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 목포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인문학에는 왜 축제가 필요할까?

짧지 않았던 유학시절, 도서관을 나선 필자는 가끔 음침한 독일의 겨울하늘을 머리에 이고,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이나 어느 유학생의 비좁은 방으로 향하곤 했다. 그곳엔 예외 없이 그동안 도서관에서 건져 올린 월척을 자랑하고 싶어 어깨를 으쓱대는 인문학 낚시꾼들이 모여들었다. 다양한 영역에서 공부하는 그들은 천천히 맥주잔을 기울이며 툭툭 인문학의 화두들을 내뱉곤 했다. 플라톤에서 하이데거를 거쳐 데리다까지, 괴테에서 벤야민을 돌아 김수영까지, 말러에서 비틀즈를 찍고 대학가요제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굽이쳐 돌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총장의 환영사가 없는 그곳, 넥타이 맨 사회자와 지정토론자가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에 경계 따윈 없으며, 경계가 무너지는 그곳에서 인문학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보잘 것 없는 그 맥주파티가 아름다운 축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우리는 서로 달랐고, 그렇기에 그 축제는 화려했다.

지난 주 목포대학교에서는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승달산을 배경으로 인문학의 축제가 열렸다. 인문대학의 여러 학과와 인문학 관련 연구소들이 힘들 모아 제2차 목포대학교 인문주간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유학 시절 내가 만났던 술친구들보다 조금은 더 음흉한 교수와 연구원들은 그들 스스로 체험했던 축제를 무안의 교정에 재현하고자 했다. 학생들이 분과의 경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더 자유롭고 발랄하게 인문학을 즐기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만길 교수의 통일 강연에 자못 심각해졌던 젊은이들은 이내 구석기의 사냥도구를 과녁에 꽂으며 환호성을 질렀고 다시 한자 골든벨에 참여하러 달려갔다. 강의실은 모두에게 개방되었고, 등산복을 입고 온 백발의 지역주민은 유럽의 영화이야기에 즐거워하다가 내년에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인문학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언제나 그렇듯 축제는 질서정연한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목포대 인문주간 행사의 모토는 ‘인문학, 길을 찾다’였다. 이 모토를 두고 교내에서는 인문학이 이제 제 갈 길을 찾은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길을 못 찾고 헤매는가에 대한 웃음 섞인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그 누구도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인문학이 갈 길은 바로 이것이며,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렵더라도 이 길을 가야한다고 역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인문학이 오랫동안 바로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고, 그 옆 자리 친구가 아주 풍요롭고 재미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인문학은 시대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의 곁을 지켰다. 그러하기에 그것은 그 어떠한 강령의 선포가 아니며, 빛나는 전통의 계승에 대한 강조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길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항상 새로운 방식과 내용으로 시대에 대해 고민했고, 그들의 고민은 새로운 모습의 인문학을 창조했다. 길을 찾는 그들의 미숙한 방황 속에 인문학의 새로운 길이 놓이고 있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