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이후 시간강사 ‘대학의 유령’ 으로 전락

지난해 강사법 나왔지만 ‘꼼수’ 지적에 1년 유예
강사·대학·국회도 "대체입법 서두르자" 한 목소리

 

2013년 연초부터 시간강사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년 유예된 강사법(고등교육법일부법률개정안) 재개정 투쟁은 물론 당장의 생활임금 보장을 위해 곳곳에서 농성과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재정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도 "대학 교육의 절반을 담당하는 강사문제가 해결돼야 대학교육이 정상화된다"며 “강사법 재개정으로 근본부터 해결해야 한다” 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동투’로 새해 문 연 시간강사들 = 11일 대학가에 따르면, 올해 초 영남대·조선대,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 한국비정규교수노조 5개 분회 400여명의 시간강사가 성적입력을 거부하는 파업을 벌였다. 여러 대학 동시 파업은 노조 설립이후 처음이었다. 이중 영남대, 조선대, 부산대는 임금협상이 타결됐지만 나머지 대학은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임금인상을 비롯해 연구강의환경 개선, 구조조정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시간강사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강의료는 시간당 7만원인 반면 이들 대학의 시간당 강의료는 5만 2000원~6만 5500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부산대는 전업강사의 강의료를 시간당 7만3000원으로 인상키로 합의했으나, 경북대(7만8500원 요구), 전남대(6만7000원 요구) 등의 대학이 재정난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서울에서도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간강사들의 농성이 해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 전국대학강사노조는 2007년부터 국회 앞에서, 2011년부터 고려대분회가 안암캠퍼스 본관 앞에서 텐트농성을 벌이고 있다. 고려대의 시간당 강의료는 5만 2900원. 10년간 한 번도 오르지 않다가 2011년 1500원 올랐다. 노조는 대학과 수차례 교섭에 나섰으나 번번이 결렬됐다.

심지어 최근 대학은 임금인상 대신 김영곤 고려대 분회장에게 ‘해고’ 통보를 내렸다. 김 분회장은 “지난 9년간 고대에서 강의를 해왔는데, 총장이 2013년 1학기에는 박사가 아닌 강사에게는 강의를 배정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면서 갑자기 강의를 못하게 됐다”며 “대학졸업자라도 연구실적연수 2년, 교육경력연수 1년이면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다는 고등교육법이 있는데, 총장 말 한마디에 잘리는 강사는 파리목숨”이라고 했다.

고려대는 현재 강사노조에 본관 앞 천막을 철거하라며 농성중지가처분신청까지 제기한 상태다. 농성을 계속하면 1일 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김 분회장은 “지난 10일 서울지법으로부터 채권자가 김재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으로 된 농성중지가처분 심문기일 통지서를 받았다”며 “300일 넘게 농성을 했기 때문에 손해배상금만 2억이 넘는다. 다른 사립대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고, 연구·교육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한 것이 그렇게 문제냐”고 호소했다.

 

■ 교원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유령’ = 이처럼 전국에서 시간강사들이 파업, 농성을 하고 있는 이유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생활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는 10만 3099명. 이들의 평균연봉은 1186만원(9시간 기준). 시간강사들이 평균 4.2시간을 강의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 연봉은 600여만원에 불과하다.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학생들에게는 ‘교수’로 부리지만 실제로는 전임교원 평균연봉 8000만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연구환경도 열악하다. 2010년 박보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공립대 시간강사들의 연구실은 62.4명당 1개꼴에 불과하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강의하는 한 시간강사는 "주차장에서 강의준비를 할 때도 많다"며 "학생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강사가 정작 비정규직의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처지라니 비참하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고용불안이다. 학기당 계약으로 언제 해고될지 모르기 때문에 열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기조차 힘들다. 계약서조차 제대로 체결한 곳이 없다. 고등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이지만 고학력 노동자라는 이유로 비정규직보호법에서도 제외됐다. 법에서조차 시간강사는 ‘유령’인 셈이다.

■ 1977년 “교원에서 강사 제외” 원인 = 이러한 시간강사 문제는 1977년 강사를 교원의 범위에서 제외하면서 발생했다. 우리나라 교육법이 처음 만들어졌던 1949년에는 대학교원의 범주를 '교수, 부교수, 조교수, 강사'로 구분하고 똑같이 교원지위를 부여했다. 이 때도 전임·비전임강사가 있었으나 큰 차이없이 '강사'로 통칭했다.

그러다 1962년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서 ‘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전임과 비전임강사를 구분짓고 1977년 들어서는 교육법을 고쳐 제75조의 강사를 ‘전임강사’로 한정했다. 여러 대학에 시간강의를 나가는 비전임강사들은 아예 교원의 범주에서 빼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교원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바뀌었다.

비정규교수노조 임순광 위원장은 “해방 직후만 해도 교원이었던 시간강사들은 비판적 지식인을 배척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법적 교원 지위를 박탈당했고, 그 이후 강의할 의무만 있을 뿐 쉴 곳도, 연구할 곳도, 먹고 살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대학의 유령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시급제 개념도 1962년 생겨났다. 당시 제정된 ‘국·공립대학 및 전문대학강사료 지급규정’에 따라 시간강사에게는 강의료를 시간당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시급을 받는 시간강사는 1980년대 들어서 대폭 늘었다. 정부가 학생정원을 30%늘렸지만 전임교원 정원은 교육법 제정 초기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 부족분을 대학은 시간강사로 채웠다. 특히 교육당국이 겸임·초빙 교수 3명을 쓰면 교수 1명으로 인정하는 내규를 만들면서 지금의 편법적 강사체제가 굳혀졌다. 대학은 돈은 더 적게 주면서도 대학의 편의에 맞춰 활용할 수 있는 강사채용을 계속 늘려갔다.

■ 강사들의 잇따른 자살…강사법 만들어졌지만 = 6개월 비정규직의 고된 처우 속에서 1998년 이후 8명의 시간강사가 자살을 하는 등 시간강사 문제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학 시간강사들의 교원 지위 인정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네 차례 발의됐지만 국회논의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다 2010년 서정민 조선대 강사가 교수임용비리, 논문대필 등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이 강사법의 계기가 됐다. 2010년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는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안을 발표했고, 정부는 이를 토대로 ‘고등교육법일부법률개정안’, 일명 ‘강사법’을 발의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30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강사법은 시간강사의 명칭을 다시 강사로 바꾸고, 교원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강사의 계약기간은 1년으로 늘어나며 재임용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마구잡이식 해고를 막도록 했다. 국립대의 경우 강사료를 2013년까지 시간당 8만원으로 인상하고, 4대보험에도 가입하도록 했다. 또한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되는 교원확보율에서 기존에는 겸임·초빙만 포함시켜주던 것을 전업강사까지 확대, 20%까지 반영할 수 있게 했다.

■ ‘무늬만 교원’ 강사도 대학도 반대 = 하지만 이 법에 대한 현장의 반대는 극심했다. 지난 4월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시간강사 3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91.2%가 강사법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양후열 전국교무처장협의회장은 “대학 교직원 90%이상도 이 법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우선 강사의 교원지위를 준다면서도 사립학교법, 사립학교연금법, 교육공무원법에서는 강사를 제외시켜 ‘무늬만 교원’인 법이라고 지적했다.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강사만 교원확보율에 20%까지 반영, 비전업강사의 대량해고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임교원 대신 대학들이 강사채용을 늘리도록 해 오히려 비정규직을 고착화 시킨다고 비판했다.

대학들은 다른 이유로 반대했다. 한 사립대 교직원은 “등록금은 내리라면서 강사료는 올려주고 4대 보험도 적용해주라고 하니 대학에선 재정부담이 크다”며 “대학에선 어쩔 수 없이 기존의 강사를 해고하거나 겸임·초빙으로 바꿔 채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양후열 전국대학교무처장협의회장도 “대학은 1년 계약에 따른 강사임용의 경직성 때문에 강사 대신 법에서 자유로운 겸임·초빙교수 제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강사법이 나오면서 현장에선 강사채용에 부담을 느낀 대학들이 학과 통폐합, 졸업이수학점 축소, 소규모 강의 축소, 최대 수강인원 확대, 전임교원 담당 시수 증가 등의 교수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영남대는 올해부터 ‘교책객원교수’(9학점 이상 강의하는 계약직 교수)를 대거 늘려나가고 있다. 전임교원 강의전담률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조선대 등은 전임교수 책임강의시간을 9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렸다.

결국 논란 끝에 강사법은 지난해 11월 22일 가까스로 1년 유예됐다. 하지만 1년 안에 대체법안을 통과시키지 못 하면 강사법은 2014년 1월 1일에 시행된다. 교과부 대학선진화과 안상훈 사무관은 “국회의 논의과정을 살펴봐야겠지만,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강사법은 내년 1월 1일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강사·대학·국회 대체법안 마련 고심 = 이미 시간강사들은 대체법안을 국회에 제안한 상태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정부가 예산을 확보해 비정규교수의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의 '연구강의교수제’를 도입하고 법정 전임교원을 100%확충하는 내용의 대책안을 내놨다.

법대로 법정 정규교수를 100% 충원하면 시간강사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인데, 과도기적인 조치로 OECD 평균 교수 1인당 학생 수(15.5명)에 도달할 정도로 전임교원을 충원하기 전까지 ‘연구강의교수제’를 한시적 보완책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연구강의교수제는 시간강사, 초빙교수, 겸임교수, 교육전담교수, 산학협력교수, 연구교수, 기금교수, 객원교수 등의 모든 비정규교수제도를 통합해 주당 9시간 이내로 강의하는 사람에게 생활임금과 교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각종 비전임교원제도 폐지와 연구강의교수 통합 △고등교육재정교부금제도 도입으로 연구강의교수 인건비 지원 △ 최대강의시수 상한제 도입 △최저 연봉제 적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국대학강사노조도 대책안을 내놨다. 다만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아닌 강사에게 온전한 교원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강사법에서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연금법에서 강사를 제외하는 단서규정 삭제 △법정 전임교원 100% 확충 △강사법 14조 2의 1항(강사는 학칙 또는 학교법인의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계약으로 임용한다)삭제 등의 내용이 담긴 재개정안을 유기홍 의원실에 전달했다.

양 노조의 입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법정 교수(교원 1인당 학생 수) 100%확충으로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정규교수노조 임순광 위원장은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명시된 계열별 법정 교원 확보 기준만 지켜도 지금의 전업시간강사 수(약 4만 명)보다 더 많은 전임교원(7만 명 이상)을 뽑아야 하기에 문제가 대부분 해결된다”고 말했다. 

■ 전임교원 확충으로 근본적 문제 해결해야 = 전임교원 확충안은 대학도 동의하고 있다. 양후열 전국교무처장협의회장은 “기존의 법은 교원확보율에 강사를 포함하도록 해 강사채용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 전임교원을 늘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며 “국립대의 경우 지금도 교수정원을 법정 전임교원의 70~80%정도만 배정하는 데 교수 정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며 “올해 100여명 정도 늘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것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교무처장협의회는 강사법 대안을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연구 과제를 맡긴 상태다. 과제 수행 결과가 나오면 대학가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국회와 교과부에 의견을 제시할 방침이다.

대체입법은 유기홍 민주당 의원실에서 주도하고 있다. 유기홍 의원실측은 “현재 대체법안 마련을 위해 비정규교수노조와 강사노조의 제안을 받아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에 법률검토 요청을 한 상태”라며 “법안이 만들어 지면, 1년 안에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개별의원보다는 법안심사소위 내에 시간강사소위원회를 한시적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교과위 공통안을 만들어 발의할 생각이다. 2월 중 토론회 등을 통해 각 노조와 전문가들 의견을 듣고, 늦어도 4월 국회에는 법안을 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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