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 여주대학 소통센터장

▲ 홍성민 여주대학 소통센터장

대학가에 한 때 이야기되곤 했던 자조적인 말로, ‘19세기 대학에서, 20세기 교수가, 21세기 대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학생들의 빠른 진화를 대학이나 교수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한 과장된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소통의 시대에 소통형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에 배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소통을 넘어 더욱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소통이라 함은 내가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느껴야 하기 때문에, 학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특히 요즘의 청소년들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기성세대와는 ‘소통의 부재’ 환경에 노출된 채 성장하며, 동일 세대들끼리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의사소통은 말 그대로 ‘뜻’과 ‘생각’이 ‘트이고’, ‘통해야’ 하는 것이다. 즉, 우리 기성세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요즘 학생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말을 하곤 한다. 소통이 제대로 되려면 네 가지 요소, 즉, 송신자와 수신자가 있어야 하고, 소통의 매체와 메시지가 갖추어져야만 하는데, 이들 각 요소에 내포된 문제들이 있다. 먼저, 교직원 입장에서 주요 수신자인 학생은 버릇이 없다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도전 정신과 인내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주로 송신자 역할을 하게 되는 교수나 직원에 대해 ‘꼰대’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이미 수없이 들어왔던 잔소리나 해대는 또 다른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박혀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교직원과 학생 사이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심리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학생은 소통에 적극적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송신자와 수신자의 간극이 해소되지 않은데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매체가 교수나 직원이 주로 사용하는 매체와 다른 것도 소통을 어렵게 하는 문제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도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SNS 등을 사용하곤 한다. 또 소통의 핵심이기도 한 메시지 자체가 소통의 큰 방해요인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학생과 교직원 모두에게 존재할 수 있는데, 학생들은 신조어나 축약어를 즐기는 반면 교직원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또 전형적인 강의 형식이나 면담 등은 전문가로서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기에 일방향 소통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교직원은 학생과의 소통에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곤 한다. 대학의 시설은 이미 많은 대학이 21세기에 걸맞게 가꾸어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21세기 학생에 걸맞게 교직원이 변하는 일이다. 서로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학생의 노력보다 대학 구성원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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