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룡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에밀 졸라의 ‘꿈’

 
[한국대학신문 김기중 기자] “오늘 뭐 먹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탕수육 먹었다’ ‘칼국수 먹었다’ 합니다. 함께 먹은 김치나 다른 밑반찬 이야긴 잘 안 해요. 인문학은 단품요리가 아닌, 밑반찬 같은 겁니다. 어머니가 차곡차곡 쌓아놓으신 밑반찬을 우리가 매일 먹듯, 인문학은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재룡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사진)는 인문학을 ‘밑반찬’이라고 말했다. 숭실대 독서후기클럽 지도교수 중 한 명인 그는 이번 학기에 학생들과 함께 에밀 졸라의 <꿈>을 읽고 토론했다. 불우한 소녀 앙젤리크가 주교의 아들인 펠리시앙을 만나 사랑하다가 신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좌절을 딛고 결혼에 성공하지만 행복의 문턱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순진무구한 소녀 앙젤리크가 펠리시앙을 만나 행복을 성취하는 과정이 결국엔 ‘꿈’이 아니었나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으로, 이번 학기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밑반찬으로 해 준 여러 서양고전 중 한 권이다.

“자동차, 전기, 비행기가 어느 순간 발명됐듯 소설도 하나의 발명품이라 봅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소설은 다른 유럽 소설들과 더불어 현재 우리가 ‘소설’이라 정의내릴 때 기원이 되는 작품들입니다. 스탕달이나 플로베르, 그리고 에밀 졸라의 작품은 그래서 자료적으로도 가치가 있지요. 당시 유럽은 진화론이 등장하고 기독교 위상과 대립하는 전환기였습니다. 이 때 ‘소설’이라는 장르가 생겼고, 에밀 졸라는 이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세 학기째 숭실대 독서후기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에밀 졸라의 작품은 매 학기 반드시 넣고 있습니다.”

 
이 교수가 이 작품을 택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분량’이다. 이번 학기에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 비해 분량이 절반 이하 밖에 되질 않는다. 너무나도 바쁜 대학생들을 위한 고려인 셈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바빠요. 공부든 취업 준비든 제대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호흡도 짧지요. 가장 많이 읽는 문장 단위가 문자메시지 아니던가요. 백미터 뛰던 사람이 갑자기 마라톤 뛸 서 있습니까. 짧고 의미 있는 작품, 유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고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써서 대학생도 공감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선정했죠.”

이 교수는 ‘요즘 대학생’에 대해 이야기 하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독서 호흡이 짧은 대학생, 그리고 이런 대학생들에게 독서 운동을 벌인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대학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지적했다.

“저는 76학번입니다. 2년 정도는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를 가지 못했어요. 학교가면 전경들이 ‘왜 학교 왔느냐’며 잡아다 막 패고 그랬어요. 나머지 2년은 대학 문 열었지만 전두환 반대한다고 돌 던지느라 못 갔죠. 생각해보니 그 시대 독서는 편향적이었어요. 전공과 상관없이 모두가 전태일 평전을 읽어야 했고, 자본론을 읽어야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학생들은 어떤가요? 대학이라는 곳은 딴 곳과 달리 자연스레 책을 읽어야 하고, 당연히 책만 읽어야 하는 곳입니다. 책 읽자는 운동을 하자는 것 자체가 그만큼 우리네 대학이 망가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대학에서 독서 많이 하자’는 말은 ‘난센스’ 아닐까요?”

이 교수가 ‘인문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제는 편향적인 독서를 안 해도 되는 때가 됐지만 책 읽기엔 시간이 너무도 없다. 그러다보니 인문학을 지식이나 정보 차원으로 접근하려는 양태가 보여 우려스럽단 이야기다.

“인문학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씹어서 소화된 것만 받아먹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는 이들은 어떤 사람이 원전을 읽고 ‘이건 이런 내용이다’라는 것만 보게 되죠.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이렇게 한 번 더 씹은 것은 받아먹곤 합니다.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의 주장이나 이론에 대해 알긴 하는데 정작 원전은 안 읽어요. 인문학이란 습득하고 표현하는 틀입니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인문학 읽기를 통해 거친 음식도 먹고, 직접 체득도 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남이 먹고 소화시킨 것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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