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브리핑]"차기 대통령은 교육문제 열린마음으로 접근을"-조선

고려대학교는 위기 때마다 한승주(韓昇洲·66) 총장을 선택했다. 그는 2002년 김정배 총장(14대)이 중도사퇴한 이후 8개월 동안 총장 서리를 맡았고, 올해 초 이필상 총장(16대)이 논문표절 의혹사건으로 낙마하자 5년 만에 다시 총장 서리에 임명됐다. 그는 총장 임명 후 한 달 반 만인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입장”이라며 “대학 내부의 불합리를 바로잡고, 대학을 개혁하겠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특별한 시기에 총장직을 맡으셨는데요, 특별히 세우신 목표가 있습니까. “교내에 정치적인 부담이 없는 위치라고 볼 수 있죠. 누구한테 빚을 졌다든지, 누구한테 보답을 해야 된다든지, 그럴 필요 없이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을 하고, (총장 서리를) 최대 1년쯤으로 잡는다면 그렇게 짧은 기간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규적인 총장이 하지 못했던 것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점을 바꿔 나가고 싶으십니까.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대학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개인 간의 분규도 있지만, 학과와 학과 간의 이해관계에다 대학과 대학 간에도 갈등이 많습니다. 제한된 자원과 공간, 인원을 나눠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로섬(zero-sum) 게임을 윈윈(win-win) 게임으로 전환해야 되지 않느냐…. 궁극적으로 제가 잠시라도 있어 봤던 하버드나 스탠퍼드, 컬럼비아 대학처럼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최대한 배울 수 있고, 교수가 가르치고 연구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우수한 교수를 뽑기 위한 여건은 마련돼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교수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고려사항이 더 큰 비중을 가지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는 분위기나 문화의 문제이므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런 얘기가 잘못되면 지금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베스트가 아니라 세컨드 베스트다, 그런 얘기처럼 들리지만, 제 취지는 그런 뜻은 결코 아니고….” ―학생 선발 문제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대학들이 무한경쟁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우려했던, 대학이 많은 자율권을 가졌을 때에 생겨났던 부작용들은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어떤 정책을 없애라, 또는 어떤 정책을 채택하라는 흑백의 문제보다는, 대학에 좀 더 재량을 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대학이 우수하고 우수하지 않은 학생들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정부가 고수하는 3불(不) 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잠시 주저하다가) 소위 3불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를 안하고 싶었는데…. 고교등급제 문제도 대학들이 ‘고등학교 등급제가 있어야 되겠다’라는 입장은 절대로 아닙니다. 고등학교 성적이나 내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정부가 철저히 규제하기보다는 대학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바로 등급제를 선호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책의 불일관성과 모순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미국 대학도 소수자 우대를 하고, 지역 할당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이 결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교육정책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논술을 중요시하라고 하면 대학들은 논술 안에 옳고 그른 답이 있도록 만들어서 그것을 변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정부는 또 그것을 못하게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대학은 그 가이드라인 속에서 또다시 어떻게 그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느냐는 방법을 또 강구하고…. 채점이라는 게 결국 차별화한다는 것 아닙니까? 변별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변별의 방법을 되도록 모호하게 만들면서 변별하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입시정책 또는 입학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면서 학생들에게 더 큰 고통이 됩니다.” ―대학이 좋은 학생을 뽑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뽑기 경쟁하지 말고 가르치기 경쟁을 하라”고 했습니다. “(좀 더 나직한 음성으로) 대학에서 가르쳐 본 사람들은, 좋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좋은 학생들의 풀(pool)이 있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든지, 좋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사회적인 혜택을 덜 받은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또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학생들을 역차별하면서 평준화를 추구하면 무한경쟁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교수 논문 표절과 총장 선거가 맞물려 본질이 흐려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 원인이 총장 선출제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더니) 교수사회에서, 또 학교 구성원 사이에도, 지금 제도는 좀 바꿀 필요가 있다는 합의는 있는 것 같습니다. 표절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지난번 김병준씨 사태 이후 개인적인 갈등을 저술의 윤리성과 연결시킨다든지, 그런 경향이 많이 생겼다는 거죠. 표현은 그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학계나 사회에 그런 게 유행처럼 번지는 건 문제라는 뜻입니다.” ―집권 5년째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참 망설이다) 글쎄요,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요. 모든 대통령이 어떤 것을 잘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고, 또 어떤 것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평가를 받고 그런 점이 있는데, 역시 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고 그런 양면이 다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한미관계를 걱정해 오셨는데요.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1년 이후에 우리의 새 정부와, 이후에 미국에 들어설 새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조심스럽게 낙관하면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이상형을 얘기하기에 앞서, 일단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선택을 해야 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음 대통령의 바람직한 성향이나 덕목이라면, 일단 사물을 실용적으로 봐야 하고, 또 어느 정도 일관성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포용력이 있는 사람, 국민을 통합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통령도 정치인이지만, 어떤 현안에 대해 정책을 만들 때 정치적인 논리로 하게 되면 효율성을 잃게 됩니다. 교육· 경제· 외교정책을 정치적 아젠다나 논리로 풀어가서는 안되고, 엄격한 기능 위주로 또 실리 위주로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교육문제는 과거의 논쟁이나 주장에 얽매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교육 전반에 있어서 발전적이고 장기적인 구상이나 계획, 정책을 세워야죠. 그 과정에서 정부 혼자만 한다든지 또는 어떤 이념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각계각층의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승주 총장 서리는=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유엔사무총장 키프로스 담당 특별대표(1996년) 등 국제정치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장관으로 1차 북핵위기 극복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노무현 정부 초대 주미대사를 지냈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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