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지금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인데 외려 교육을 하면 할수록 사람에서 멀어진다. 또래 애들끼리 모여 재미있게 대화하고 놀이를 할 나이에 고문과도 같은 국영수공부에 매진하고, 웅대한 꿈과 이상을 명문대 진학으로 대체한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감하면서 올바른 자아와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대신 경쟁욕으로 무장하고,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인격을 도야하는 대신 주입식 교육을 암기하는 기계로 자신을 전락시키고 있다. 수조 원을 들여서 외려 창의력과 인성을 마비시키고, 교실을 경쟁과 폭력과 자살충동의 장으로 바꾸는 한국 교육은 이제 종언을 고하여야 한다.

하지만, 입시제도의 철폐와 대학서열화의 해체 없이는 어떤 대안도 미봉책이다. 이런 취지로 민교협과 교수노조를 비롯한 교육단체가 합의한 대안은 대학네트워크 체제와 국립교양대학의 설립이다. 그럼, 현실의 토대 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달성할 것인가. 필자는 ‘특성화’와 ‘재정지원’을 매개로 점진적으로 대학서열을 해체하면 이것이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확신한다. 70년대만 해도 부산대나 경북대의 입학점수가 연고대보다 높았다. 한양대 공대, 홍익대 미대, 건국대 축산학과 학생들은 일류임을 자부하였다. 세계 100대 대학의 서열은 재정과 정확히 비례한다.

서울대를 제외한 9개 거점 국립대학을 교수진과 시설, 전통과 역사를 고려하되, 지방산업 및 문화와 연계하여 특성화하고 그 분야에 한하여 매년 1,000억 원에서 3,000억 원 정도의 재정지원을 한다. 명문대의 유명 교수가 지방대학으로 옮길 경우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준다. 지역의 기업이 이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도록 권장하고 대신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 이렇게 3년 동안 지원하면 대학의 특정 분야는 일정 정도 수준에 이를 것이다. 4년차에 9개 거점 국립대학과 주변의 국립대학을 네트워크하며, 사립대학에도 이를 개방한다. 대신, 대학네트워크에 들어오는 사립대학은 반의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사립대학은 대학네트워크에 들어오는 지원 사립대학과 독립사립대학으로 이원화한다. 한국의 사립대학은 실질적으로 공립대학이다. 현재 명문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2,000억 원에서 3,000여억 원에 달하므로, 대학네트워크 실시 첫해에 60%∼80%, 2년차에 90% 이상의 사립대학이 네트워크에 들어올 것이다.

대학네트워크는 2년 과정의 국립교양대학을 운영한다. 네트워크에서는 자격고사만 본 후 공동선발을 한다. 이에 들어오는 학생에 대해서는 입시가 폐지되는 것이다. 학생의 배정은 서울을 공동학군으로 하고 나머지는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으로 묶어 추첨한다. 대학네트워크 초기에는 서울대와 명문 사립대가 비네트워크 대학으로 남을 것이다. 고교 평준화 초기에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하고 이를 거부하는 학생은 제물포고 등 비평준화 고교에 시험을 치고 진학한 것처럼, 명문대를 선호하는 학생들은 입시를 치르고 이들 대학에 지원하면 된다. 하지만, 재정 지원과 특성화에 따라 대학네트워크와 명문대 사이의 수준 차이와 취업률이 급격히 좁혀질 것이기에 이는 과도기의 현상으로 그칠 것이고, 종국에는 서울대와 명문 사립대도 대학네트워크로 들어올 것이다. 이 경우 입시는 완전히 폐지된다. 중고등 학생들은 입시에서 해방되어 친구와 어울리며 재미있는 공부를 하면 된다. 

교양 대학에서는 창의력, 인성, 문제해결 능력, 감성 및 공감 능력, 비판력, 통섭능력을 기르는 교양을 중심으로 하되 이것만 가르치지 않는다. 개인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모든 학생은 한 가지 능력은 타고 났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학생들이 교양과정을 통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타자와 공감하며 인격을 도야하는 가운데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견하고 이를 계발할 수 있도록 이끈다. 지금의 시간강사를 국가교수로 채용하여 이들이 교양을 맡도록 하며, 기존의 전임교수도 자신이 원할 경우 교양대학의 강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교양과정을 마치면, 3년 과정의 전공 대학으로 진학한다. 이 경우 교양대학의 성적과 논술, 적성검사, 인성 등을 평가하여 전공대학을 배정한다. 물론, 초기에는 대학 서열화가 잔존하여 평가를 놓고 마찰과 갈등이 있겠지만, 특성화 통한 대학 평준화 작업과 개인의 취향과 능력에 따른 자기계발 및 삶의 가치관 변화로 이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고, 종국에는 평가 또한 무의미해질 것이다. 10조 원의 재정? 별도로 거둘 필요가 없다. 부자감세 20조를 MB정권 이전으로 되돌리면 충분히 쓰고도 남는다. 이제 남은 것은 의지와 지혜, 그리고 꿈을 꾸는 자들의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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