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 확보여부 의문, 현장혼란 가능성 제기
[한국대학신문 김봉구·이연희 기자]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술지 등재제도를 폐지하고 학계 자율평가에 따라 우수·선호학술지를 선정키로 한 데 대해 일선 대학들은 학계 평가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평가의 대상인 학회들이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면 객관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18일 대학들에 따르면 교과부가 지난 14일 학술지 등재제도 폐지와 학계 자율평가에 따른 지원대상 학술지 선정을 골자로 한 학술지 지원제도 개선방안 후속조치를 발표한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과부가 표방한 자율적 우수·선호학술지 선정은 평가 대상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이태수 서강대 연구처장은 “학회들이 스스로 학술지 등급을 매기는데 과연 객관성이 확보될지 모르겠다. 비유하면 중이 제 머리 깎는 격인데 벌써부터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해외 선진국들처럼 정량지표 DB에 기초해 독자적 평가기관이 우수학술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처장은 “학회는 평가에 관여하면 안 된다. 대표적 사례로 SCI는 사설기관인 톰슨-로이터에서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것”이라며 “논문 피인용 횟수, 투고 수 대비 게재 수 같은 정량지표에 따라 엄밀히 평가해야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남호 제주대 산학협력단장도 “학문 분야별로 나름의 계파가 형성돼 있는데, 아무래도 다수 계파 위주로 학계 평가가 이뤄지면 객관성이나 다양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동훈 서울과기대 산학협력단장 역시 “질적 평가를 하겠다지만 국내에서 피인용 횟수로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제자가 많거나 학계에서 네트워크를 잘 구축한 사람이 유리한 식”이라고 비판했다.
현실적으로 그간 교수 논문평가의 기준이 됐던 학술지 등재제도가 폐지되면 교수 연구실적 인정·적용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교과부가 개선방안을 발표한 뒤 담당부서인 학술인문과에는 대학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일단 공신력을 지닌 학술진흥재단 등재지·등재후보지 시스템이 폐지되면 결국 대학 일선에서 혼선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학술지 논문 발표와 평가의 일관된 기준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병재 대구대 산학협력단장은 “현재의 등재지 시스템이 실효성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폐지 말고 수정·보완하는 방향도 있지 않느냐”며 “대학 입장에서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학진 등재지 게재에는 100만원, 등재후보지 게재에는 50만원 지원 식으로 기준을 정해놓았는데 당장 어떻게 지원금을 줄지도 애매해진다”고 말했다.
특히 SCI·SCIE 등 대체가능한 기준이 있는 이공계에 비해 인문·사회계는 학진 등재지·등재후보지 외에는 별다른 평가기준이 없어 문제가 더 크다. 이남호 제주대 단장은 “이공계는 분명한 척도가 있는데 기존에 학진 등재지·등재후보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온 인문·사회계는 혼란을 겪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질적 평가로 전환해 집중 지원한다는 교과부 정책 방향 자체는 옳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태수 서강대 처장은 “등재지와 등재후보지 2개 등급만으로 전체 학술지를 평가하는 것은 바뀔 필요가 있다. 학술지 등급을 좀 더 세분화해 평가하고 지원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며 “다만 일선 대학에서 대처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1~2년의 유예기간을 더 주고, 학술지 등재제도 전면 폐지가 아닌 병행 적용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