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생각]캠퍼스 담벼락 무료 벽화 주인공 김지은씨

▲ 김지은씨
“추계예술대가 대출제한대학에 포함됐을 때 같은 예술인으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면서 예술대학은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통해 예술대학의 존재감을 알리고 이미지를 회복시키고 싶었습니다. 벽화 그리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했던 거죠.”

경기대 캠퍼스 담벼락에 무료로 벽화를 그린 예술전공 학생이 있다고 해서 봉사에 나서게 된 이유를 가볍게 물으려 전화를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묵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만나고 싶었다. 경기대 서양화학과 석사 1학기 김지은씨(23). 만나보길 잘했다. 예술인으로서 진지한 열정과 소신이 느껴졌다. 그는 인터뷰 도중 취업률 잣대로 상처 받은 예술인들의 상실감을 대변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학부시절 그림은 그리고 싶은데 그릴 공간이 없었어요. 배워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죠. 도전하라고 배웠는데 환경은 그렇지 않았죠…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김 씨는 학부시절 학교에 대한 반발심·적대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예술대학 내 실기실 공간이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 실기실이 좁아 복도로 나와 작업하는 것도, 복도로 나가 작업을 하면 소방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학교의 제지를 받는 것도 일상이었다.

“중앙복도, 지하실, 계단 등을 배회하며 작업장을 찾아다녔어요. 그림을 그리는 이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학교를 많이 원망했었죠. 누구보다 서러웠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림이 그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실기실 문제로 학교 측과 부딪히기도 여러 번. 예술전공이 아닌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비예술전공자를 대상으로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당연한 일인데 그분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일인 거죠. 작업을 위해 개개인이 다른 면적을 필요로 하고, 공간이 정말 절실하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타 대학과의 객관적 공간 비교, 통계적 수치들뿐이었습니다.” 그가  들었던 가장 황당한 답변은 “난 교실 하나만 있으면 200명도 가르칠 수 있겠다”였다. 개념의 차이였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재정지원 제한대학,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일명 ‘부실대학’을 선정해 발표했다. 취업률이 부실대학 평가기준의 20%를 차지했다. 김씨는 “그 순간 취업률이 저조한 예술전공 학과들은 애물단지가 돼버렸다”며 씁쓸한 마음을 드러냈다.

“타 대학을 다니다 우리 대학원으로 진학해 온 선배가 있었습니다. 우리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다니던 학교 조형예술학과가 폐과됐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뉴스에서만 떠들던 위기를 코앞에서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예술대학에 ‘애물단지’, ‘쓸모없음’이라는 태그가 달리는 것 보다 두려운 것은 예술계열 학생들의 상실감이라고 했다.

“잘못된 평가기준으로 인한 상실감과 좌절감 때문에 순수예술계열의 학생들마저 순수예술에 등을 돌리지 않을까 조바심 나고 두렵습니다. 부디 순수예술계열 학생들이 잘못된 인식에 현혹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김 씨는 앞으로도 벽화 봉사처럼 예술대학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예술이 가진 힘을 갖고 있는 재능을 통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대학 서예문자예술학과 학생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해를 품은 달'의 서예 대필로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과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인지도를 높인 좋은 사례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우리 학과나 예술대학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마음은 산더미 같은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말문을 연 김 씨가 전한 말은 이러했다.

"예술이 있어 우리는 삶을 견딜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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