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센터 조사 결과 … “교수에 생사여탈권 있는 탓”

“졸업심사 절차 개선 등 대책 마련 시급”

[한국대학신문 민현희 기자] “출장 간 교수님의 빈 집에 가서 개 밥을 줬다.” “교수님께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가치가 떨어지니 일찍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교수님의 아바타가 된 느낌이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개인적인 일처리에 동원되거나 교수가 지시한 업무량이 과도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10일 오후 근대법학백주년기념관에서 ‘서울대의 인권, 어디에 있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교수·직원·대학원생·학부생 등 학내 구성원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대학원생들의 학습·노동권 침해 실태가 심각했다. 교수의 프로젝트 등에 의한 과도한 업무량으로 개인 공부·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대학원생이 32.5%에 달했고 27.8%는 학업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서도 적절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교수 집 이삿짐 나르기’ ‘교수 개인 대소사 챙기기’ 등 교수의 사적인 업무 처리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대학원생도 11.1%나 됐다. 교수에게 자신이 쓴 논문을 빼앗기거나 교수의 논문을 대필한 적이 있는 대학원생도 8.7%로 적지 않았다.

조사에 참가한 한 대학원생은 “중요 학회지 논문은 교수가 직접 쓰지만 연구 실적을 채우기 위한 논문의 경우 주제나 분량 등을 정해 조교들에게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교수 개인을 위한 연구비 유용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는 대학원생은 10.5%였고 교수로부터 강제집합이나 행사동원을 당한 대학원생이 28.1%, 폭언·욕설을 들었다는 대학원생은 19.5%로 나타났다.

교수들의 수업 준비 수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조사에 참여한 대학원생 가운데 41.6%는 ‘지나치게 준비 안 된 수업’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교수 개인 사정으로 자주 변경되는 수업(26.8%) △업무로 인해 교수가 수업에 불참시킴(18.4%) △교수가 특정 수업을 수강 강요 또는 제한(17.1%) 등을 경험한 대학원생들도 있었다.

대학원생들은 주로 교수로부터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는 이유로 교수가 가진 막강한 권한, 진로에 대한 영향력, 의사소통이 어려운 조직문화 등을 꼽았다.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은 어차피 자신의 분야를 아예 떠나지 않는 이상 교수에게 생사여탈권이 있다. 교수가 바뀌지 않으면 졸업을 해도 교수의 종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인권센터 관계자는 “교수의 권한이 절대적인 졸업심사 절차를 개선하고 실험실 예산 관리를 투명화 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외 학부생·직원·교수를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는 교수의 55%가 연구 외의 일로 연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답했으며 직원의 50%는 교수나 동료 직원으로부터 직위·직종·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지난 7월 문을 열고 대학원생·학부생 총 38명을 심층 면접해 이를 바탕으로 설문지를 작성한 뒤 대학원생 1352명, 학부생 1040명, 일반직원 340명, 전임교수 307명 등 300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