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교수도 ‘빈익빈 부익부’ … 더 좋은 연구·교육 환경 찾아 떠나

“지방대는 교수 양성소” 한탄에 “경쟁력 확보 어쩌나” 우려도
전문가들 “새 정부 ‘지방대 육성’ 공약 제대로 실현돼야” 강조

[한국대학신문 민현희·이현진·이재 기자] 지방 사립대인 K대 보직교수는 지난해 대학 특성화의 일환으로 신규 사업을 준비하던 중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업을 총괄 운영하기로 했던 젊은 교수가 사업 시작 직전 갑작스럽게 서울 소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 보직교수는 “해당 교수를 염두하고 준비해온 사업이었는데 망연자실했다. 그렇지만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후배 교수를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며 “실력 있는 젊은 교수들은 3~10년 경력을 쌓은 뒤 수도권 대학으로 떠나는 게 보통”이라고 씁쓸해했다.

지방대들이 우수 교수의 잇따른 수도권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생 모집난, 재정난에 교수 유출까지 더해져 대학 경쟁력 확보에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특히 수도권행(行)을 택하는 교수 중에는 연구·교육역량이 월등한 경우가 많아 대학이 입는 타격이 더욱 크다.

전문가들은 “우수 교수 유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학생”이라며 “새 정부의 ‘지방대 육성’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핵심 공약이 제대로 실현돼 대학의 위치나 규모에 상관없이 교수들이 마음껏 역량을 키우고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방대 ‘일방적’ 교수 유출 = 지방대 교수들의 수도권 대학 유출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교수 유출도 더욱 빈번해지고 있는 추세다.

1일 각 대학들에 따르면 수도권 I대는 지난해 신규 채용된 34명의 교수 중 8명을 타 대학 교수로 충원했다. 특히 이들 8명 가운데 상당수는 지방대 중에서도 상황이 좀 더 낫다고 여겨지는 지역 거점 국립대, 충청권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음에도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울 H대는 86명의 신규 임용 교수 중 절반인 43명, 수도권 A대는 24명의 신규 임용 교수 중 3분의 1인 8명을 지방대를 포함한 타 대학 교수로 충원했다.

반면 지방대의 신규 채용 교수 중에는 타 대학 교수 자체가 흔치 않다. 그나마도 다른 지방대에서 옮겨온 교수만 있을 뿐 수도권 대학에서 옮겨온 교수는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하기 어렵다. 지방대 교수들이 수도권 대학으로 ‘일방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뿐 양쪽 교수들이 오고 가는 ‘순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호남 J대의 경우 지난해 신규 임용한 37명의 교수 중 단 2명만이 타 대학 교수였고 나머지는 연구원이나 특정 분야 전문가였다. 인근지역 K대의 경우에도 지난해 신규 임용한 28명의 교수 중 3명만이 타 대학 교수였다. J대와 K대에 채용된 타 대학 교수는 모두 지방대에 재직하다 자리를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J대 관계자는 “지방대보다는 수도권 대학, 전문대학보다는 4년제 대학을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학벌주의 사회 풍토 속에서 지방대로 오려는 수도권 대학 교수가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냐”며 “지방대의 암울한 현실까지 더해져 수도권 대학으로 빠져 나가는 교수들만 계속해서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 “더 좋은 환경 찾아, 모교 찾아” = 지방대 교수들의 수도권 유출 증가는 고사(枯死) 직전에 내몰린 지방대들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수들로서는 지방대에 비해 연구·교육 여건이 좋고 학생 충원, 취업률 등 ‘생존’을 위한 일에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수도권 대학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지방대에서 서울 S대로 옮겨온 김모 교수는 “지방대에 있을 때 보직을 맡지 않았음에도 신입생 충원, 학생 취업 등에 신경 쓰느라 교육·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내가 대체 왜 교수가 됐을까’라는 회의감까지 들었다”며 “S대로 온 뒤에는 연구와 교육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방대에 있는 젊은 교수들은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겨가고 싶어 하고 교수 공채에도 관심이 많다”며 “수도권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만들고자 지방대에 온 교수들도 있지만 지방대에 재직하면서 회의감을 느끼고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직하는 교수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지방대에서 서울 H대로 온 류모 교수는 “평소 학문 후속세대 양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지방대 대학원은 박사과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박사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학생들과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 대학의 연구 지원이 전폭적이라는 점 등이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긴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모교’를 찾아 지방대를 떠나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지방대에 재직하다 지난 2005년 모교인 서울 K대로 옮겨온 김모 교수는 “상당수의 교수들이 ‘기회가 되면 모교 후배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지방대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모교에 온 뒤 학생 지도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진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 “우리 대학이 교수 양성소냐” = 지방대들은 이처럼 좀 더 나은 연구·교육 환경을 찾아 떠나는 교수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속상한 기색은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실력이 출중한 젊은 교수들의 수도권 유출이 잇따르자 “우리 대학이 교수 양성소냐”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 J대 관계자는 “대학에 정착해 학생 지도에 열을 올리고 보직도 맡으면서 대학 발전을 도와야 할 5~10년차 교수들의 수도권 유출이 심각하다”며 “역량은 우리 대학에서 키우고 일은 다른 대학 가서 하는 꼴이다. 대학이 입는 피해가 막대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교수가 나가면 새 교수를 충원해야 하는데 떠난 교수보다 좋은 교수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다”며 “조금 부족한 교수를 뽑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키워놓으면 또 다시 수도권 대학으로 빠져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방대의 경쟁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지방대 총장은 “교수 공채 시 우수한 지원자가 있으면 ‘채용해도 몇 년 뒤에는 다른 대학으로 가지 않을까’라는 의심부터 들고 학내에 뛰어난 교수가 타 대학으로 옮겨가지는 않을까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며 “우수 학생, 대학 재정에 이어 우수 교수에 있어서도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서울 소재 중하위권 대학들까지 우수 교수 유출로 속병을 앓고 있다. 서울 S대 관계자는 “물론 지방대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연구력이 우수한 교수들이 상위권 대학들로 옮겨 가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각종 평가에서 교수 연구 실적이 핵심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만큼 교수 유출로 인한 타격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 “지방대 육성하고 균형 발전 이뤄야” = 우수 교수의 유출은 대학 경쟁력 약화를 부르고 이는 결국 지역·국가 경쟁력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별 대학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다. 전문가, 대학 관계자들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역 균형발전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현재처럼 지방대 교수들의 수도권 대학 유출이 빈번할 경우 대학과 학문의 안정성이 흔들리게 된다”며 “대학이 소재한 지역이나 규모를 떠나 교수가 활발히 연구·교육하고 학문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사회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포스텍 한 교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을 자랑하는 포스텍도 유능한 교수들의 수도권 유출은 큰 고민거리”라며 “그러므로 지방대 교수 유출은 대학의 개별적 역량이 아닌 지역 소재 대학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대 교수들의 유출을 막으려면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 최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수도권행을 택하는 교수도 많기 때문”이라며 “새 정부의 ‘지방대 육성’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핵심 공약이 반드시 실현되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대학들은 이 같은 정부 정책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교수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기조 경남대 교수는 “우수한 교수들이 더 좋은 여건으로 옮겨가는 것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야 썩지 않는 것처럼 필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앞으로는 수도권 대학의 우수 교수가 지방대로 옮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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