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선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지난 여름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참으로 힘든 계절이었다. 시인은 여름을 위대한 계절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2012년 여름은 열대야와 태풍, 폭우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지난 여름의 기상관측치들은 과거의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기존의 관측기록들을 무더기로 갈아치운 올해의 기상이변이 말 그대로 이변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상이변이 이변이 아닌 항상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기상재해로 인한 농민들의 어려움을 전하는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폭우로 침수된 농경지와 과수의 낙과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태풍으로 벼가 여물지를 못해서 쭉정이만 남아 올 한해의 수확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상이변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곡물수출국인 미국의 곡창지대도 가뭄피해가 극심했고, 이로 인해 국제곡물가격은 이미 가파른 상승을 시작했다. 곡물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가공식품가격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4년여 전에 회자되었던 애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다시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곡물을 비롯한 농산물가격의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견인하는 애그플레이션 현상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기상악화에 의해서 진행되는 단순한 자연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연현상에서 파생된 위기상황에 작위적으로 개입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더 큰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비교해서 가격변동에 대하여 생산이나 소비의 대응이 상대적으로 비탄력적이다. 이런 점을 악용하여 먹거리를 담보로 쉽게 이익을 챙기는 집단에 의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다수의 빈곤층의 생활이 압박받는 구조가 현대 농식품체계이다. 이런 비대칭적이고, 비인간적인 구조가 현실에서 가능하게 된 이유는 곡물생산의 국가별 집중도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국제곡물시장에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도 몇몇 거대 곡물메이저가 지배하는 극도로 과점화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국제가격이 작년 9월과 비교해서 1년 사이에 32%나 오른 콩(대두)의 경우만 보더라도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3개국의 생산량이 전 세계 생산량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들 3개국의 수출량이 국제곡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 그리고 미국 수출물량의 80%이상을 단지 4개의 거대 곡물메이저들이 쥐락펴락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7%의 자급률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국제 콩 시장의 현실이다.

얼마 전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통계자료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작년도에 사상 최저인 22.6%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1년 만에 자급률 수치가 20%나 폭락한 것이다. 더욱이 쌀의 자급률은 83%로 추락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심각성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급률지표가 하락하자, 곡물자주율이라는 희한한 지표를 가지고 현실을 왜곡할 요량인 듯하다. 국내에서 생산한 곡물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하거나 구매한 곡물도 포함시키려는 곡물자주율이라는 개념은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곳간을 챙기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 또는 높은 식량자급률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여러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그 많은 정책들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나 고려해야 할 것이 곡물자주율이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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