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명 본지 논설위원·숭실대 철학과 교수

8월 24일자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제자들의 취업을 고민해 오던 대전의 한 대학교수가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자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과 스승의 자살 사이에 어느 정도의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절박한 취업문제와 아울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실존의 문제이다. 취업이 삶의 양(量)이라면, 실존은 삶의 질(質)이요, 의미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양의 팽창이 질을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양적 경쟁은 질의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급기야 경쟁에서의 낙오가 분노와 좌절, 절망으로 표출되어 흉악한 범죄와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대학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지표들 가운데 취업률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취업률이 확보되어야 대학도, 학과도, 학문도 또한 학문하는 학자도 생존이 가능하게 된 형국이다. 이런 까닭에 교수는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기 보다는 제자들의 취업률 제고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런데 취업은 직업을 얻어 직장에 나감으로써 자신의 삶을 경제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학문의 다양한 특성에 따라 취업의 내용과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문의 특성을 배제하고 일률적으로 어떤 기준과 비율을 정하여 취업률 제고를 양적으로 강요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요즈음 취업난은 사회구성원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일자리는 삶의 질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취업은 직업을 얻어 직장에 나감을 일컫는다.

직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이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문제이기도 하다. 취업은 개인의 능력과 역량, 미래에의 전망 및 사회구조와의 복합적인 상호관계에서 설정된다. 따라서 그것은 우열의 문제라거나 지배와 예속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필요에 의해서 규정되는 상보관계요, 상생관계이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 이윤창출이라는 경제논리에 따른 효율성이나 효용성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裁斷)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장적 가치 외에 인간적 가치가 절실히 요구된다. 서로 나누는 배려와 관심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실천하고 추구해야 할 덕목인 까닭이다.

어느 교수의 자살에 즈음하여 다시금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진솔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참살이라는 웰빙 (wellbeing)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나 행동”이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웰다잉(Well Dying)은 “아름답고 품위 있게 맞이하는 죽음”이다.

웰빙과 웰다잉을 꿰뚫는 키워드인 편안함과 행복, 아름다움과 품위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고 형성하며 지켜가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 진정한 웰빙의 완성은 웰다잉으로 마무리된다고 하겠다.

죽음은 자신의 이기적인 결단에 의한 삶의 종말이 아니라 자연스런 삶의 질서요, 순환이다. 취업난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사회의 비극이요, 삶의 질서에 대한 모순이다. 취업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 다양한 선택을 받아들일 때, 삶의 건조함은 극복되고 조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통해 일회적인 자신의 삶속에서 실존의 참된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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