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본지 논설위원·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팔순을 앞둔 노인 두 사람이 영어의 몸이 됐다. 현직 대통령의 ‘정신적 혈육’이라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진짜 혈육’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바로 그들이다. 고향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지난 5년여 동안 ‘대군’으로 통했다. 최 전 위원장은 방송통신정책 분야의 수장으로 언론권력을 재편했고 6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이 전 의원은 정치권의 해결사 혹은 만사형통 절대권력 행사자로 통했다.

파렴치하게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두 사람은 반백년 이상 다정한 친구로 지내왔고, 생의 말년에는 같은 구치소를 거쳐 재판정에 서게 됐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던 이 전 의원의 푸른색 넥타이를 낚아 챈 저축은행 피해자는 “내 돈 내 놓으라”고 울부짖었다. 처연하게 쪼그려 앉아 법원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던 피해자 노인 한 사람의 눈과 입에서 하염없이 눈물과 신음이 쏟아지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노인의 삶은 ‘지혜 덩어리의 역사’라 불린다.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역량은 자연 친화적인 사회에서 노인들이 뭇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원천이다. 지난 두 달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두 노인의 잇따른 구속은 사회 병리를 감지하고 경계경보를 울려주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게 만든다. 필자는 이런 문제가 언론으로 하여금 질문하지 못하게 만든, 언론사 지배구조 고착과 언론인 스스로 자기 검열장치에 포박돼 질문하기를 포기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잘 아시다시피 MBC와 KBS의 사장을 뽑는 두 방송사 이사진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하는데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장과 공영방송사 이사진과 공영방송사 사장의 운신이 ‘은밀한’ 수직적 위계 속에서 이뤄질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최시중씨가 막강 ‘방통대군’으로 불렸던 까닭은 대통령의 ‘멘토’로서의 위상이나 ‘영일대군’과의 친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방송사의 지배구조와 운영에 미친 강력한 지배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새로 임명된 공영방송사 사장 체제에서 질문하는 프로그램이 줄이어 폐지되고 깊게 질문한 내용의 프로그램들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하는 파행을 거듭했다. 전문가와 시민사회,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종편사업자 선정과 승인은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의 통제 구도 밖에 존재하던 신문사업자들을 방통위의 영향권 아래 묶어두는 효과를 불러왔다. 종편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신문사들은 그 이유로 제대로 질문하기를 주저하였다. 신문과 방송에서 질문이 사라지고 그나마 살아남은 질문들마져 필봉의 예리함을 잃었다.

태초에 묻는 존재로 출발한 언론이 ‘질문’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팽개쳤을 때, 질문받는 존재여야 할 일반 사회가 오히려 언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언론, 너희는 왜 질문하지 않는가?” 거듭된 사회의 질문에 양식 있는 언론인들은 고개를 떨구며 대답하는 것 조차 힘들어했다. 한 편에선 겨울이어서 날이 춥고 봄이 오니 꽃이 피었다는 하나마나한 말랑말랑 뉴스를 열심히 전달하던 일군의 언론인들이 질문하는 시민들을 향해 ‘눈을 부릅 뜨고’ 윽박질렀다. “질문하지 말라, 거듭 물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 질문하려는 젊은 언론인들에게도 ‘질문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고 그럼에도 질문을 계속하는 언론인들에게는 가혹한 징계와 끔찍스런 해고조치를 서슴치 않았다.

질문하지 않는 언론인은 필요없다는 시민사회의 냉소를 받으며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던 언론인들이 뒤늦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날이 몹시 춥고 마음까지 시리던 겨울 한 복판에서 공정성 회복을 명분삼아 MBC·KBS 등 방송사들은 파업에 나섰다. 1월 말에 시작된 MBC 파업은 다섯 달을 훌쩍 넘기고 세 계절을 지났다.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의 신문사도 장기간 파업을 벌였다. 질문을 잃어버린 언론의 각성이 언론의 파업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현재 언론의 파업사태는 대부분 마무리됐다. 은밀히 숨어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와 부당한 권력행사에 대해 언론이 질문하기를 또 주저한다면 고통스럽게 오랫동안 진행된 언론의 파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언론이 제대로 묻고 따졌더라면 팔순의 노인들이 철창에 갇히는 비극이 전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언론은 질문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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