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연구에 몰입하고 성과 존중하는 문화 돼야”

“대학개혁, 사교육·저출산 푸는 사회개혁으로 연결”
“일부 졸업생 의전원·로스쿨 진학 우려스럽지 않다”

▲ 서남표 KAIST 총장
“의료(Healthcare)·교육(Education)·국방(Defence) 분야 연구에 집중해 KAIST를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끌어올리겠다.”

서남표 총장은 KAIST를 ‘세계 탑 10’에 들어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올려놓고 싶다고 밝혔다. 사회적 수요가 많은 의료·교육·국방 연구를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대학의 연구역량을 더 끌어올리려면 ‘대학의 문화’가 바로 서야 한다고도 말했다. 독창적·창조적 연구에 몰입하고, 연구 성과를 낸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KAIST 재학생 중 의학·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선 “과학기술을 아는 사람이 의학·법학 분야에도 진출해야 한다”고 답했다. KAIST 설립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외부의 우려를 일축한 셈이다.

- 지난 2006년 7월 KAIST 총장으로 취임한 이래 국내 대학사회의 ‘개혁 아이콘’으로 통했다. 대학개혁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대학 개혁이 곧 사회개혁으로 연결될 수 있다. 대학이 바뀌어야 중·고교 사교육도 바뀌고, 사교육이 바뀌어야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도 해소된다. 지금은 교육비는 많이 들어가는데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라 시험 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스스로 배워 이해해야 그것이 산지식이 된다. 또 해외 대학과 경쟁하는 대학이 많이 나와야 한다. 얼마 전 스웨덴 국왕의 초청행사에 다녀왔는데, 그곳의 대학 가운데 KAIST보다 세계대학 순위가 높은 곳이 없었다. 국가 예산을 대학들에게 비슷하게 나눠주다 보니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다.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해서도 노력을 안 한다. 가만히 있어도 국가 지원은 나오기 때문에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취임한 뒤 실행한 가장 큰 개혁은 교수 ‘영년직(테뉴어) 심사 강화’가 아닌가 싶다. 이후 대학의 연구비도 늘어났는데 이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한다면.

“2006년 취임 후 지금까지 279명의 교수를 신규 임용했다. 학과장에게 교수를 뽑을 권한을 줬는데 테뉴어 심사가 강화되니까 학과에서는 연구 많이 하는 사람을 뽑아 올렸다. 학교에서는 수준이 되는 교수는 숫자 제한 없이 뽑을 수 있게 했다. 그러다보니 연구비가 많이 늘었고, 연구 간접비 수입도 늘어 여기서 교수 인건비를 줄 수 있는 정도가 됐다. 테뉴어 심사나 인센티브 제도가 연구 잘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맞춰지다보니 학교의 연구비 수입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서남표 총장이 ‘대학개혁의 아이콘’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테뉴어제도 강화 때문이다. KAIST는 서 총장 재임 1기(2006~2010년) 동안 148명의 교수 가운데 24%가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했다. 반면 학교에 들어오는 연구비 수입은 급증했다. 2006년 1182억 원이던 연구계약액이 2011년 현재 2558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학교가 거둬들인 연구 간접비도 165억 원에서 460억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KAIST에 대한 정부지원은 1105억에서 1525억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이런 연구비 증가로 KAIST 총 예산은 3064억에서 7205억으로 늘었다. KAIST가 보유한 자산도 5700억에서 1조1300억으로 확대됐다.

▲ 서남표 총장(오른쪽)이 본지 박성태 발행인(왼쪽)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KAIST 졸업생 가운데 의전원이나 로스쿨로 진학하는 비율(2010년 현재 의전원 진학비율 9%)이 늘고 있다. 비이공계 분야로의 진학이 늘어나는 것은 KAIST 설립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인데.

“KAIST에 입학하는 학생의 65% 정도가 특목고에서 온다. 과학고·영재고 출신인 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나이는 15살이다. 그 나이에 과학기술자의 꿈을 갖고 과학고에 진학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나. 적지 않은 숫자가 부모 욕심에 따라 과학고를 택할 것이다. 그 학생들이 KAIST에 들어와 공부하다 자신이 의사로 나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길로 나가야 한다. 과학기술을 아는 의사도 필요하다. 의학도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MIT를 졸업하고 의사가 돼 중요한 의료기기를 개발한 사람도 있다. 법학도 마찬가지다. 특허를 다루는 변호사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한다. KAIST 졸업생 중 일부가 의전원이나 로스쿨로 진학하는 것은 국가발전 차원에서 보면 그리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 KAIST는 오래 전부터 연구병원과 의대 설립을 희망해 온 것으로 아는데.

“사실 의과대학은 필요 없다. 의대가 있으면 경비가 그 쪽으로 너무 많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자칫 다른 학문분야가 죽을 수 있다. 대신 현재 KAIST에는 의과학대학원이 있다. 다른 곳에서 의사자격을 받은 사람이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KAIST는 향후 EEWS(에너지·환경·물·지속가능성)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연구해서 해결책을 내놓으면 대학이 유명해 질 수 있다. 최근에는 의료(Healthcare)·교육(Education)·국방(Defence) 분야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모두 정부 예산이 집중되면서 사회적 수요가 많은 분야다. 의료분야에서는 임상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병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과 국방도 연구비를 벌 수 있는 여지가 많다. KAIST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 할 만하다. 향후 KAIST의 목표는 세계 10위권 대학이다.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10개 정도의 대학이 유명해진 이유는 당대의 필요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 앞으로 임기가 2년 남짓 남았는데, 어떤 개혁을 이뤄놓고 임기를 마치고 싶은가.

“연구중심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학의 문화’다. 독창적·창조적 연구에 몰입하고, 연구 성과를 낸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그런 문화가 있는 대학이 몇 곳 안 된다. MIT에서는 조교수만 되더라도 독창적인 연구를 하려 노력한다. 자기 연구에 빠져 밤낮을 안 가리는 사람이 많다. 다른 대학에서 온 교수도 MIT에 있다 보면 이 문화에 빠져든다. KAIST에도 그런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연구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격려해 주는 문화, 잘하는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서로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에 빠져드는 문화가 필요하다. (KAIST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학자로서 사회에 공헌하고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게 되면 그런 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

- 그 동안 기부금 유치에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기부금을 유치하기 전에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한다. 하지만 ‘기부’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안 한다. 저녁 식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학교 얘기를 하게 되는 식이다. 어떤 분은 저녁식사 초대를 받게 돼 당연히 돈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왜 안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알아서 하시라고 했더니 3일 뒤 약정서를 받아가라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기부하신 분들이 대부분 나와 친구가 됐다.”

서남표 총장은...

1936년 경북 경주 출생이다. 한국전쟁 직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959년 MIT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카네기멜론대에서 기계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70년부터 35년간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공학적 설계는 소비자의 요구와 설계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공리적 설계이론의 창시자로 마찰공학·제조과학기술·설계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겼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를 지내면서 연구지원 제도를 개혁했다. 1991년부터 MIT 기계공학과장을 10년간 역임하면서, 물리학 중심의 학과를 융합 연구가 용이한 학과로 개편했다. 2006년 7월 그가 총장으로 취임한 뒤 KAIST의 세계대학 순위는 4년 만에 198위에서 69위로 수직 상승했다. <대담= 박성태 발행인, 정리= 신하영 기자,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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