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끼는’ 대학들 수업일수↓ 전임교원 수업시수↑

지위 높아진 강사 대신 저비용 고효율 '강의전담' 늘어
강좌 선택권 줄고 학문 다양성 파괴…"피해는 학생들 몫"

[한국대학신문 대학팀] 강사법과 등록금 인하 등의 불똥이 '비정규교수'사회 전반으로 튀고 있다. 재정압박을 느낀 대학들이 비정규교수들의 강좌부터 속속 없애고 있는 것이다. 강사법 시행은 1년이 유예됐지만 대학들은 내년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수업일수 축소-폐강기준 완화-전임교원 책임시수 증가-강좌 수 감소-비정규교수 해고’로 이어지는 물밑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권침해는 물론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학생 수는 그대로인데 강좌와 교수 숫자만 줄면서 학문 다양성 파괴 등 교육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 “인건비 줄이자” 비정규교수 줄이고 또 줄이고 = 대학에는 크게 전임교원이라 불리는 '정규직 교수'와 비전임교원이라 불리는 '비정규직 교수'가 있다. 시간강사를 포함해 겸임, 초빙, 연구, 객원, 교책객원, 대우교수 등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 모두 ‘비정규교수’다. 전국 대학가에 10만여 명. 시급제와 연봉제의 차이는 있지만 신분이 불안하다는 점은 같다.

대학알리미(2012년 기준)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학들이 지난해 이 같은 비정규교수의 숫자를 대폭 줄였다. 특히 서울 주요대학 사이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건국대는 전임교원을 18명 늘린데 비해 비전임교원을 150명이나 줄였고, 고려대는 전임교원 3명 늘리면서 비전임교원 39명을 감원했다. 성균관대도 전임교원 51명을 늘린 대신 비전임교원을 213명 감축했다. 중앙대도 전임교원을 37명 뽑은데 반해 비전임교원을 130명이나 줄였다. 지방대도 마찬가지다. 배재대의 경우에는 전임교원을 2명 늘린데 비해 비전임교원을 96명이나 줄였다.<아래 표 참조>

이 같은 현상은 연이은 등록금 동결로 재정압박을 느낀 대학들이 수업일수와 졸업이수학점을 줄이는 등 비용절감에 나선 탓으로 분석된다. 수업이 줄어들면서 강의를 담당하던 비정규교수 숫자도 자연히 줄어든 것이다.

한양대를 비롯해 가천대, 광운대, 조선대, 목원대 등 대부분의 대학들이 한 학기 수업일수를 16주에서 15주로 줄였다. 졸업이수학점도 동의대가 140학점에서 130학점으로 줄였고, 가천대도 일부학과를 제외하고 130학점에서 120학점으로 줄인데다 올해 폐강기준을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할 방침을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강사법으로 인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통과된 강사법은 대학과 강사들의 반대로 1년 유예됐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대학들은 내년 1월 1일 시행을 가정하고 △공개채용 △재임용 기회 제공 △4대 보험 보장 등 채용요건이 까다로워지는 강사를 미리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졸업이수학점과 수업일수를 줄인 대학들의 다음 선택은 전임교원의 책임시수를 늘리는 일이다. 법정 전임교원 책임시수는 9시간이지만 12시간에서 많게는 15시간까지 초과강의를 맡기는 것이다. 초과강의료가 비정규교수 강의료보다 낮기 때문에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이런 여파로 안동대에서는 중어중문과에서만 올해 6명의 강사가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안동대 관계자는 "중문과는 지난해 연구년이었던 전임교수가 올해 복귀하는 데다 지난해 공자학원을 개원하면서 그곳의 중국인 초빙교원이 중문과 수업을 맡기도 한다. 이런 복합적 사정이 얽힌 것이지 일부러 시간강사를 해고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교수 책임시수도 9시간이다. 다만 강사료 절감과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중문과뿐만 아니라 모든 학과의 교수들에게 수업을 좀 더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가천대도 올해 신문방송학과에서만 11명의 비정규교수 중 8명을 아무런 통보 없이 해고했다. 가천대 관계자는 “이번학기 비정규교수를 줄인 것은 맞다”면서도 “교양강의가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전임교원을 늘린 탓도 있다”고 설명했다.

목원대도 올해 전임교원 강의시간을 9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렸다. 목원대 관계자는 “책임시수는 9시간이지만 12시간까지 해달라고 ‘권고’를 했다. 강제는 아니다. 강사 인건비만 한 해 40억인데다 올해 5000원 임금인상으로 6억 원이 추가됐다. 등록금도 못 올리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털어놨다.

책임시수를 늘리지 않더라도 전임교원의 초과강의를 업적평과와 연계하면서 추가 강의를 유도하고 있다. 경북대 한 강사는 “전임교원 책임시수를 늘리지 않았지만 초과강의 인센티브 점수가 높아졌고, 연구에서 점수가 모자라면 초과강의로 메울 수 있게 해 놨다”며 “특히 국립대가 성과급적 연봉제로 바뀌면서 이 방법을 용이하게 쓰고 있다”고 말했다.

계명대 한 교수도 “전임교원의 초과강의료가 강사비 보다 낮으니까 교수들에게 강의를 더 맡으라고 유도한다. 학과 평가할 때도 전임교수 강의분담율을 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초과강의 유도할 수 있다”고 일렀다. 이들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경북대 시간강사는 “최근에 시간강사들을 만나보면 15~20시간 하던 분들이 7~8시간으로 반 토막 났다고들 한다. 특히 사립대에서 그렇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 “강사법 어떻게 대처할까” 대학들 ‘시뮬레이션’ = 이러한 강사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교과부가 내놓은 강사의 ‘교원확보율 반영’도 특효약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촉이 자유로우면서 교원확보율에 반영되는 ‘겸임·초빙교수’로 바꿔 채용하거나, 전임교원에 포함되면서도 연봉은 그의 절반인 ‘강의전담교수’를 뽑겠다는 게 대학들의 입장이다. 이 둘을 놓고 대학들은 손익계산에 들어갔다.

서울 H대 관계자는 “2014년도부터 시간강사법이 적용되면 강사 지위도 많이 높아지고 계약조건도 까다로워져서 겸임·초빙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 기존의 강사들에게는 겸임이나 초빙으로 지원해달라고 권했다”며 “강의전담교수 역시 강사 몇 분을 대체하면서 전임교원확보율도 높일 수 있어 신규채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의전담교수는 비정년트렉 전임교원이다. 전임교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뜻이다. 정년트렉은 '재임용 심사-승진-정년보장'이 가능하지만 비정년트렉은 계약기간이 1~2년으로 재임용 심사를 거쳐 최대 6년까지만 재임용이 가능하다. 승진도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 같은 비정년트렉 전임교원은 강의를 12~15시간까지 맡으면서 연봉은 정년트렉 전임교원의 40%가량을 받는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임순광 위원장은 “강의전담교수는 무늬만 전임교원이지, 연봉은 2~3000만원에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입장에선 인건비를 줄이면서 전임교원확보율도 높일 수 있어 '1석 2조'다. 이러한 ‘전담교수’들은 2011년 6월 29일 고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대거 생겨났다. 고등교육법상 교원의 임무가 ‘교육·연구·학생지도’를 총괄하던 것에서 교육, 연구, 산학협력 각각을 전담하는 교원까지로 확대되면서 대학들은 ‘합법’적이고 손쉽게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됐던 국민대는 대학평가 핵심지표 가운데 하나인 전임교원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학기 전임교원을 130명 신규 채용했는데, 이중 70명을 1년 계약의 강의전담교수로 뽑았다. 중앙대와 성균관대도 기존의 시간강사 대신 앞으로 강의전담교수를 채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가천대도 올해 전임교원 중 60%를 강의전담과 산학협력중점 교수 등 비정년트렉 전임교원으로 채웠다.

이 같은 흐름은 지방대도 마찬가지다. 대전대의 한 교수는 “교수 충원 자체가 요즘은 예전 전임강사 뽑던 것을 잘 안하고, 산학협력중점 교수 등 비정년트렉 교수들 막 뽑는다. 연봉 2400만 원 정도 되는 강의전담교수에게 4강좌씩 맡긴다. 교수 충원율도 높이고 여차하면 자를 수 있으니 고용 위험부담이 없다. 교양학부 3명당 연구실 한 곳을 제공하기 때문에 공간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 "학문 다양성 파괴"우려…피해는 학생 몫 = 이처럼 강사법 시행에 따른 후폭풍은 이미 현장에서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교수 해고대란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총체적 교육부실’ 우려다.

계명대 교수는 “물론 전임교원이 강의를 맡으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교수 한명 담당하는 학생 수가 많아지니 강의부실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며 “과목마다 전문성이 있는데, 전임이 많은 과목을 맡게 되면 강사보다 전문성 떨어질 수 있다. 특히 대학원 강의는 타 기관의 젊은 전문가들이 맡는 게 교육효과가 더 높다”고 전했다. 지방 사립대의 다른 교수도 “지방대 교수는 강의와 연구, 취업은 물론 고교 입시홍보까지 나간다. 초과 강의하면서 학생들을 면밀히 살피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또한 폐강기준이 높아지다 보니 다양했던 교양강좌들이 사라지고 전임교원이 추가로 맡을 수 있는 강좌만 살아남는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강의 선택 폭도 줄어든다. 임순광 위원장은 “인기강좌는 일찍 다 차서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수강인원이 빈 곳에 들어가야 한다. 최근에는 수강신청 후 여분이 있는 강좌를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곳도 있다. 이는 선택권 제한이다”며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학문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 준비자들에게는 시간강사로의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졌다. 한양대 이형규 교수(법학과)는 “신규 박사학위자들도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며 “강사법은 성장가능성 있는 교수 예비후보자들의 진출을 막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강사법의 재개정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동의대 박순준 교수협의회장은 “강사법은 대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걸 교수들이 잘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1년 유예됐다고 기다릴 게 아니라 그 안에 대책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대 김정식 교무처장은 “강사가 622명인데, 강사료가 연간 60억 원 된다. 게다가 올해 9.6% 인상했다. 5~6억 원 추가 재정이 소요됐다. 상당한 재정 부담이 된다”며 “국립대는 재정의 70% 를 정부가 지원한다. 국립대 수준은 아니더라도 정부에서 사립대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강사해고를 재정난과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대학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전국대학강사노조 김영곤 위원장은 “대학들이 지금까지 수천억원씩 적림금 쌓아오다가 최근 몇년 등록금 동결했다고 재정난을 이유로 강사 줄이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며 “전임교원 확충, 강사처우개선 등은 정부지원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사법 재개정과 함께 대학의 자구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2011~2012년 전임/비전임교원 증감세 : 출처 대학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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