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대학 스스로 구조조정 하라

서울 유명 대학부터 구조조정해야
일률적 구조조정은 교과부 '탁상행정' 

지난해 하위 15%를 발표하며 본격화된 대학 구조조정의 파고가 올해 들어 더욱 높아졌다. 교육 당국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거품 빼기를 대의명분으로 내걸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정부가 먼저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대학 구성원들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여전히 반발이 거세다. 현재의 구조조정은 일선 대학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강압적으로 진행되는 일방통행이라는 항변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은 대학 수와 학생 수의 상관관계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의 핵심은 대학 수 줄이기다. 대학이 너무 많아졌다는 일반론에 근거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국내의 인구 대비 대학 숫자는 미국·일본 등에 비해 오히려 적다. 현행 방식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 덩치 큰 대학은 그대로 놔두고 대학 수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버드대 같은 세계적 명문이 소수정예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현재 정책이 국내 대학의 국제경쟁력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자연히 대학 퇴출보다 학생 수를 줄여 전체 대학의 슬림화를 유도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공은 정부에게 넘어온다. 대학들이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등록금 의존도가 높아서다. 대학 재정에 대한 정부 부담을 높이고, 대학은 자발적으로 학생 수를 줄이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 불신임투표 93%, 직선제 폐지 84% 아이러니 = 지난달 28일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는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주도한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 대한 불신임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33개 국립대 교수들이 93%의 높은 찬성률로 장관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하루 뒤, 이번에는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의 핵심인 총장직선제 폐지를 결정한 국립대가 전국 38개 중 32곳으로 84%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루 간격으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정반대 입장의 통계가 도출된 것이다.

같은 국립대 교수들이 투표한 결과임을 감안하면 아이러니다. 총장직선제 폐지의 경우 찬반투표를 실시하지 않은 예외적 대학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교수들이 교과부 정책에 찬성표와 반성표를 동시에 던진 셈이다.

교수들은 하소연했다. 최낙렬 금오공대 교수협의회장은 “어쩔 수 없이 교수들을 설득했다. 당장 총장직선제 폐지 MOU를 맺지 않으면 수십억원의 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이 끊길 수 있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행·재정 연계는 사실상의 강압이다. 국립대 교수들이 단체로 정신분열증을 앓는 것도 아닌데 정반대 내용의 투표가 왜 나오겠느냐”고도 했다. 진짜 속마음이 드러난 결과가 장관 불신임투표 93% 찬성이라는 얘기다.

사립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돼 퇴출 위기에 몰린 대학들은 등 떠밀려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렇게 되다보니 학내 잡음이 일 수밖에 없다. 지역의 사립 명문으로 꼽히는 원광대가 대표적 사례다. 하위 15%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사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교수협의회가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지방의 한 재정지원제한대학 관계자는 “원광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각 대학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 한·미·일 3국의 인구 대비 대학 수
■ 대학이 너무 많다? 미·일에 비해 오히려 적어 = 강압적 방식도 문제지만 대학 수를 줄이는 내용도 논란이 됐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주된 논리는 대학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미·일 3개국을 비교하면 오히려 국내의 인구 대비 대학 숫자는 미국·일본보다 적다. 특히 미국에 비하면 국내 대학 수는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반면 1개 대학당 인구는 미국의 약 2배에 달했다.

2009년 안민석 민주통합당 의원이 펴낸 ‘고등교육 재구조화 및 부실대학의 합리적 개선방안’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인구 대비 대학 수는 △미국: 6만 8835명 당 1개 △일본: 10만 3949명 당 1개 △한국: 13만 671명 당 1개로 조사됐다. 미국의 2010년 교육통계를 살펴봐도 미국의 대학 수는 인구 1만명당 0.146개인 반면 한국은 1만명당 0.072개로 절반 수준이었다. 1만명당 0.099개인 일본에 비해서도 적은 수치다.<표 참조>

이 때문에 학생 수 줄이기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문식 신임 전국대학교입학관련처장협의회장은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입학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다만 구조조정은 서울의 유명 대학을 포함한 전체 대학에 걸쳐 일어나야 할 것”이라며 “학생 충원이 안 된다 해서 일률적으로 구조조정 하는 교과부의 시스템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대학 수보다는 학생 수를 줄이는 방법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 대규모 연구중심대학들 많아 착시효과 생겼다 = 국내 대학의 수가 많다는 착시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정원 2만~3만명을 헤아리는 서울의 대규모 대학들 탓이 크다. 특히 이들 대학 대부분은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어 학부 정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해외 명문 미국 아이비리그나 영국 ‘옥스브리지’ 대학과 경쟁하겠다는 포부와는 다소 어긋난다.

서울 유명 사립대 한 교수는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연구중심대학의 학부생 수가 2만명을 넘어서는 것은 드문 사례다. 해외 명문들은 입학정원 수준을 유지해 질 관리를 한다”고 꼬집었다. <더 프라이스 오브 어드미션(The Price of Admission)>의 저자 다니엘 골든(Daniel Golden)은 “내가 입학한 1974년에는 하버드대에 1만 1166명이 지원해 1600명이 합격했다. 2005년 지원자는 두 배인 2만 2797명으로 증가했으나 입학 정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썼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대학 수가 많다기보다 대형 대학이 많은 것이다. 수도권 대형 대학의 학생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과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대형 대학은 놔둔 채 애먼 대학을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이런 구조조정은 학벌구조를 고착화시킬 뿐 아니라 대형 대학을 더욱 비대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체 대학이 자발적으로 학생 수를 줄여나가는 대안적 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 자발적 소수정예화 결국 정부부담 비중높여야 = 대학 입장에서도 덩치를 유지해야 하는 사정은 있다. 정원을 줄이면 당장 재정 마련이 난감하다. 등록금 의존도가 평균 60%를 웃도는 국내 대학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유지 못할 경우 대학 운영에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등록금 수준 자율화나 기부금 유치 또는 대학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데, 고등교육에 대한 민간부담 비율이 높은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교육의 질적 수준은 투자와 비례하는데 국내 대학은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정부 지원을 받아 해외 명문들과의 경쟁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정부 지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등록금 수준을 자율화하는 방향이 맞다”고도 했다.

지난달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본 한국과 EU’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부담 비율이 EU의 약 3배에 달했다.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부담 비율(2008년 기준)은 40%, 정부부담 비율은 60%인 반면 EU의 민간부담 비율은 14%, 정부부담 비율은 86%였다. 통계청은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부담 비율이 높은 것은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민간부담이 큰 것에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지난 2010년 자발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울산대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오는 2030년까지 정원의 37.5%를 줄인다는 내용으로, 지역 입학자원과 재단 지원이 충분한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지방 한 사립대 관계자는 “울산대는 특이한 사례다. 소수정예로 방향성을 잡고 정원을 줄이는 것은 현대그룹이 재단으로 있어 가능했을 것”이라며 “교과부는 울산대를 좋은 사례로 언급하는데 다른 대학들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려면 정원 감소분만큼의 지원이 확보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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