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진 본지 논설위원/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교수

 

언론의 취재보도와 관련해 언론학 강의에서 강조되는 가장 중요한 저널리즘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사실 확인’이다. 그래서 이른바 ‘팩트(fact)’가 동반되지 않는 뉴스나 기사는 보도하지 않는 게 기자 사회의 기본수칙으로 통한다. 팩트는 곧 뉴스와 기사의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이자 보도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이러한 원칙이 언론보도현장에서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19일 언론보도를 보면 그러한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의 이른바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이던 창원지검 특수부가 “노씨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고 있다”고 피의사실을 공개했다. 조선·중앙·동아 등 많은 신문들은 검찰의 발표를 일말의 사실 확인도 없이 그대로 1면 톱 헤드라인으로 전달하기에 바빴다.

방송은 더욱 심각했다. KBS와 MBC는 그날 ‘파이시티 비리’ 최시중·박영준 구속기소라는, 당시 최대관심사였던 대통령 주변인물에 대한 비리 수사결과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노씨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건과 직접적 연관성도 없는 5만원권 돈을 세는 장면이라든가 수북하게 쌓아놓은 돈다발 자료영상을 마치 노 씨의 비자금인양 내보내기도 했다.

노 씨 측의 변호인이 근거 없이 피의사실을 공개한 검찰의 행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피의사실을 공개한 담당 차장검사를 고소하겠다고까지 하자 검찰은 25일 브리핑을 통해 그 ‘뭉칫돈’이 노씨의 비자금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과학수사를 모토로 삼는다는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개한지 단 일주일 만에 스스로 거두어들인 것이다. 사건 수사과정에서 추가 사안이 드러나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지만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한편의 코메디같은 수준의 이번 언론보도를 들여다보면 검찰과 언론의 기묘한 공생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수사 중 피의사실을 공개한다는 것 자체도 비정상적인 행태지만 이를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 역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분명한 태도들을 두고 우리는 흔히 ‘검찰과 언론의 공생관계’라고 말한다. 수사 권력인 검찰에 대한 언론의 저자세나 정보독점을 이용한 검찰의 언론플레이 의구 모두 지탄받아 마땅하다.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만큼 언론이 검증할 능력이 있느냐고 자조적인 반문을 하는 기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검증이란 수사와는 다소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아니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기도 하다. 검찰의 브리핑 내용을 기자가 역으로 검찰에게 증거여부와 함께 확인만 해보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도 하지 못하는 언론이라면 과연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검찰과 언론의 교묘한 공생관계는 부정확한 여론만 양산할 뿐이다. 흔히 대한민국의 검찰을 ‘정치검찰’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국가최고권력이 검찰과 밀착해있다는 뜻이다. 검찰의 발표를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내보낸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이 만일 정치권력의 불순한 여론몰이 의도라면 이는 결국 독자와 시청자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꼴이 될 것이다. 소통의 단절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검찰과 언론이 각자의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해주기를 바라는 것, 그들도 이젠 정말 귀 따갑도록 듣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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