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정진봉 팀장

▲ 경희대 '동계취업동아리'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는 호텔관광대학 303호 강의실. 취업진로지원처 정진봉 팀장이 학생들의 과제를 직접 검사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손현경 기자] “숙제 안 한 놈 가방 들고 밖에 나가서 다 손들고 있어!”, “이 추운데 겉옷 벗고 운동장 10바퀴씩 돌래?”, “지각한 사람들 강의실 들어오지 말고 그냥 다 나가. 이런 식이면 관둬!”

방학인데도 50여명이 들어찬 경희대 강의실. 험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강단에 서서 호통을 치는 연사는 교수가 아닌 직원. 그는 바로 경희대 호랑이 선생님으로 알려진 정진봉 취업진로지원처 팀장이다.

정 팀장은 1991년 경희대 중앙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학교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법과대학, 국제교육원, 경영대학, 평화의 전당 등을 거쳐 경희대에서 일한지는 자그마치 22년. 3년 전부터는 취업진로지원처로 부서를 옮겨 취업고민에 빠진 수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스펙 좋은 학생들은 넘쳐나는데 취업률은 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이번 겨울방학부터 직접 학생들의 군기반장으로 나서게 된 이유다.

인터뷰를 하러간 8일에도 정 팀장은 오전 9시부터 취업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 앞에 서서 군기를 잡고 있었다. 마치 수능시험을 100일 앞둔 고3 교실을 연상케 했다.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는 방학기간 재학생들의 취업준비를 돕기 위해 ‘동계취업동아리’ 프로그램을 한 반에 50여명 씩 3반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방학이면 여는 대학에서나 개설되는 취업강의지만 정 팀장이 참여함으로써 강의실 분위기는 한층 더 긴장감이 돌았다.

자율성이 허락된 대학생이라도 이 프로그램을 한 번 신청해 들으면 정 팀장의 지시에 토를 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 팀장은 취업컨설턴트의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강의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군기반장 역할을 한다. 교수도 아닌 직원이 나서서 학생들의 군기를 잡는 강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160여명이 신청해 들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이번과 같은 방중 취업 프로그램에는 100명 모집에 90여명이 참여해 자리가 남았던 반면, ‘정 팀장표 군기 잡는 교육방식’이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 동계취업프로그램 신청자가 몰렸다.

“취업 컨설턴트들이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저는 학생들의 출결 체크와 과제 검사를 직접 해 자세를 바로 잡아요.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 강제성을 띤 교육을 받다가 대학 입학 후 4,5년을 ‘터치’ 없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다보니 자세가 흐트러지고 해이해지는 습관이 들었어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저 나름 조치를 취한 것이에요.”

그래서인지 정 팀장 시간에는 타 대학 강의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콩과 쌀을 강의실에 갖고 와 젓가락으로 옮기는 식의 자세 잡기 교육이 수업 전에 진행되는 것이다.

그는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젓가락질도 못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험난한 취업난을 뚫을 수 있겠나. 쉬운 것,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 취업난을 극복하자는 취지다”라며 ‘젓가락으로 콩 짚기’의 숨은 의도를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의마다 숙제도 직접 정 팀장이 낸다. 그는 학생들에게 새벽 인력시장, 문래동 등의 소규모 공장을 다녀와 인증 샷을 찍는 것 등 체험위주의 과제를 준다. 정 팀장은 “학생들이 3D업종 같은 힘든 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사회가 얼마나 치열한지,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런 숙제들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 팀장이 처음부터 이렇게 군기를 잡는 방식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직원인 그가 직접 나서서 본격적으로 군기를 잡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번 겨울방학부터다. 그는 "경희대면 나름 명문사학으로 모범생들이 입학한 곳이다. 하지만 대학 네임벨류에 비해 취업률이 55%를 맴돌며 3년째 정체중이라 특단의 조취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무엇부터 고쳐야 할까 고민하다 취업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인 학생들의 기본자세부터 고쳐보자”라고 마음먹었다고.

그러면서 그는 “취업성공의 변수는 수만 가지이다. 하지만 이를 추려 취업을 100으로 봤을 때 어학점수, 학점, 자격증, 봉사활동 등의 객관적 스펙은 49%를 넘지 않는다. 관건은 본인이 살아온 과정과 습관으로 인해 나타나는 태도, 마음가짐과 자세가 51%로 취업 성공을 좌우 한다”고 분석했다.

정신교육을 강조한 ‘군기반장’ 정 팀장의 교육방식을 동료 직원이나 학생들이 처음부터 편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정 팀장은 “내 교육방식이 모든 사람이 ‘오케이’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3년 동안 다양한 방식을 취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학생들의 기본자세를 바로 잡아야 취업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체험하고 동료직원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그 부분에 대해 속임이 없고 확신이 있어 자신하고 밀어 붙였다”고 말했다.

정 팀장을 3년째 옆에서 지켜본 같은 부서의 이희성 씨는 “정 팀장이 수업 전 학생들의 군기를 잡고 나서부터 학생들의 눈빛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취업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이 적극적이 되고 절실함이 느껴지게 됐다”며 “취업진로지원처 직원들도 정 팀장의 교육열의에 학생들 못지않게 바짝 군기가 들었다. 아직 취업률이 눈에 띄게 오르진 않았지만, 올해 취업률이 상승할 것이라며 기대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20대 중반인 대학생들을 초등학생 혼내듯이 벌을 주고, 성인인 그들에게 어찌 보면 모욕적일 수 있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군기반장을 학생들은 의외로 불만 없이 따랐다. 강의실에 있던 4학년 한 학생은 “취업도 안 되고 게을러져 있는데, 정 팀장님을 만났다. 처음에는 교수도 아닌 그가 학생들의 군기를 심하게 잡아 놀랐다. 하지만 진심으로 우리가 잘되기 위해 호통을 치시는 것을 느끼고 스타일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경제학과 학생 역시 "팀장님의 독설 때문에 나쁜 감정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지각이나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내는 것은 면접, 나아가서 사회생활을 할 때 시간약속이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한 같은 반 친구들 역시 다들 애증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팀장은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무색해 지듯 쑥스러운 미소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의 이같은 반응에 “학생들 스스로가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는 가장 고맙다”며 “대한민국의 자식하나가 우리 취업프로그램을 통해 올바로 설수 있는 직장인이 되면 그 자체가 고마운 것 아닌가. 이들이 취업이 잘돼 한 인격체로서 떳떳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의미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