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호 본지 논설위원·덕성여대 독문과 교수

일본이 얼마 전 정부 고위관료가 참가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가졌다. 우리와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역시 센카쿠 혹은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해양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바야흐로 동북아시아는 패권주의를 향해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신사참배는 일본의 고유한 전통문화라는 그들의 주장과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합사한 곳에 참배한다는 것은 침략전쟁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증거라는 주변국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동북아의 이런 시각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단순히 일본의 역사왜곡이 문제라거나 중국 역시 마찬가지라는 식의 설명은 피상적이며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 동북아 평화의 전제로 동북아 역사의식의 향방에 주목해보자. 일본의 과거청산 문제가 등장하면 늘 반대 예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도 과거청산 내지 과거극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독일의 과거청산은 자기 부정과 긍정이 상보적으로 통합되는 연장선상의 과정으로 보인다. 과감하게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이로 인해 얻게 될 자기 긍정의 힘을 믿기 때문이고, 자기 역사에 대한 긍정은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일본은 자기 긍정과 부정을 상호 대립하며 배척하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역사의식의 차이는 근대화의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역사의식은 근대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독일 근대시민사회는 서구 계몽주의와 함께 발생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가 사페레 아우데!라는 구호로 정의하고 있듯이, 어떤 후견인도 두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용기를 지니는 것이다. 서구 근대화는 후견인을 잃었지만 대신 자신을 얻었다. 자신 주도의 행위에서는 성공과 실패는 항상 서로 연결된다. 그들의 근대 계몽주의의 이념이 서구 제국주의의 도구로 변질했던 것은 역사의 실패 경험이요, 진정한 역사의식으로 성숙하는 것은 역사의 성공 가능성이다. 그래서 자기 긍정과 부정은 항상 연관되어 있고, 두 가지 길의 상보성은 여전히 그들 근대화의 이념에 담겨있다.

하지만 근대 제국주의 일본의 근대화란 거꾸로 강력한 천황이라는 후견인을 두는 과정이었으며,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에게 신격화된 왕은 그들 생각과 행동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현재의 일부 일본인들에게는 (일왕이 아니라면) 조상이나 전통문화라는 미명으로 위장한 민족과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그들의 후견인이다. 민족과 국가의 이념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는 그것이 개인과 집단의 사고와 행동에 후견인 역할을 할 때이다. 중국의 근대화에서는 후견인의 자리에 중화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더해진다. 그렇다면 동북공정은 중국식 근대화의 당연한 결과다.

패전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후견인을 두었던 일본에게 패전이란 후견인의 정당성에 도전하는 자기 부정의 상태일 뿐, 자기 긍정을 위한 전제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 느낀다.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시도된다면 그것은 일본이 후견인을 둔 역사의식에 그대로 머물러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사회는 어떤 근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우리의 역사의식에도 후견인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떠한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치 않지만 미래 우리의 행위에서 추인될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 역사의식의 향방은 지역적 합의를 담보한 미래진행형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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