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본지 논설위원·충남대 언론정보학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간판까지 바꿔단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신묘한 특정 프레임들을 만들어 선거정보를 유통한 일부 언론도 ‘사실상’ 승리했다.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일은 존립 목적에 부응한다지만 언론이 선거전에서 ‘승리’했다는 생급스런 진단은 마치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환호하는 상상처럼 얄망궂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원동력은 ‘좋은 선거’에서 나온다.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선거참여와 공정하고 풍성한 선거정보가 좋은 선거의 최소 조건이다. 작년 말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판정을 한 뒤 인터넷 기반 서비스 망을 통한 유권자들의 선거정보 획득은 더욱 용이해졌다. 투표일에도 자유자재로 SNS 인증샷 놀이를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한 선거 정보의 확산은 여전히 신문과 방송 등 기존의 대중 미디어 몫이다. 돈은 묶고 입을 풀어 선거문화를 개혁하겠다는 취지의 현행 공직선거법도 방송매체를 선거정보 유통의 허브로 삼고 있다. ‘좋은 선거’의 성공여부가 바로 신문과 방송의 역할 수행에 달려 있을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저널리즘 윤리강령은 그 동안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선거보도에 적용할 만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해 왔다. 저조한 공직선거 투표율은 민주주의 정당성을 금가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미디어는 유권자들의 참여를 끌어올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들의 자질을 톺아볼 수 있게 미디어는 관련 정보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형태로 다뤄야 한다. 선거와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하거나 투표참여를 혐오스럽게 여기도록 유인해서도 안되고 지엽말단의 것을 핵심 사안이라고 침소봉대하는 것도 억제된다. 선거의 핵심 쟁점을 슬쩍 비켜가거나 의도적으로 축소․은폐 하는 것도 금물이다. 객관성과 사실성을 빙자해 폭로전의 메시지 일부를 “따옴표”로 처리하는 따위의 행위는 선거 저널리즘의 잣대에 비춰보건대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신문과 방송은 ‘좋은 선거’에 기여했을까? 미디어 비평가들은 주류 미디어가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이 이기는 좋은 선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승리’를 위해 언죽번죽 사력을 다했다고 평가한다. 일상의 안온한 삶을 위협하는 국가범죄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에 경종을 울리는 일은 굳이 선거 시기에 관계없이 언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민간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사찰 범죄 의혹을 ‘유사 폭로’ 프레임으로 엮어서 저열한 선거 전략의 하나로 전락시켰다. 더불어 언론은 특정 후보의 옛 말과 특정 정당인의 발언 중 일부를 ‘진짜 폭로’ 프레임으로 확대 구축하고 이를 전격 확산시키면서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소, 특정한 정파적 견해를 굳건히 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주류 신문의 경우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청문회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불공정 보도를 이유로 파업 중인 양대 공영방송사의 경우 ‘낙하산 인사’의 부조리 의혹 규명을 예방하는 데 선거보도의 초점이 맞춰졌다고 보고 있다. 애시당초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거보도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언론을 ‘제4부’라고 칭한다. 그 용어에는 언론이 입법·사법·행정 등 3권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해야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이 담겨져 있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는 유권자들이 위임한 ‘알 권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 일 뿐 언론이 자신의 사익을 위해 갈붙이며 동원하는 칼바람 권력이 아니다. 되풀이 돼 온 방송사의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엇나간 것은 문제의 축에 끼지도 못한다. 선거보도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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