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진 본지 논설위원·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의 공분을 자아내거나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아니면 군중이 큰일을 벌렸을 때, 이를 통상 사회문제라 칭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학교폭력이나 폭동은 전형적인 사회문제다.

사회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매스미디어다. 매스미디어는 현황을 알릴뿐만 아니라 누가 그 사회문제를 일으켰으며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방도를 찾는다.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정부 또한 빠르게 대처하려 애쓴다. 사건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적절한 조치(교육·격리·처벌)를 취하고,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실행한다.

위에서 말한 공통점 이외에 매스미디어와 정부에서 공유하는 바는 시간에 쫓긴다는 점이다. 뉴스의 생명은 신속성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무능하거나 게으르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간의 압박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사회문제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거나 사회의 도덕적 핵심을 훼손했을 때 매스미디어나 정부는 ‘누가’ ‘왜’ 그런 일을 일으켰는지를 빨리 밝혀야만 한다. 여기서 스피드는 생존의 문제다. 매출이나 정권이 달려있다. 보도의 정확성이나 정책의 효과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오로지 속도다.

그래서 이른바 ‘속죄양’이 탄생한다. 속죄양은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다. 단지 속죄하는 의미에서 바치는 희생양일 뿐이다. 의례의 쓸모는 원인 규명이나 죄를 지은 자들을 처벌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불안감을 줄이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데 있다. 주지하듯이 속죄양의 의례는 매우 오랜 습속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작년 8월 영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폭동이 있었다. 많은 폭도들이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파괴했다. 5일 밤에 걸친 폭동의 와중에 벌써,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한 온갖 진단들이 생산되었다. 수상은 갱들과 전과자들을 명확히 지목했고 그 이유를 권리만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는, 그리고 폭력을 칭송하며 권위를 무시하는 문화에서 찾았다.

매스미디어도 나름의 ‘누가-왜’를 찾았다. 이주민 청년들을 지목했으며, 폭동의 빠른 확산의 이유로 소셜미디어(트위터, 페이스북, 블랙베리 메신저 시스템)를 제시했다. 대책도 역시 간명했다. 공권력이 소셜미디어를 검열할 수 있어야 하며, 문제 집단에게 규율을 가르치고 공권력의 무서움을 알려줘야 한다.

세계화의 결과인지 몰라도 현재 한국에서도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빠른 진단과 처방이 넘친다.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낙인찍힌 아이들(일진)이 지목된다. 이유로는 온라인 게임, 웹툰, 고가의 외투가 제시된다. 처방도 비슷하다. 공권력이 통제 수단(검열과 금지)을 확보해야 하며, 낙인찍힌 아이들에게 ‘규율을 가르치고 공권력의 무서움을 알려줘야 한다.’

두 나라의 매스미디어와 정부는 인스턴트 진단과 처방에 대부분 만족했다. 그래서 심층 분석 보도는 희소하며, 특히 정부는 폭동이나 학교폭력에 대한 엄격한 조사연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영국의 정론지 가디언은 이에 만족치 않았다. 런던정경대학의 팀 뉴번 교수와 함께 자료에 입각한 연구와 탐사를 통해서 속죄양 찾기와 같은 진단과 희생양 바치기와 같은 처방의 허점을 밝혔다.

지금껏 그들이 밝힌 바를 요약하면, 폭도들은 갱, 전과자, 이주민 청년들‘만’이 아니었으며, 소셜미디어는 폭동 확산에 ‘미미한’ 영향만을 미쳤고, 추상적인 문화보다는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더 큰’ 문제였다. 학교폭력에 관해 ‘느리지만’ 정확히 알려줄 한국의 가디언과 뉴번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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