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도태 기로···과감한 개혁 드라이브가 '답'

위기대처 못해 쇠퇴한 일본 반면교사 
한국형 전문대학 발전모델 만들어야

[한국대학신문 김재홍 기자] 발전이냐, 도태냐. 학령인구 급감을 앞둔 전문대학이 기로에 섰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하는 전문대학에게 가까운 대만과 일본 사례가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정부의 과감한 개혁과 드라이브로 전문대학을 살려낸 대만과 전문대학에 대한 홀대로 줄 도산 사태를 불렀던 일본의 사례는 지금의 전문대학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생사의 갈림길 속에 전문대학의 올바른 선택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 우리나라와 대만 전문대학 관계자들이 지난 2월 대만에서 회의를 개최해 양국 전문대학 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 수업연한 다양화로 위기 넘긴 대만= 2000년대 대만 전문대학들이 처한 상황은 지금 우리보다 더 심각했다. 2009년 대만 출산율은 1.0으로, 당시 우리나라 1.26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일부 4년제 대학에서도 직업교육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2015년 이후 50~60개의 전문대학이 도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가 의지를 갖고 과감하게 학제를 개편하고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간 결과, 전문대학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 기준 대만 전문대학은 2년 과정 간호전문계열 대학 14개교만 남아있다. 나머지 51개교는 과학기술대학으로 전환되면서 수업연한이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확대되고, 석사 및 박사 과정이 개설됐다. 이를 통해 전문 직업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고,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

이승근 전문대교협 기획조정실장은 “대만도 과거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전문대학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심했다”며 “수업연한이 늘어나고 대학원 과정이 운영되면서 학벌로 인한 차별이 점차 사라졌고, 직업교육과 노동에 대한 가치도 인정받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업연한의 확대와 대학원 과정 개설은 과학기술대학의 연구역량 강화 및 산업체와의 산학협력 활성화라는 효과도 낳고 있다. 김종갑 인천재능대학 교무처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2~3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산학협력보다는 졸업생 배출과 취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이 전체 98%를 차지하는 대만의 경우 대학원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심도 있는 산학협력이 가능하며, 나아가 중소기업의 발전이라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대학과 교수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인센티브 제도 시행도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대만 정부는 전문대학이 과학기술대학으로 전환하기 위해 △전문대학 3년 이상 운영 △도서관 면적 5000㎡ 이상, △장서 15만권 및 20가지 분야의 전문서적 서비스 제공 △행정 및 교육 분야 1등급 등의 기준을 제시해 이를 충족하는 대학만 과학기술대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4년 주기로 과학기술대학에 대한 평가를 시행해 교육의 질 향상에도 주력했다. 1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원 증원이 가능하지만, 4등급을 받을 경우 모집 제한 등의 조치를 받게 된다. 교수 임용 및 평가도 엄격히 시행한다. 10년 이상 산업체 경력이 있어야 교수로 임용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 대만정부는 △교육 △학생지도 △기술개발 △산학협력 실적에 대한 엄격한 교수 평가를 실시하고 보너스 및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김 처장은 “홍광과학기술대학의 경우 교수들에게 연구성과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며 “교수평가와 인센티브 제도가 철저하게 운영되면서 홍광과학기술대학에서 연구성과가 실제 사업으로 진행된 사례가 2006년 7건에서 2010년 74건으로 크게 증가하는 등 과학기술대학 전반적으로 산학협력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수업연한 확대, 철저한 평가 시스템 도입 등 정부 주도의 전문대학 체제 개편을 통해 대만 과학기술대학의 수준이 향상된 점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며 “대만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형 전문대학 발전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첸피윤 대만 수덕과기대학 해외부교장이 지난달 열린 전문대학총장 하계세미나에서 대만 고등교육체제 개혁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53만명서 15만명 급감한 일본= 199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가 급격히 쇠퇴한 일본 전문대학의 사례는 우리 전문대학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쇠퇴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문대학은 1990년대 전성기를 맞이해 1997년에는 53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후 학생 수가 급감하기 시작해 현재 15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기준 일본 대학 수는 4년제 대학 780개, 전문대학 387개로 4년제 대학이 2배 정도 많다. 그러나 학생 수로 비교하면 4년제 대학 재학생 289만 명에 비해 전문대학은 15만 명으로 전체 학생수의 5%에 불과하다. 특히 인문·사회·예술 계열의 학생 수 급감은 심각한 상황이다. 일본 전문대학 인문계열 학생수는 1993년과 비교했을 때 지난해 10%, 사회·예술 계열은 22%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도한신 영진전문대학 산학협력단장은 일본 자동차 학과를 예로 들며 “사회취업 환경의 변화, 단기기술교육 중심의 한계, 여성 교양중심의 학과운영 한계 등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지만 일본 전문대학이 사회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문대학 내에 자동차 관련 학과는 현재 8개교에만 개설돼 있다. 일본 자동차 대기업은 자체 전문학교를 보유해 인력을 양성하는데다 최근 일본 자동차 관련 업종의 처우가 나빠지면서 수험생들이 이 학과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전문대학의 침체는 학력 저하, 정원 미달, 경영 부진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보니 현재 일본 전문대학은 유아교육과 간호보건 계열의 학과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도 단장은 “우리나라 전문대학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일본의 사례처럼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며 “사회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문대학의 생존방향”이라고 말했다.

“대만 정부 강력한 드라이브 눈여겨 봐야”
[인터뷰] 이종찬 전문대교협 대외협력부장

“직업교육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가장 문제입니다. 실업률이 문제가 되니 4년제 대학에 직업교육을 맡겨버리면 일반 학제교육에 직업교육을 덧붙인 형태로 갈 우려가 있어요. 이럴 경우 인력의 미스매치 해소를 기대하긴 어렵죠.”

이종찬 전문대교협 대외협력부 부장은 현재 직업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인력의 미스매치’를 꼽았다. 4년제 대학에서 내놓는 인력, 전문대학에서 내놓은 인력 모두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간극을 매우기 위해 정부가 4년제 대학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미스매치는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 이를 해소하려면 현장에서 원하는 인재가 어떤 인재인지 잘 살펴봐야하고, 그러면 저절로 답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의 대학들과 중소기업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기업당 석·박사 인력 1~2명과 그 밑에서 일할 창의적인 팀장급 인력 10여명 정도인데, 석·박사급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4년제 대학도 전문대학도 팀장급 인력을 못 채우고 있거든요. 4년제 대학에 투자를 해도 학생들은 대기업만 원합니다. 이런 틈새를 전문대학이 매꿔야 하는데 현재로선 상당히 어렵습니다. 수업연한이 묶여 있기 때문이죠. 이를 풀어서 4년제 대학 중에서도 직업교육의 영역으로 넘어올 대학은 넘어오게 해야 합니다.”

전문대학은 지금까지 ‘4년제 대학은 연구 중심, 전문대학은 취업교육 중심’을 외쳐왔다. 그렇지만 졸업 후 ‘취업’이 다급한 4년제 대학들이 취업교육에 눈을 돌리고, 정부가 이를 방관하면서 문제가 심화됐다. 대만의 전문대학 개혁 사례가 주는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가 직업교육에 대한 시각을 우선 바꾸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전문대학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고등교육 체제를 대만처럼 바꾸자는 게 아니에요. 대만의 전문대학 정책이 바뀔 때 정부의 역할이 바로 전문대학이 주장하는 포인트입니다.” 이 부장은 이에 대해 지난 달 제주도에서 열린 총장세미나 발표된 ‘2012 전문대학 어젠다’를 눈여겨 보라고 말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고등직업교육체제 확립 △현장중심 협력 교육체제 확립 △학습·고용의 연계성 강화 △직업교육·훈련의 통합 시스템 구축 등 5대 핵심과제로 구성된 어젠다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전문대학 위상에 맞는 지원책 등이 담겼다.

이 부장은 이에 대해 “ 전문대학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동시에, 혼재된 고등교육 체제를 바로 잡고, 직업교육의 효율도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대선을 목전에 둔 지금 전문대학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때가 됐다는 뜻이다. 김기중 기자 gizoong@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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