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

▲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젊은이들에게 70%에 만족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100% 채우려고 하다보면 불행해지기 마련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좋은 마음가짐으로 살다보면 30%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채워지니까요. 더불어 사는 삶을 살 수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평생에 걸쳐 나눔의 행복을 실천한 사람이 있다. 최초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인 경희대 혜정박물관 설립자 김혜정 박물관장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 2월 15일 역사적 가치가 높은 세계 고지도 2158점을 경기도에 기증했다. 30여 년에 걸쳐 모은 귀중한 자료들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사료를 가장 훌륭하게 사용하는 법’이라는 그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지식을 익히고 스스로를 연마해야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경기도에 자료를 내드린 것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결정했죠. 대학 자료는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보기 어려우니까요. 이제 일반인들은 물론 경기도와 경희대가 서로의 고지도 자료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됐어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70%에 만족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김 관장이지만 지도에 있어서만큼은 200%의 욕심을 지니고 있다.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난 그는 사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역사적 사료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17세기 프랑스 고지도를 보고 지도 속 ‘영원의 세계’에 푹 빠졌다.

그는 “지도는 처음에는 ‘보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지도 속 다양한 역사·문화적 사실을 ‘읽는 것’이 됐다”며 “그렇게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자료수집가로서의 안목을 갖추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20대 중반 사업을 시작하며 모은 자산으로 꾸준히 고지도를 수집하는 한편 제주도와 몽골에서 25년 넘게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혜정원을 설립·운영해오기도 했다. 김 관장은 그가 실천해온 나눔과 봉사에 대해 ‘투척’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가를 바라는 ‘투자’와는 다른 개념이에요.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을 투척하다보니 10~20년이 지난 뒤에 큰 기쁨으로 돌아오더군요. 작은 여자의 몸으로, 순수한 의지 하나에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마치 마약과도 같은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 관장은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당부했다. “이제는 문화가 경제를 견인해가는 시대입니다. 전시와 미술, 공연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문화강국’의 면모를 갖춰가야 합니다"

대학박물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학박물관이 문화의 보고(寶庫)거든요. 진짜 문화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박물관을 ‘돈 먹는 하마’ 정도로 치부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대학박물관 상황이 전반적으로 열악해요. 국가와 대학이 나서서 박물관학과를 만들고 세계적 수준의 학예원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대학 박물관의 국내외 특별전시회 개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하고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문화가 국가경제를 이끌어가듯 대학 박물관도 대학에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는 존재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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