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국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엘리자베스 보튼 데 트레비뇨 著 <나, 후안 데 파레하>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래서 문학을 읽는다”

▲ 백정국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사진=한명섭 기자 prohanga@unn.net>
“아내에게 배신당한 샤푸리 야르왕은 신부를 맞이해 결혼한 다음날 아침에 신부를 죽입니다. 대신의 딸인 세헤라자데는 자진해서 왕을 섬기게 되는데,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가 재밌어서 왕은 1001일 동안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죠. 죽이면 새로운 이야길 못 듣기 때문에 살려두는 거지요. 이 <천일야화>를 전 이렇게 봤습니다. ‘이야기는 곧 삶이 아닐까’라고.”

백정국 숭실대 영문학과 교수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학’이 가지는 힘도 상당하다는 주장이다.

“문학의 효용을 이야기 할 때 우린 두 가지를 듭니다. 첫째는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둘을 합치면 결국 ‘제대로 된 배움은 즐거워야 한다’는 게 됩니다. 학교라는 단어 ‘스쿨(School)’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스콜(skhole)’에서 나왔어요. 스콜은 ‘여가’라는 뜻이거든요. 그리스의 학당을 그린 그림들을 보세요. 앉아서 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워서 듣는 이도 있고 다들 제멋대로 수업을 들어요. 수업은 재밌어야 하고, 그래서 이야기로 풀어서 진행이 됐었죠.”

백 교수는 지난 학기 ‘만나다(문학적 상상력과 현실)’를 주제로 숭실대 독서후기클럽을 운영하면서 학생들과 여러 책을 읽고 토론했다. 엘리자베스 보튼 데 트레비뇨의 <나, 후안 데 파레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비롯해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등이었다. 호흡의 길고 짧음은 있지만 모두들 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딱딱한 책이 아니라 단단한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가 단단한 작품들이다.

책 목록 중 <나, 후안 데 파레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5년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의 아동청소년상인 ‘뉴베리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동청소년상이라니, 기자가 “대학생들이 읽기에는 너무 가벼운 책 아니냐”고 묻자 백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읽는 책과 어른들이 읽는 책을 구별하곤 합니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이자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C.S.루이스는 ‘열 살 때 읽었을 때 가치가 있었다면 쉬흔 살에 읽어도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어떤 책을 딱히 그 나이 대에 읽어야한다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백 교수가 이 책을 대학생과 함께 읽은 이유는 <나, 후안 데 파레하>가 지닌 이야기의 힘 때문이었다. 책은 17세기 초 흑인 노예로 태어난 후안 데 파레하가 스페인 최고 화가인 벨라스케스의 노예로 지내다가 자유를 얻고 그의 조수가 되기까지 과정을 파레하의 시점으로 담아냈다. 실제 인물과 몇 가지 사건들, 그리고 현존하는 최고의 명화들 몇 점을 소재로 작가는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어냈다.

“제가 운영하는 숭실대 독서후기클럽 모임 이름을 ‘만나다’라고 한 것은 만나는 게 바로 이야기의 시초이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어요. 보는 것은 관조일 뿐이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순간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소설 첫 부분에는 파레하를 돕는 이시드로 신부가 나옵니다. 파레하가 ‘왜 날 도와주느냐?’ 했더니 이시드로 신부는 ‘난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말하죠. 파레하의 주인인 벨라스케스도 그렇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단 한 번도 파레하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파레하는 훌륭한 화가로 성장합니다.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수의 말을 통해 배운 게 아니라 예수와 만나면서 예수의 삶을 배우는 겁니다.”

결국 백 교수에게 독서후기클럽은 문학을 매개로 학생들과 만나는 ‘만남의 장’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학생들이 바뀌길 바라는 게 교수로서의 바람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와 동네 집배원 마리오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독재정권에 의해 추방당한 네루다가 마을에 오자 편지가 넘쳐나고, 동네 어부 마리오는 떠맡듯 집배원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시를 배웁니다. 네루다는 칠레로 돌아가고, 마리오는 반정부 시위에 참가해 죽는다는 줄거리죠. 네루다가 시인이 아니라 정치 혁명가였고 정치를 주입식으로 가르쳤다면 어땠을까요. 마리오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백 교수는 “요새 학생들은 짧은 이야기에만 몰입하는 것 같다”고 했다. “긴 이야기에는 집중을 못 하는 학생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너무나 바쁜 대학생들, 문학을 읽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는 것은 아닐까. 백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우린 종종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전 다르게 봅니다. 문학은 힘이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소설 읽기는 현실로 뛰어드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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