재 파나소닉)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의 유일한 DRAM 생산업체 엘피다도 파산보호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해 삼성보다 앞서 20nm급 메모리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여 우리를 긴장시켰던 것이 허풍으로 드러난 것이다.

엘피다는 한 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NEC, 히타치, 미츠비시가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다. 1990년, 일장기의 태양이 지지 않을 것 같았던 때,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세계 1위 NEC, 2위 도시바, 4위 히타치, 6위 후지쓰 등 10위 안에 6개 회사, 20위 안에 10개 회사를 거느리던 막강 위용의 존재였다.

20여년이 지난 2011년, 10위 안에 든 일본 반도체 기업은 4위인 도시바, 5위인 르네사스 둘뿐이다. 그나마 도시바는 2010년도 3위에서 4위로 떨어졌고, 르네사스는 2010년에 비해 매출이 줄었음에도 5위 자리를 유지했다. 게임기의 대명사 닌텐도도 적자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일본 전자산업의 쇠락이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구조적인 것일까.

IEEE(미국 전기전자학회)는 전기전자 분야 전반을 망라하는 세계 최대의 학회다. 현재 150 종이 넘는 학술지를 발행하고 있다. 최근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가 이 IEEE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편수를 분석·발표했다. 전기전자 분야의 논문들을 IEEE에서만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최근의 기술 보호 추세 때문에 기업들이 논문 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있지만, IEEE 발표 논문의 국가별 비교는 기술력의 국가별 차이를 보여주는 상당히 객관적인 지표다.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가 논문 편수를 비교 분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 1998년과 2008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는 논문 편수가 약 1.75배 증가했다. 이를 주도한 나라는 중국이다. 1998년의 180편에서 2008년의 1787편으로 9.9배 높였다. 분야별로도 상당히 균형 있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1998년에는 중국보다 많은 403편을 발표하였고, 2008년에는 2.7배 높아진 1,087편을 발표하였다. 대만은 502편에서 1,200편으로 2.4배 늘려 우리나라에 앞서가고 있다. 미국이 발표한 논문 수는 압도적으로 많아 5145편에서 6338편으로 늘었다. 싱가포르도 152편에서 523편으로 3.4배 늘렸다.

이렇게 동아시아가 논문 편수의 증가를 주도하는 동안 일본은 1092편에서 1073편으로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했다. 브라질, 인도, 캐나다, 스위스 등이 평균보다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논문 수가 산업의 활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기업들이 낸 논문 수의 격감이 뼈아프다. 분야별로 봐도 현재 전자산업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통신, 반도체, 컴퓨터 등의 분야에서 부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치명적이다. 일본이 모바일 기기, 컴퓨터, TV 산업 등에서 부진을 보이고 있는 현실과 일치한다.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대목은 재료 분야와 대학들이 발표하는 논문 수의 증가이다. 소재 및 부품 산업에서 일본의 위치가 무엇에 의하여 뒷받침되는지가 엿보인다.

눈을 돌려 우리를 보면 어떨까. 양적으로는 평균을 훨씬 넘는 증가율을 보였지만, 내용적으로는 가전과 통신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주력 산업에 집중한 나머지 앞을 보고 수행하는 연구가 적은 탓이다. 또, 절대 수와 증가율 모두 중국에 뒤질 뿐 아니라, 절대 수에서는 대만에도 뒤진다.

신흥 강자 중국과 대만, 속도는 더디지만 여전히 강자인 미국과 일본의 틈새 속에서, 우리의 기술개발은 전략적 최적화를 이루어야 한다. 현재의 주력 산업과 다가올 주력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엇이 차세대 기술인지를 바른 눈과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의 쇠락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근원을 찾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후속세대가 없다는 일본인 과학기술자들의 탄식, 그 근원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사람이다. 논문의 양과 질도, 기술 발전과 산업의 성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자세로 연구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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