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표 본지 논설위원·인하대 사범대학 교수

학벌주의를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또는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보다는 높은 학력을 중시하는 입장이나 태도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지난 1월 초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20~30대 직장인 남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대한민국의 성공조건 1순위가 ‘학벌’을 꼽았다고 한다. 작년 12월 마약관리법 위반 전과가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피고에게 재판 도중 판사가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는 막말을 해서 징계위에 회부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벌주의가 얼마나 우리 의식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명문대학을 나오거나 학벌이 높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능력이 뛰어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취업·승진은 물론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는 데 학벌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탄탄한 학연을 배경으로 출세에 유리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명문대학이 국가의 최고 엘리트를 배출하고 그들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국가와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알아주고 성공수단으로 작용하는 학벌주의 때문에 대학의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명문대 진학을 꿈꾸게 된다. 학벌지상주의가 사교육 열풍과 입시과열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벌주의는 동문중심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사회 지배세력으로 행세하면서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응집력을 발휘하거나 배타적·독점적 태도를 보여 정상적인 엘리트 순환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학벌이 낮은 사람이나 비명문대 출신을 무시하거나 소외시켜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여 사회통합을 저해하기도 한다. 성과나 능력주의를 무시하고 전통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귀속적 지위가 평생 동안 유지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 수업연한 4년의 몇 배가 되는 수십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보다 한번 취득한 명문대 간판이 문화적 자본으로서 평생 동안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벌주의의 발생시점을 고려 초 광종의 과거제도에서 찾을 만큼 오래된 고질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벌주의의 사회적 병폐가 너무 심각하여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과나 능력위주의 합리적 인재 등용, 신규 임용 시 학력제한 폐지, 고졸 채용인력의 확대, 지역대학 출신의 채용할당제 도입, 국공립대 연합체제 개편, 사회구조의 변화 등 다양한 학벌철폐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학벌주의가 단순한 국민의식 수준을 넘어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있다. 뿌리 깊은 학교간판 중시 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학벌이 좀 부족해도 또는 설사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재능이나 끼를 인정해 주는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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