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숭실대 공동기획]‘책 속에 대학 미래 있다’⑥
[한국대학신문-숭실대 공동기획]‘책 속에 대학 미래 있다’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삼열 숭실대 베어드학부대학 교수, 헤르만 헤세 著 <지와 사랑>

“베스트셀러 아닌, 명작부터 읽어야.”

[한국대학신문 김기중 기자] “2년 전 이야깁니다. 도서관 박영철 팀장님이 만날 때마다 ‘독서후기클럽 교수가 돼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바빠서 어렵다 고사했죠. 그런데 어느 날엔가 봉사지원센터 이기문 팀장님이 ‘탈북 학생들을 맡아 달라. 탈북 학생들과 매달 만나 밥이나 한 끼씩 사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외할아버지께서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다가 한국전쟁 때 남한 쪽으로 못 내려오셨거든요. 마음이 약해졌어요. 그래서 알겠다 했더니 박 팀장님이 찾아오셔서 ‘독서후기클럽 교수가 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시더라고요. 두 분이서 작전을 짰던 거죠. 그래서 세 학기째 탈북 학생들과 책 읽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박삼열 숭실대 베어드학부대학 교수는 ‘책 읽는 대학’을 지향하는 숭실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난 2009년 교양특성화 대학이 베어드학부대학으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에서 학부교육 선진화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독서 프로그램 등을 기획했다. 현재 베어드학부대학 교양과정인 ‘읽기와 쓰기’ 주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학장을 맡아 여러 업무를 하고 있다. 바쁜 일정이지만 두 팀장의 ‘꾀’에 빠진 후 탈북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탈북 학생들은 서양 고전을 접한 적이 없어요. <이성과 감성>을 한 권씩 주고 읽어오라 했더니 한 달에 열 페이지도 못 읽더라고요. 무슨 이유인가 싶었는데, 책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모두들 책에다가 포스트잇을 붙여 놨는데, 주인공 이름과 관계도 같은 것들이었어요. 영어 이름이 생소해 책을 못 읽었던 겁니다.”

서양 고전 읽기를 어려워 하는 탈북 학생들과 지난 학기 같이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박 교수가 원래 이성과 감성의 조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탈북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어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했다.

“인간이 이성의 주체가 된 것은 데카르트 때부터였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보면 ‘양식(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고루 분배돼 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 전까지 이성의 주인은 신이었어요. 인간은 이성을 신에게 양도 받았고요. ‘이성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말은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고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이성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게 굉장히 파격적이었죠. 특히 노예나 남녀를 떠나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다’는 것은 더욱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이성과, 반대로 인간의 고유 본성으로 여겨졌던 감성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탈북 학생들과 이성과 감성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논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와 사랑>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다룬 대표적 소설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어느 누구나 공유하는 명작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지와 사랑>은 이성을 대변하는 나르치스와 감성을 대변하는 골드문트를 대칭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의 5분의 4 정도가 골드문트의 이야기이고, 나르치스는 처음과 앞부분에만 나올 뿐이다. 그래서 ‘지와 사랑의 주인공은 골드문트’라고 하는 이들도 많다. 박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후 골드문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마지막에서야 나르치스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맺습니다. 저는 골드문트보다 나르치스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남녀가 사귀면 정념이 생기고, 결국 정념의 노예가 됩니다. 이러한 정념은 수동적인 감정들인데,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감정, 즉 관용을 보이는 공동체로서의 사랑을 이끄는 것은 결국 이성이 아닐까 싶어요.”

박 교수가 이 책을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한 번도 책을 놓지 않았을만큼 흡입력이 있었고, 그 때부터 집에 있는 어려운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읽다가 호되게 당했던 경험이 아직 새록새록하다.

“집에 전집이 있었어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 여러 어려운 책을 여럿 읽었죠. 그렇다 해도 중학생이 <유토피아>라니, 결국 50페이지를 못 읽었습니다. 한동안 책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책 읽을 때에는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숭실대 독서후기클럽은 이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사례라 생각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책을 잘 안 읽는다”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골라 읽는 편향된 독서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박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그래서 대학의 역할, 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쏠림 현상이 안타깝습니다. 토양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베스트셀러만 읽으면 자칫 휘둘릴 우려가 있어요. 책에 대한 제대로 된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가이드가 없었다면 당연히 대학이 나서야죠. 정말 읽어야 할 책들부터 읽어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는 그 이후에 읽어도 늦지 않아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