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본지 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는 예전부터‘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관용을 베풀더니‘글’도둑질에도 여전히 관대한 편이다.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어김없이 표절이 등장하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그저 눈감아 주기도 한다. 어느 후보는‘쉬는 김에 박사나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논문을 썼다며 박사학위취득을 심심풀이로 여기는 경박스러움도 드러냈다. 그는 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표절의혹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공직후보자의 탈법과 부도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년에도 수백 명이 처벌되는 위장전입, 증여세나 다운계약에 의한 양도세 탈루와 비농업인의 농지매입 등 정직하지 못한 행위들이 공직후보자의 필수조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다.

대부분 국민 앞에 시인하고 머리 숙여 사과만 하면 그냥 넘어간다. 뒤늦은 세금 납부로 면죄부를 받는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 시행 이후 교수출신 공직후보자는 거의 표절의혹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불명예와 낙마의 아픔을 맛 본 이도 더러 있었지만 공직의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공직임명만 되지 않으면 더 이상 페널티는 없었다. 박사학위 논문이 취소되거나 교수직을 박탈당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표절에 관대한 대한민국이다. 표절천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만하다. 

독일은 어떤가. 2011년 국방부장관에 이어 지난 달 교육부장관이 박사학위논문 표절로 학위도 무효화되고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우리처럼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박사학위논문 표절을 색출하는 사이트가 개설돼 누리꾼들의 표절사냥에 박사학위로 명예와 공직진출의 기회를 얻으려던 이들이 떨고 있다고 한다.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표절은 도적질한다는 의미를 갖는 표(剽)와 훔칠 절(竊)의 합성어다. 영어로 plagiarism은 납치와 도둑질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남의 글을 몰래 납치하여 자기 것인 양 자기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니 도둑질인 셈이다. 학문적 비윤리를 넘어 법적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행위인 것이다. 책이나 작곡 같은 창작물도 지적재산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표절은 책을 훔치는 행위나 진배없다. 자기 것이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자기표절 또는 중복게재라는 의혹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의 글을 도둑질 한 사람이나 글 도둑을 잡은 사람 모두 관행이라 묵인해 주고 침묵으로 공모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정직성이 공직자의 덕목임에도 표절 정도는 공직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그릇된 인식이 퍼져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00년대 이후에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여 그동안 학계의 관용으로 숨어있던 규범이 이제 사회규범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과 연구기관마다 연구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예방교육도 하고 연구부정행위를 가려내고 있다. 연구의 세계화와 국제화를 꾀하려면 국제적으로 승인된 연구윤리규범에 따라야 한다. 우리의 관행을 핑계 삼아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논문검증으로 표절행위를 가려내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 연구부정행위로는 연구자로서의 명예뿐만 아니라 공직도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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